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22)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05/25 [01:01]

바람의 제국(22)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05/25 [01:01]

▲     ©정완식

 

제2부. 바람의 뿌리 

 

지상에서 품어 올린 한이 모여들어 

눈 녹지 않는 만년설이 만들어 지는 

일만사천 피트 고원지대 

차가울 대로 차가워 주체못하는 공기 

 

높은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빠져나가지도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어 

사발 울타리 감옥에 갇히더니
따뜻한 품을 찾아 이리저리 떠돈다 

 
또 다른 차가워진 공기 

행여 인간이 딛고 사는 땅은 따뜻할까 
수직 하강을 해보지만

이내 그 자리만 빼앗긴다

  
빼앗기고 빼앗기를 반복하며  
더 큰 동력을 얻은 한 무리 바람이 
주체못한 힘으로 봉우리를 빠져나와 
산 계곡을 타고 등성이를 타고 마침내
산 아래 벌판을 향해 질주했다 

 
바람이 가는 길은 어디에나 있지만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부르지 않아도 원치 않아도 

바람은 당신에게로 간다 

 

 

23,  남경(南京) 판매본부 

 

 
장강(長江)에서 일은 한 점 바람이 
자금산을 향하더니 기라성처럼  
높다란 성벽을 넘다 기운을 잃고 

삼십사 킬로미터의 장벽 안에 갇혔다

 
오송제량의 사랑 꽃을 피워왔으나 
태평천국의 질투에 산산이 부서지고 
명의 도읍지로 겨우 이름을 찾았다가 
역사의 뒤안길, 배도(背都)로 전락했다 

 
아편으로 굴욕의 불명예 뒤집어쓰고 
일제 대학살의 슬픈 역사를 품에 안고
자금산은 풍운(風雲)의 바람 돌려세우며 
지친 영혼들의 안식처를 자처한다 

 
- 남경(南京) - 

 

 
예상했던 것처럼 남경 판매본부의 분위기도 예청의 생산본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경의 판매본부는 원래 상해의 홍차오공항 근처에 있다가 예청시 시장과 당서기가 예청시가 속해 있는 강소성의 성도인 남경으로 본부를 옮겨야 판매에도 도움이 될거라며 은근하면서도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와서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은 남경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남경 시내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긴 하였지만 판매본부의 주재원과 현지 직원들까지 다 합쳐서 전체 인원이 이백 명 안팎에 불과해서  

 
별도의 독립건물을 사용하지는 않고 남경에서 제일 높은 신시가지 빌딩 중의 하나인 65층짜리 스카이빌딩 상층부의 4개 층을 임대해서 사용했다 

 

본부의 내부는 판매본부의 특성을 살려 직원들의 사무실과 임원급들을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회의실과 각종 이벤트를 위한 공간들도 꽤 많이 만들어 놓았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늘상 외부의 마케팅 관련 업체들과 고객들의 미팅 및 행사 등으로 북적거리고 정신없던 예전의 판매본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지속되는 판매실적 부진으로 직원들과 주재원들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는 데다가 비어있는 회의실과 행사장은 실내조명이 꺼져 있어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예청과 다른 것은 예청의 생산부문과 달리 이곳은 오히려 판매인원을 대폭 늘려 판매실적 부진을 타개하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기존의 딜러망을 더욱 옥죄고 물량을 밀어내는 푸쉬전략을 쓰기 위해서는 딜러에 대한 밀착관리가 필요한데 그러자면 인원이 더 많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런 푸쉬전략은 초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판매부진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사용하다 보면 일정 시기가 지나 오히려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판매 생산성은 더욱 떨어지고 늘어난 인력으로 인해 인건비 부담만 가중되어 부진 원인을 놓고 부서간의 갈등만을 더 유발하게 되어있었다 

 
판매부문은 판매부진의 원인과 책임을 전적으로 선(先)공정의 문제로 인식했다 

 
원래 판매부문과 생산부문의 갈등은 예전부터 줄곧 있어왔던 문제이기도 했지만  

 
남경 판매본부는 작금의 판매부진 상황을 상당 부분 선공정 부문인 연구개발이나 생산기술, 생산조립 부문 때문이라며 판매목표 미달의 책임을 그쪽에 전가하려 했다 

 
소위, 팔수 있는 차를 만들어 주지 않으니 자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으로 상당 부분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긴 했다 

 
이곳 판매본부의 본부장이자 예청의 생산본부까지 합해 중국법인 총경리를 겸직하고 있는 한길 부사장을 만나기 전에 연수가 만난 정순일 영업기획부장이나 이현동 판매부장의 하소연 역시도  

 
연수가 이미 파악하고 있었거나 예청의 주재원으로부터 들었던 내용과 중복되는 것들이 많거나 거의 같은 맥락이었다 

 
자동차의 디자인이나 작은 차체가 중국인들의 기호에 맞지 않는다거나, 우리 생산부문에서 만든 차가 원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현지의 로컬메이커 자동차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판매가 잘되는 시기에는 부품업체의 부품공급 지연으로 차를 만들어 내지 못해 못 팔고  

 
부품업체와 협상을 잘 마무리해서 생산을 하고 나면 부품 불량으로 품질 클레임이 걸리기 일쑤여서 판매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들은 이한경 상무가 준 자료에 나와 있던 부품업체들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연수와 함께 출장을 나온 일행인 김과장이 판매본부의 다른 스탭 주재원들을 만나서 자료를 챙기고 이야기도 들어 보는 것으로 역할을 나누고 

 
연수는 영업기획부장인 정순일 부장 그리고 판매부장인 이현동 차장과 함께 한길 부사장의 방으로 곧장 가서 그의 방문을 노크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ㅇㄷㄱ 21/05/25 [09:08] 수정 삭제  
  다음 내용들이 기다려 집니다~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雪花 21/05/26 [19:05] 수정 삭제  
  아! 슬픈 난징역사여! 바람같이 읽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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