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간의 설레임 9

허필연 미국여행일기

허필연 | 기사입력 2011/12/13 [11:44]

백일간의 설레임 9

허필연 미국여행일기

허필연 | 입력 : 2011/12/13 [11:44]
*다시 위스콘신에서
 
<집구경>

  미국을 가기 전 제일 궁금했던 것은 그네들이 정말 침실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번쩍번쩍한 집말고 일반 서민들 말이다.
 
  세희네 교회 교우 한 사람이 우리를 초대했다.
마음씨 착해 보이는 아저씨와 넉넉해 보이는 아줌마 그리고 귀여운 딸과 선교사 인 큰아들과 아직 17살인데 여자와 살겠다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문제아인 작은 아들을 둔 집이었다.
  
  그들은 자기의 문제를 교회사람 누구에게든 털어놓았다. 심지어는 기도 도중 이야기를 하면서 울어 목사님과 교우들이 같이 울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또 자랑 할 것이 있으면 한참 자랑하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더러는 감추어도 될 것 같은 이야기다. 그들의 솔직함을 그런데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사람 특히 가정 주부들은 자기 가족들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지 않으려고 한다 . 그러다가 곪아터지면 그제야 죽느니 사느니 하지만.
어째든 이 집 아이들은 홈 스쿨링을 했는데 두 아이는 제대로 잘 자랐고 막내아들이 속을 썩인다고 했다.
 
  우리는 맥도널드 집이라고 해서 맥도널드 가게를 하는 줄 알고 아이들이 실컷 먹게구나 했는데 아저씨 성이 맥 도날드란다.
그 집은 메디슨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흘러드는 강줄기 중류에 위치해 있었다.
강가의 집이라서 보트도 한 척 있었다. 그전에는 꽤 가꾸었던 집 같은데 지금은 돌보지 않아 허술해 보였다.

 
  중요한 문제인 신발 문제,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아서 신발을 신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세희네가 벗었다. 나도 벗었는데 살펴보니 거의 자유였다. 벗고 싶으면 벗고 신고 싶으면 신고 거실에 들어간 아이들은 불편하니까 이 구석 저 구석 벗어 놓고 놀았다.
신발 문화는 우리가 얼마나 세련되었는가를 깨달았다. 궁금하여 여러 사람에게 물어 보았는데 미국사람들도 벗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란다.
미국의 거리는 시골이라도 아스팔트 아니면 잔디를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더럽지 않아서 신고 살아도 무방할 것 같았다.
 
  맥도널드 아줌마의 특별히 솜씨를 발휘한 케이크와 핫도그, 각종샐러드, 과일, 그릴에 구운 스테이크와 핫도그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아줌마에게 요리를 배웠다. 아이들은 그 집에 설치된 텀블링을 하였다. 그 집의 딸이 텀블링에서 묘기 넘는 것을 보여주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그 집은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단다. 텀블링 때문에 너무 많은 보험료를 지불하라고 해서.

 
  소박하고 풍요로와 보이는 아저씨와 아줌마와 착한 딸과 함께 사진을 여러판 찍었다. 어디를 가나 서민들의 삶은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썸머 바이블 스쿨>
 
  칠월에서 팔월까지 아이들을 바이블 스쿨에 세 군데나 보냈다.
한 곳은 세희네가 다니는 침례교회 이었고 또 한곳은 누트란 교회에서 하는 학교 기숙사내 어린이들을 위한 스쿨이었으며 마지막 것은 그냥 다니다가 차창 밖으로 언뜻 본 장로 교회였다.

 
 
  세희네가 다니는 교회는 우리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즐겁게 참여했고, 누트란 교회에서 하는 것은 교회측에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세심하게 하였던지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준성 이는 자기 반에서 하는 연주회에서 플릇을 다른 나라 여러 아이들의 다양한 악기에 맞추어 연주했다.
그곳에서 만난 중국아이와 대만아이가 마음에 들어 준성이 에게 친구로 사귀라고 권했지만 준성 이는 그런 대는 소질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자원봉사자아줌마 선생님과 얼마나 친하게 사귀어서 끝나는 날 우리는 아쉬움의 포옹까지 했는데.

