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52)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09/07 [01:01]

바람의 제국(52)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09/07 [01:01]

 정완식

 

그대가 바라는 사랑이란 

꽃피는 언덕을 달리는 바람인가요 

호젓한 카페의 부드러운 라떼인가요 

사랑에도 좋은 시절이 있으니 

사랑은 달콤한 바람이 부는 봄에 하세요​

 

겨우내 할퀴었던 상처 

보듬어 새순이 돋는 

상큼한 봄에 내리는 봄비가 좋아 

언 가슴 녹여내는 희우가 좋아 

봄에 하는 사랑은 외로움을 모르죠​

 

봄비 내리는 남하강변을 걸으면 

봄바람이 싣고 온 꽃잎이 

첫 키스의 사연을 속삭이고 

붉은 담벼락을 오르는 넝쿨은 

결실의 계절이면 꽃을 피워내요​

 

봄비 내리면 사랑을 하세요 

잊었던 첫사랑이 돌아와 

두견화로 피어나고 

보슬보슬 오르는 아지랑이 주향에 

초가의 박꽃 시인이 활짝 웃고 있네요​

 

- 호우시절 -​​

 

53. 두보초당 

 

호텔 내 조식 뷔페식당에서 일행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방동혁 부장과 박수현 차장을 <태수>라는 협력업체에 보내고 난 연수는 호텔에 자신과 이선 과장만 남게 되자, 첫 면담시간까지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강변에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가벼운 복장으로 환복을 하고 막 방을 나서려는데 이선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핸드폰에서 이과장의 밝고 힘찬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려 왔다​

 

"상무님! 첫 면담시간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그러는데, 시간도 보낼 겸 저랑 초당에 가서 한시 공부 좀 하시겠어요?"​

 

"초당이라니?"​

 

"두보초당이요. 아시겠지만 여기 성도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 무후사라는 곳과 두보초당인데, 무후사는 상무님이 일전에 여기 출장 오셨을 때 일행과 함께 가보셨다고 하니, 지금 시간이 있을 때 잠깐 다녀오시면 어떨까? 해서요..."​

 

이과장은 엊저녁에 일행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얘기하다 연수가 말한 무후사 방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육 년 전인가?, 이곳 사천성에 첫 상용차 공장이 만들어지고 나서 준공식을 성대하게 치렀었는데 그때, 중국사업본부의 팀장급 이상 인원들도 같이 초대를 받아 여기 사천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준공식 일정과 함께 들어있던 문화체험이란 명목으로 일행들과 같이 성도의 무후사를 방문했었다​

 

당시 시나 문학을 좋아했던 연수는 무후사보다 두보의 초당으로 가고 싶었지만, 일행을 따라 같이 무후사에 갈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워했었던 경험을 엊저녁에 팀 일행에게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로 말했었는데, 이를 이선 과장이 귀담아들었던 모양이었다​

 

시간을 보니 첫 면담까지는 약 두 시간 3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두보초당은 20만 평방미터의 넓은 곳으로, 제대로 보려면 어른 걸음으로도 두세 시간 이상은 걸려서 지금과 같은 자투리 시간에 다녀오기는 촉박한 시간이긴 했지만, 서두르기만 하면 두보초당의 주요 포스트를 한 시간 이상 충분히 둘러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연수는 이미 협력업체로 일을 떠난 방부장과 박차장에게 미안한 마음에 잠시 고민하고 망설였지만, 결국 이과장의 제안에 그러자고 수락을 하고 로비로 내려가 이과장을 만났다​

 

연수가 머무르고 있는 호텔에서 북서쪽으로 성도 시내의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두보초당까지는 택시로 어림잡아 약 30분 정도 걸렸다​

 

입구에서 티켓을 사서 안으로 들어서니 바로 시詩사당이 나타나고, 현대 조각가인 리우카이취가 만든 두보의  동상이 보였고 그 옆에는 각 나라말로 번역된 두보의 시집 번역본과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고, 정원 곳곳에 차를 파는 차관茶館이 있어 방문객들이 쉬어가게 만들어 놓았는데 초당이라고 부르기엔 두보초당은 제법 규모가 큰 정원이었다​

 

울창한 숲과 연못이 있고 사이사이로 난 샛길이 있어 헛갈리기는 했지만, 시간에 쫓기는 연수와 이과장은 빠른 걸음으로 이정표를 따라 곧장 초당 쪽으로 향했다​

 

두보초당은 원래 초라한 초막 한 채에 불과했지만 48세의 두보가 머문 짧은 3년 동안, 240여 편의 그야말로 주옥같은 시를 남겨 놓아서, 이를 높게 평가한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 때 각각 확장공사를 해서 지금의 규모로 커졌다고 했다​

 

초당은 평일의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방문객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근처에 사는 사람인지 대나무와 관목들, 그리고 수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아침 산책을 하는 사람만 간혹 눈에 띌 뿐, 산새 소리와 함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안사의 난을 거치며 쫓기는 방랑 생활을 해오던 두보가 벼슬과 권력에서 벗어나 이곳에서는 비교적 평화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했는데, 이런 환경이 두보의 시詩세계를 마음껏 펼치게 만들어 주었을 터였다​

 

두보의 초당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연수의 소매를 이과장이 잡아끌어 연수는 그녀를 따라 영화 "호우시절"의 배경이 됐던 화경花徑이라는 곳에 가서 붉은 흙담 길과 대나무 숲도 보고, 박물관을 거쳐 다시 시詩사당 쪽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호텔로 돌아가기 아쉬워서 잠시라도 시詩사당에 있는 두보의 시를 감상하려고 번역 시 몇 편을 살펴보다가 그중 하나가 연수의 눈에 꽂혔다​

 

영화 <호우시절>의 영화 제목을 이 시의 첫 구 "호우지시절"에서 따왔다고 하는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였다​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호우지시절 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수풍잠입야 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 江船火独明 (야경운구흑 강선화독명) 

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 (효간홍습처 화중금관성)​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봄비로 내리네​

 

바람 따라 조용히 밤에 찾아와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셔주네​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의 불빛만 홀로 외롭네​

 

새벽녘 붉게 젖은 곳을 바라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활짝 피었네​

 

- 춘야희우(春夜喜雨) / 두보 -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ㅇㄷㄱ 21/09/07 [09:05] 수정 삭제  
  아침부터 좋은 시와 소설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 지네요. 오늘도 즐독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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