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고도 란나왕국을 가다. (1)

운영자 | 기사입력 2014/12/17 [10:06]

태국 고도 란나왕국을 가다. (1)

운영자 | 입력 : 2014/12/17 [10:06]
▲     ©노장서기자


란나타이(Lanna Thai)는 20세기 초 태국에 완전히 합병될 때까지 약 600여 년간 태국 북부지역에 실존했던 왕국이며 정치적 연합체의 성격을 갖는다. 치앙마이, 람푼, 람팡, 프래, 난, 파야오, 치앙라이, 치앙센 등이 여기에 속하며 치앙마이가 그 중심이었다. 
 
란나타이는 13세기에 ‘멩라이’(Mengrai. 재위 1259-1317)라고 칭하는 인물에 의해 수립되었다. 멩라이는 치앙센 부근 언양(Ngoen Yang) 출신의 왕으로서 용맹한 야심가였다. 즉위 후 그는 연합-전쟁-개척의 수단을 적절히 섞어 적극적인 영토확장을 도모하게 되는데, 1262년도에 자기 이름을 딴 치앙라이(Chiang Rai)를 건설하여 수도를 이전하였고, 1281년에는 남부의 몬족 국가 하리푼차이(오늘날의 람푼)를 정복하고, 1296년에는 치앙마이와 람팡 및 파야오를 그의 영토에 포함시키는데 성공했다.

멩라이왕은 단순한 정복자만은 아니고 협상가이기도 해서 이웃국가인 수코타이의 람캄행 대왕과도 교분이 깊었으며, 후에 란나타이의 수도가 되는 치앙마이를 건설할 때 그를 초청해서 자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란나타이는 국가 수립 후 약 200년 만인 1558년에 버마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독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15세기 초 아유타야가 중부 태국의 유일한 강대국으로 등장한 이후 아유타야-버마간 경쟁과 충돌이 불가피해졌고, 1558년에 란나 점령을 통해 전초기지를 확보한 버마군은 마침내 1569년경 아유타야를 함락시킨다. 란나타이는 1578년부터 버마인들에 의한 직접 통치가 시작됨으로써 버마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16세기 말경 아유타야는 ‘나레수안’이라고 하는 영웅이 버마를 몰아내고 국권을 되찾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란나타이는 버마와 아유타야 사이에서 약 200년 동안 양국간 세력다툼의 볼모가 되었다. 란나타이의 이 같은 운명은 18세기 후반 아유타야가 버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한 이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1767년에 아유타야가 멸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유타야의 남은 세력들이 버마를 태국으로부터 완전히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톤부리 이후 차크리)를 수립하였다. 이 시기에 버마와 갈등을 빗던 란나 지역의 통치자들이 버마로부터 등을 돌려 태국과 힘을 합쳐 버마를 몰아내는데 성공하고 태국으로부터 정치적인 자치권을 부여 받게 된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버마와 라오스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태국은 란나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1939년 마지막 통치왕자가 죽자 중앙정부에서 주지사를 파견함으로써 마침내 란나는 태국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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