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18)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05/11 [01:01]

바람의 제국(18)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05/11 [01:01]

▲     ©정완식

무지한 내게 친구처럼 다가온  
너에게 난 꼭두각시가 되었지 
오롯이 나 홀로 선 무대 위에는  
조명 하나만이 비추고 

 
어둠 속의 넌 보이지 않아도 
너의 몸짓과 표정에 길들여지고,
춤추고 노래하는 난 
관객들의 환호에 이미 도취 되었지 

 
화려한 꽃들이 군무를 하는 봄날 지나고 
죽음까지 같이 할 친구가 흔하겠냐만 
배신을 목격하는 건 차마 못할 짓이라 
이제 지난날은 눈 감고 보지 않으려니 

 
도피의 헛헛한 꿈 고이 접고 
어렴풋이 남아 있을 기억 한줄 붙들어 
나의 친구로 왔던 그때처럼 
이제는 비밀이 된 나의 방으로 오렴

  
- 비밀의 방 -  

 

 

19,  베일(Veil)

  

 
“예, 아까 제가 준 서류를 바쁜 장부장님이 들여다 볼 시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잠깐 그 서류를 설명드리자면...” ​

 
이상무는 잠시 말을 끊고 문 쪽을 바라보며 마치 문 뒤에 누군가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이라도 하듯 쳐다보는 시늉을 했다 ​

 
“미안합니다... 
이 식당이 그나마 등잔 밑이 어둡다고, 공장에서 제일 가까우면서 조용한 한식당이기도 하고 예전 같지 않게 한국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아 마음 편하게 장부장님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커다란 비밀 이야기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여기 예청에 있는 협력업체의 한국 주재원들이 가끔 찾아오기도 해서...” ​

 
이상무가 이렇게 얘기한다는 것은 그가 얘기할 내용들이 충분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어서 연수를 살짝 긴장시켰다 ​

 
“제가 장부장께 드린 자료들은 제가 중국사업부와 여기 예청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조사하고 구한 자료들을 라프하게 정리한 것들입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것들도 더러 있을 수 있고 잘못된 정보로 인해 아예 가공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자료들을 검증해 보지 못했으니 장부장님도 그런 점은 참고로 알고 계시고, 공식적으로 확인될 때까지는 자료들을 오픈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이상무는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내기 전에 서론에서도 전제조건을 달며 조심스러워 했다 

 
연수가 앉아 있던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당겨 바짝 다가앉으며 그의 얘기를 경청할 준비를 하자 이상무는 그런 연수를 보고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으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그렇게 말하는 이상무도 정작 자신의 의자를 당겨 다가앉으며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제가 여기 중국법인에 초창기부터 근무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이 법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다는 건 장부장님도 잘 알고 있겠지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은 나이에 회사생활을 하겠다고 이 회사와 인연을 맺고 무척이나 열심히 일했고, 저의 모든 열정을 여기에 다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법인에서 근무하면서 줄곧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이 있었는데 저도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그런 의문은 근래 여기 중국법인이 어려워지면서 더욱 그랬었고요.“  ​

 
이상무가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내려는 순간에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종업원 한 명이 반찬과 몇 가지 요리들을 실은 카트를 밀고 들어오고 

 
뒤이어 다른 종업원 한 명이 쟁반으로 맥주와 술잔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그들이 테이블에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나갈 때까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반찬과 요리들은 크고 작은 도자기 접시에 정갈하게 놓여 있어 점심도 챙겨 먹지 못한 연수의 식욕을 돋우었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로 인해 연수는 쉽사리 젓가락에 손이 가지 않았다 

 
갈증을 느낀 연수가 무의식중에 물잔을 들어 목을 축이자 이한경 상무가 그런 연수의 상태를 헤아린 듯 서로의 맥주잔에 맥주를 따라 주었다 

 
칭타오 맥주였다

 
투명의 맥주잔에 작은 진주 알갱이 같은 거품이 솟아오르며 잔 위로 포말이 살짝 넘쳐 흘렀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가끔 있기는 하지만 연수의 중국법인 주재원 시절에는 백주든 홍주든 중국내에서 제조한 가짜 술들이 많이 돌아다녀 중국 술을 즐겨 마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칭타오 맥주는 독일사람들이 120여 년 전 산동반도의 청도지역을 지배하며 물 좋은 그곳에 맥주 공장을 짓고 만든 독일식 맥주인데다 중국의 백주에 비해 훨씬 가격도 저렴하고 도수도 약해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는 연수의 흥미를 끌만 했던 맥주였다 

 
이런 호기심 탓에 어쩌다 한번 맛을 본 칭타오 맥주 맛이 깔끔하여 그 후로도 가끔 마시게 됐고 한국에서도 많은 양이 수입되고 있어서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맥주이기도 했다 ​

 
“우선 갈증도 풀 겸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시지요.” ​

 
이상무와 연수는 통상의 건배 말이나 의례적인 인사말도 없이 맥주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서로의 입으로 가져갔다 

 
적당히 차가워진 시원한 탄산음료처럼 혀끝을 가볍게 톡 쏘며 목에 감기는 맛이 시원했지만 이어진 이한경 상무의 이야기는 시원한 맥주의 맛으로 넘겨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ㅇㄷㄱ 21/05/11 [09:44] 수정 삭제  
  아~~ㅠㅠ 서류 내용이 뭐냐고요!!! 금요일까지 궁금해하며 기다려야 겠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雪花 21/05/12 [16:44] 수정 삭제  
  호기심을 점점 자극하시네요! 갑자기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어지는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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