 
  마지막으로 다닌 바이블 스쿨.
세희 아빠와 엄마는 정말 싫어했다. 우리가 이렇게 여러 군데 교회를 다니는 것을 .
그러나 나는 신자도 아니고 미국에 여행을 온 것이다. 그것도 많은 돈을 투자해서. 가만히 밥 먹고 앉아 침례교회만 다니려고 온 것은 아니다.
하루 날 잡아 그 교회에 가서 우리는 신자가 아닌데 바이블 스쿨에 다니고 싶다고 하자 얼마간에 돈을 받는다며 등록하고 다니라고 했다. 돈을 내는 것이 더 떳떳했다.
그리고 수업 도중 헌금도 했다.
한국으로 치면 아주 신식 교회 이었다.

 
  세희네 교회가 봉건적이라며 이 교회는 아주 첨단을 걸었다. 아줌마들의 옷차림도 그랬고 찬송가도 거의 랩처럼 부르기도 하고 아무튼 파격적이었다. 나는 친구네의 고깝지 않은 시선을 뒤로 한 채 아이들을 고물 차로 실어 날랐다. 차가 고장이 나서 한국 유학생 부인의 신세까지 지면서.
나는 정말 극성이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낯선 장소, 낯선 사람 아시아계통의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지만 준성 이는 여전히 선생님께 칭찬 받았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만들 것을 주로 하고 운동도 하였다.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메디슨 외곽에 있는 한국인 교회에서 한국 아이들 영어공부 할 사람 모집한다고 해서 등록했다. 성원이 되지 않아 폐강 될 뻔했었는데 소수 인원으로 하기로 해서 우리아이들이 또 덕을 보게 되었다.
그 2주간 아이들 영어실력이 부쩍 늘었다. 준성 이는 책을 읽고 써머리를 해갔는데 액설런트를 받았다.

  준호는 영어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스쿨 생활에 애를 먹었었는데 영어에 취미를 붙이는 듯 했다.

 
  여러 가지로 교회에 고마움을 느꼈다. 미국 문화 전반을 이루고 미국 생활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를 빼고는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난생처음 교회가 하는 좋은 일의 여러 가지를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보고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좋은 일은 하는 교회들이 많을 텐데...
 
▲ 미국의 한 교회. 교회는 미국 공동체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     © 노장서


<위스콘신델>

  이제 돌아갈 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나는 체류만기가 될 때까지 석 달을 더 머무를까하고 아이들 서류를 준비하다가 그만 두었다.
조금씩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돌아오길 얼마나 잘 했던가?
아마 석 달을 더 머물렀으면 마음 고생 깨나 하고 가족들 걱정도 많이 끼쳤을 것이다. 어쩌면 무역센터 건물에서 죽었을지도.)

 
  어째든 나는 미련을 접고 돌아갈 준비를 하기로 했다.
세희네 휴가 일정에 맞추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위스콘신 델 이라고 한 동네가 몽땅 물놀이 공원이다.
메디슨에서 차로 두시간 정도 가면 있다.
온갖 아름다운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의 집처럼 또는 공주가 사는 성처럼 꾸며진 호텔들이 이 늘어 서있었다.

 
  우리는 주머니 사정상 숲 속에 자리한 방갈로를 두 채 얻었다.
방은 통나무로 되어있었고 식수대 시설이 여러 군데 있었다. 이곳은 주로 카 캠핑을 위한 시설 위주로 되어 있었다. 방금 개장 한 것처럼 깨끗했다.
그리고 호텔과 마찬가지로 규모가 틀리겠지만 수영장도 있고 상점도 있으며 여러 가지 시설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짐을 각자의 방갈로에 풀고 시간이 남아 위스콘신델 유람선 투어를 했다.

 
  위스콘신 델은 말 그대로 위스콘신의 물이 흐르는 골짜기이다. 골짜기라기 보다는 아주 큰 강이다. 그 강 주위에 물놀이 공원이 들어서서 생긴 것이 위스콘신 델 이다. 여기사람들 말로는 이곳이 미국에서 가장 큰 물놀이 공원이라고 하지만 믿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은 큰 것이 자랑이기 때문에 서로 자기 것이 크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도나도 원조라고 우기듯이 말이다. 5000년 역사를 지닌 우리는 뿌리 자랑을 할 수밖에 없고 역사는 짧지만 크게 부흥한 그들은 큰 것이 자랑임이 당연지사 일 것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준비 해 가지고 간 음식들을 요리해 먹고 미국 아이들처럼 머쉬롬을 구어 먹으며 캠프파이어까지 했다.
이튿날 우리는 본격적인 물놀이를 하려고 그중 제일 크다는 시설의 표를 구입해서 들어갔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용인 캬라빈안 베이나 속초 워터피아를 뻥튀기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각종 아슬아슬한 슬라이드, 탈것, 미니 골프장.....

