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48)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08/24 [01:01]

바람의 제국(48)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08/24 [01:01]

▲     ©정완식

 

종일 요우커에 시달린 물결이 잔잔해지면 

샛별 하나 내려앉아 머리를 감고 

잠시 졸다 가는 밤섬에 자장가 흐르면 

호수가 꿈을 꾸는 시간​

 

베이퍼피쉬가 솟아올라 물뿜질하고 

임연수어가 고래처럼 유영하고 

누가 빛을 주지 않아도 

자체발광하는 호수는 바다를 품어보지​

 

집채만한 파도가 밤섬을 삼키기도 

큰바람 불어와 유람선을 뒤집기도 

복수의 칼 겨누던 푸른 바다를 보는 

호수는 비장한 꿈을 꾸었어​

 

어둠 걷히면 부끄러운 호수는 

다시 얼굴에 홍조를 띠고 

비웃음을 단 유람선 모터 소리에 

후다닥 잠을 깨지만 

그래도 호수는 꿈이 있어 행복하다네​

 

- 호수(湖水)의 꿈 - 

 

49. 태호(太湖)의 잠 못 드는 밤 

 

연수와 방동혁 부장, 그리고 박수현 차장은 호텔에서 나와 이한경 상무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다​

 

김기훈 상무와 면담을 끝내고 아래층 회의실로 내려온 연수가 제일 먼저 얼굴이 떠오른 이한경 상무에게 전화를 한 건, 한시라도 빨리 이한경 상무에게 사실을 알려 기현자동차 중국법인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과 이상일 전무가 어떤 사람인지, 법인 내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있는 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연수의 전화를 받은 이한경 상무도, 통화하는 연수의 곁에서 연수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방동혁 부장과 박수현 차장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베이트 의혹이 단순히 협력업체의 문제가 아닌, 기현자동차 내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 파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한경 상무는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닌 것 같다며 당장 예청을 출발해서 무석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연수도 이상무와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 같아 만나서 얘기하자며 며칠 전 이선 과장과 같이 저녁 식사를 했던 곳에 다시 약속 장소를 잡고 통화를 마쳤다​

 

아침저녁으로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한기를 느낀 연수는 약속 장소를 향해 일행과 함께 걷다가 외투의 옷깃을 세우며 이제 막 수평선 끝에서 일몰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태호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내기라도 하는 듯 눈 부신 햇살이 잔잔한 호수의 물결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의 힘든 하루에 여운이라도 남겨 주려는 듯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태호의 노란 물결이 서서히 붉은 기운이 감돌고 하루의 일과를 마감한 태양은 황혼의 배웅을 받으며 안식처를 찾아 태호의 작은 섬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이한경 상무는 연수 일행보다 먼저 와서 지난번과 같은 한적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연수가 방금 보았던 일몰을 감상하고 있던 듯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가 연수네 일행이 다가오자 그제서야 눈을 돌리더니 일어나 일행을 맞았다​

 

"바쁘실 터인데 이렇게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수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이한경 상무도, 그리고 방부장과 박차장도 서로서로 인사와 함께 이상무에게 자기 소개를 했다​

 

연수가 이상무의 맞은 편 자리로 가서 앉자 방부장과 박차장도 각각 연수와 이상무의 옆자리에 앉고 곧이어 이상무가 미리 주문해 놓은 요리와 맥주 몇 병이 금방 테이블에 차려지고 맥주잔도 채워졌다​

 

"장상무님의 전화를 받고 여기로 오면서 줄곧 생각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장상무께 서류뭉치를 건넬 때 막연하지만 혹시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적이 있었는데 걱정했던 일이 실제 눈앞에 닥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이상무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내뱉자 연수도 한숨을 내쉬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어떻게 우리 법인의 핵심임원이 협력업체 리베이트 의혹에 연루돼 있는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 나가야 할지, 저도 참 난감합니다.​

 

단순하게 있는 사실만 그대로, 그리고 우리 태스크포스에서 밝혀낼 수 있는 것들만 밝혀내서 최고경영층에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 있던 방부장과 박차장은 두 사람의 주고받는 말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맥주잔을 비우고 있었다​

 

"제가 드린 서류에 명단과 함께 협력업체 리스트가 같이 있었던 것은, 사실 이상일 전무가 이상하리만치 협력업체들과의 술자리나 골프모임이 많고 여기저기 출장을 많이 다녀서 좀 의심스러운 구석을 피상적으로나마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좀 더 파헤쳐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이상일 전무가 만난 업체들과 사람들을 정리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일 전무가 음주가무를 즐기고 골프운동을 좋아해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모임이 너무 잦았거든요.​

 

그리고 그 모임이 협력업체 사람뿐 만이 아니고, 우리 법인 내의 특정 인물들과 MH자동차 직원들, 중국 지주회사 사람들까지도 지속적으로 만나고 다니는 등, 우리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의 구매본부장 역할을 넘어서는 활동반경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우리 중국법인의 판매상황이 어려워지고 덩달아 생산이 차질을 빚고, 연쇄적으로 협력업체들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구매본부장의 책임은 비교적 한 발짝 떨어져 있다고 해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법인 임원들 모두의 책임이고 심각한 상황인데도 구매본부장의 표정은 항상 여유가 있었습니다.​

 

마치 동방그룹이나 상달그룹에서 파견을 나온 무책임한 중방 쪽의 경영진처럼...​

 

그런데 그게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배신을 안겨주는 일이 숨겨져 있었다니 참 분노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얘기를 마친 이상무가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다시 모인 것이니 좀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겠습니다.​

 

우선 이상무님께 궁금한 것을, 하나 더 여쭐 것이 있는데 조금 전에 서류뭉치 건을 얘기하시면서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고 우려하셨다고 했는데 혹시 그것 말고 이상무께서 우려했던 또 다른 상황은 없었습니까?"​

 

연수가 이런 질문을 이한경 상무에게 던진 것은 이상무가 서류를 연수에게 건넬 때부터 이상무는 어느 정도는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상무는 본인의 직책상 자신이 직접 파고들어서 문제를 밝혀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는 못해도 그룹의 중국사업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다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고,​

 

그룹의 중국사업이 돌아가는 상황을 중국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끼며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면 이한경 상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무심한 태호의 밤이 깊어가고 가로등 불빛이 점멸하며 별을 닮아가고 있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ㅍㅂ 21/08/24 [07:19] 수정 삭제  
  가로등 불빛이 점멸하며 별을 닮아가고 있었다.. 멋진글 잘봤습니다.
ㅇㄷㄱ 21/08/24 [07:50] 수정 삭제  
  등잔 밑이 어둡네요~오늘도 즐독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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