이 노인씨가 노인이 다 되었다. 이름이 노인이라서 젊은 날에도 이름만 노인이지 실제로는 젊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다보니 정작 노인이 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자신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노인씨였다. 그야말로 인생이 덧없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느껴보며 이제라도 흘러가는 세월의 운전대에 손이라도 얹어 보기로 결심하였다. "여보,우리 강원도의 바다라도 보러 갑시다" 그동안 가고 싶던 곳을 접고 있었다. 여태 해보고 싶던 것을 찌그러트려 주머니 속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름만 노인인 거고 실제로는 팔팔하다고 입만 놀리며 나불대고만 있었다. 환갑이 넘고 나서야 '나도 이제 노인인가?' 누군가 이런 깨달음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여행은 팔팔한 심장을 가진 채 다녀야 한다"고 "아니 팔팔한 심장에 튼튼한 다리를 더해야만 한다"고 의욕이 앞서 여행길에 올랐어도 하체가 부실하면 덧없는 여행이 되어 버린다. 다리가 튼튼해도 움직이고자 하는 팔팔함이 소멸되어 버린다면 여행의 시작조차 있을 리없다. 노인씨도 이 말에 공감했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을 때 떠나기로 했다. 일사천리로 기차표를 예매하고 숙소와 최종 목적지까지의 스케쥴을 점검했다. 노인씨의 아내도 좋아라했다. 노인씨가 환갑을 넘기도록 제대로 된 여행조차 없었기에 아내의 기쁨 또한 대단했으리라. 모처럼 노인씨 부부가 여행길에 나섰다. 그것도 자가용이 아닌 기차여행으로. 사실 장거리여행을 승용차로 함께 하자면 힘에 부칠 노릇이 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운전하기가 싫고 버거워진다. 그래서일까? 기차여행에 낭만을 붙여가며 편한 자가용 여행보다 훨씬 낫다는 이유를 잔뜩 몰아주는 노인씨였다.. 기차가 출발했다. 아내가 이것저것 추억거리를 많이 장만했다. 김밥도 싸고 계란도 삶아 대령했다.소소하게 과일도 깍아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렇지! 여행은 역시 먹는 재미야!" 김밥을 해 치우고 삶은 계란을 먹다가 찰떡궁합 사이다를 찾는데 눈에 뵈질 않는다. "여보,사이다는 안 챙겼소?" "가방 속에 없어요? 챙겨 왔을 터인데..." 아무래도 빠트리고 온 모양새다. 노인씨가 일어섰다. "여보,내 이번 역에서 잠깐 내려 사이다를 사가지고 올께" 노인씨가 마침 정차한 역에 내려섰다. 노인씨는 편의점에 들러 사이다를 고른 후 마침 눈에 띈 원두커피까지 두 잔 챙기고 있는 중이다. 열차가 막 움직인다. 노인씨는 서둘러 열차에 올랐다. 양손에 뜨거운 커피가 김을 내며 존재감을 알렸다. 자리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안 보이고 못보던 이가 앉아있다. 뜨거운 커피를 잠시 내려놓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야,어딜가고 없는겨?" "아니 당신 여태 안 오고 무얼 하는 거예요?" 노인씨가 전화를 하며 창밖을 보다가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뿔싸! 노인씨가 반대방향의 열차에 올라 탄 것이다.
"여봇! 언능 그 차에서 내려요" 아내의 숨 넘어가는 소리가 전화기 속에 꽉 차고 흘러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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