 
  준성 이는 한참이나 꼬인 슬라이드를 곧잘 탔다. 나랑 준호는 별반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슬라이드 근처도 못 가던 준 호가 차츰 작은 슬라이드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 슬라이드에서 내려와 얼마나 뻐기던지.
그래도 긴 슬라이드는 준호는 끝내 도전하지 못했다. 준성이 보고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자기도 무서웠었는데 재미있다고 생각하니 하나도 무섭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원 없이 물놀이를 하고 우리는 위스콘신델 주위에 있는 뷔폐 식당에 들려 줄을 서서 준성이의 유창한 영어 주문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메디슨에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서커스 뮤지엄> 

  내친김에 오늘은 또 세희네와 위스콘신 델 가기 전에 있었던 바라브 지역에 있는 써커스 뮤지엄에 놀러가기로 했다.
세희네도 가난한 유학생이라 여행을 별반 못했다고 했다.

  바라브는 온 동네가 서커스와 관련된 동네이다. 이곳 출신의 유명한 광대가 성공해서 자기가 데리고 있던 서커스 단원과 동물들과 시설들을 고향으로 이끌고 와 꾸민 마을이라고 했다. 옛날에 아주 유명한 서커스단 이었단다. 이곳에 다녀간 유명 인사만 봐도 그 명성을 가히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커스뮤지엄은 바브라 마을에서도 강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은 서커스를 끝낸 동물들을 목욕시키기 위해 서란다.
우리는 여러 동물들과 분장 쇼 그리고 서커스단 퍼레이드를 구경한 뒤 삼복 더위 속에 옛날을 재현해서 만든 포장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진짜 서커스 구경을 했다.
구경을 끝내고 아직 해가 있는 시간에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을 가르며 달려오자니 존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에 묘사 되어있던 풍경이 연상되며 그 후끈한 열기가 전해지는 듯 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세희네 차도 세웠다.
바다처럼 펼쳐진 옥수수 밭을 배경으로 사진 좀 찍고 가자고.

<아이들 스쿨 생활>

  커뮤니센터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썸머스쿨에 아이들을 보냈다. 점심도 주지 않는데 일주일에 110불씩 냈다. 준호까지 가니 200불이 넘게 들었다. 그러나 스쿨만 보내면 안심이었다. 선생님 여러 명이 아이들을 성심껏 보아주었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내일을 할 수 있었다. 미국식 도시락을 열심히 싸보았다.

  아이들은 실내수업과 야외수업이 병행되었고 수업내용도 실기와 이론이 반반씩 하게 되어 있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준호도 싫증내지 않았다. 준성이는 만들기 솜씨를 발휘해 연신 여러 가지 창작품을 만들어 왔다.
커뮤니티 짐에 갔다가 준성이 선생님을 만났다. 준성이 칭찬을 많이 해 주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선생님은 얌전하고 자기 할 일 잘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보심 많고 예절 바른 아이를 좋아한다.

  그런면에서 우리 준호는 손해를 많이 보았다. 언어도 통하지 안는데 욕심도 많아 쉬는 시간 게임을 하는데 자기 턴을 부르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밀치고 게임을 하니 눈총을 받을 수밖에.
이제와 생각하니 준호의 스트레스가 컸을 것 같다. 준호가 처음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미국에 별로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스쿨에서 좋았던 점은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풀장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가고.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등 시내의 시설들을 데리고 가주는 것이었다. 여행을 온 우리에겐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수업도중 너무 더우면 잔디밭에 스프링클러를 돌려 아이들을 뛰어 놀게도 해 주었다. 여름에 아이들이 수영복을 가지고 가는 것은 필수였다.

<럭비시즌 응원연습자원봉사자>

  우리가 돌아올 무렵부터 럭비경기가 시작되었다.
요즈음 위스콘신 대학의 럭비 팀이 성적이 좋아서 많은 동문들로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그네들의 럭비에 대한 열정은 우리들의 붉은 악마쯤은 되지 않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학교에서도 럭비는 필수이다. 여기저기 잔디 구장에서도 럭비연습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위스콘신 대학의 남쪽은 메도나 호수를 끼고 있어 이 호수를 따라 만든 산책길과 자전거 도로가 너무 아름 답다.

  돌아올 무렵부터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나는 조깅을 했다. 그러다가 이 대학 럭비응원단의 응원연습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참고로 이들이 응원단에 뽑히기 위해서는 우선 학점이 상위 그룹이어야 하고 악기도 잘 다루어야 하며 거기다 체력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응원단 가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거기에 뽑히는 것이 그네들의 커다란 자랑이란다.

  연습하는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율동과 안무를 연습시키는 선생님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이 학교 출신의 교수님들이나 관련 일을 하시던 분들이란다.

  응원율동은 우리나라 관현악단들이 앉아서 연주하는 반면 이들은 그 커다란 악기를 들고 연주하며 율동 같이 하는 것이다. 군악대의 행진 같은 것이 아니고 약간의 패러디가 들어간 율동과 연주가 힘차게 어우러져 재미도 있고 생동감도 느끼게 해주어 한참씩 구경 하였다.

  아이들에게 이들의 럭비경기모습과 실제 운동장에서의 응원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일정이 맡지 않아 아쉬웠다. 아무튼 연습 장면일지라도 나는 매료되었다.
특히 빨깐티를 입고 젊은 학생들을 온힘을 다해 지휘하는 노인 자원봉사선생님에게.

<버스>

  학교내에서 운행되는 버스를 많이 이용하였다. 주차료 때문에 함부로 차를 끌고 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에 누트란 쉼터에 갈 때는 항상 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버스는 항상 비어 있었고 쾌적했다. 오가다 자전거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기사가 내려서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장소에 실어주기도 하고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잘 되어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급한 것이 없다. 그렇게 한적하게 운행하면서도 중간에 교대를 해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들이 꼭 그대로 행하는 것 같다. 비행기를 탈 때도 그랬고 버스도 , 택시도 그래서 이렇게 차를 많이 이용하면서도 교통 사고율이 낮은가 보다.
학교 버스 이외에는 딱 한번 우리 고물 차가 고장났을 때 백화점에 가기 위해 매트로 버스를 이용해 보았다. 별로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특이한 것은 이 버스가 모두 한군데 집합하는 장소가 여러 군데 있어 거기서 다른 버스를 갈아 탈수 있다는 것이다.

<박쥐 하우스>

  영어 공부를 하러 커뮤니티 사무실에 나갔더니 칼럼들을 하나씩 읽고 있었다.

  박쥐 하우스라나? 위스콘신에는 유난히 모기가 많았다. 나와 아이들도 수백 번은 더 물렸을 것이다. 그래서 마켓에 가면 바르는 모기 약 뿌리는 모기약 가지가지 모기 약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그들은 방역을 하지 않는다. 방역하면 인체에 더 해롭다고 한다.
하긴 해충도 생물인데 그들을 죽이는 것이 인체에 이로울 리는 없지만 그래도 메디슨의 모기는 너무했다.

  그래서 어는 자연 보호주의학자가 고안 해 낸 것이 박쥐 하우스이다. 그는 자기 집 지하에 박쥐 하우스를 짓고 그곳에서 박쥐를 키운다. 박쥐의 주된 먹이가 모기란다. 박쥐 한 마리가 하루 먹는 모기 량은 수백 마리란다.
어째든 박쥐를 키우기 위해 모기까지 양식 한다나.

  조금 엉뚱하고 우습기조차 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위스콘신은 땅도 넓고 나무도 많고 숲도 많고 청정 쾌적한 환경인데도 더 이상의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환경보호주의자들 이 많이 있다고 했다.

  작지만 이런 움직임들이 이들의 푸른 거리를 지켜내고 이거대한 땅덩어리를 지켜낸다고 생각 하니 가슴이 뭉클 해졌다.
이렇게 생각 하니 조그만 땅덩어리의 우리 환경 보호 노력은 너무 미약한 것이 아닌가 조바심이 났다.
(se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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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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