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쓰는 최초의 글, 라이프 아카이빙의 시작

강명옥 | 기사입력 2026/01/30 [09:35]

나를 위해 쓰는 최초의 글, 라이프 아카이빙의 시작

강명옥 | 입력 : 2026/01/30 [09:35]

 

▲ 한국건강관리협회     ©강원경제신문

 

나를 위해 쓰는 최초의 글, 라이프 아카이빙의 시작

 

 

요즘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라이프 아카이빙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라이프 아카이빙은 나의 지난 삶과 현재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겨 콘텐츠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넘어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감과 영감을 주는 강력한 퍼스널 브랜딩 도구가 될 수 있다.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저 노인 1’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라이프 아카이빙에 대해 살펴본다.

 

타인의 언어로 점철된 지난 30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손이 잠시 허공을 맴돈다. 지난 30여 년간 나는 수만 장에 달하는 문서를 생산해왔다. 보고서, 기안서, 회의록에다 수없이 많은 이메일. 내 손끝에서는 늘 활자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대한 데이터 속에 는 없었다. 그 글들은 회사의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었고, 상사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주어는 항상 우리 회사이거나 본 프로젝트였지, ‘였던 적은 없었다. 나는 타인의 언어를 빌려 내 삶을 증명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직함이 사라지고 명함이 휴지 조각이 된 지금, 나는 비로소 텅 빈 모니터 앞에 홀로 앉았다. 결재 라인을 통과할 필요도, 누군가의 피드백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백지. 이 하얀 공간이 어쩐지 낯설고 두렵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온전한 자유이자, 나를 위해 쓰는 최초의 글이기 때문이다.

 

왜 지금 라이프 아카이빙인가?

은퇴는 사회적 죽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사회적 가면을 벗는 시간이라 정의하고 싶다. 가면을 벗은 맨얼굴의 나를 마주하니 문득 두려움이 엄습했다. ‘과거의 나는 열심히 살았지만 그 흔적은 휘발되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간들은 회사의 서버 속에 잠들어 있거나 삭제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오늘 무엇을 먹었다는 식의 일기를 쓰려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아키이빙(Archiving)하고자 한다. 아카이빙은 가치 있는 기록을 선별하여 보존하는 행위다. 박물관이 유물을 통해 한 시대의 문화를 보여주듯, 나는 나의 글을 통해 한 인간의 우주를 복원하고 싶다.

 

나의 실패, 나의 영광,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징크스, 이제 막 시작된 인생 2막의 서툶까지. 이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수많은 노인 중 한 사람으로 뭉뚱그려질 것이다. 나는 기록함으로써 존재하고 싶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아 선명한 역사로 남기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유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 예전에는 매출 ○○% 달성같은 거창한 성과만이 기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의 아카이빙 기준은 다르다.

첫째, 나의 감정을 기록할 것이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솔직한 마음들, 퇴직 후 처음 맞이한 평일 아침의 적막감, 낯선 도전을 하며 겪는 시행착오들. 이 날것의 감정들이야말로 내 삶의 진짜 무늬다.

둘째, 나의 경험 자산을 정리할 것이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인생을 살며 깨달은 지혜 혹은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이정표가 될지도 모른다.

셋째, 오늘의 소소한 발견을 수집할 것이다. 산책길에 만난 이름 모를 꽃, 우연히 들른 카페의 커피 향, 아내와 나눈 짧은 대화에 담긴 온기와 냉기,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놓치고 살았던 일상의 질감을 촘촘히 기록하려 한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이 기록들은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오타가 있을 수도, 논리가 정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것은 누구에게 검사받기 위한 보고서가 아니니까. 라이프 아카이빙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과정이다. 지나간 나를 위로하고, 현재의 나를 응원하며, 다가올 나를 준비하는 가장 정성스러운 의식이다. 나는 오늘부터 내 인생의 편집장이자 작가가 되기로 했다. 어느 날 먼 훗날의 내가 이 기록들을 다시 꺼내 보았을 때 당신, 참 치열하고도 아름답게 살았구나라고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녀와 가까운 지인들이 나를 추억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 그 날을 위해 나는 오늘 한 줄의 문장을 쓴다.

 

이상은 퇴직 직후 극단의 혼란 속에서 퇴직일기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필자가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내 삶의 전체 기록을 글로 남기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적어본 것이다. 기록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멋진 방법이다. 지금 고민하는 그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홋날 자신에게는 든든한 자산이 되고, 타인에게는 귀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글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에 라이프 아카이빙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제시한다.

첫째, 물건으로 보는 내 인생을 쓰는 것이다. 추상적인 인생 이야기보다 구체적인 물건에 얽힌 사연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내 인생의 변곡점에 있었던 물건들을 통해 나의 직업관과 삶의 태도를 보여주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첫 직장의 사원증과 마지막 명함을 비교하며 느낀 점, 20년 넘게 사용한 낡은 계산기와 현장에서 신었던 안전화, 처음 받은 칭찬 편지나 힘들었던 프로젝트 기획안 등을 소재로 삼으면 이야기를 풀어가기 쉽다.

둘째, 처음 겪는 퇴직을 소재로 하는 것이다. 은퇴 준비 과정이나 은퇴 직후 날것의 감정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겪게 되지만 아무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 은퇴 후 멘털 관리 과정을 공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퇴직 100일 전부터 매일의 기분 변화를 기록(설렘 vs 두려움)하는 D-Day 카운트다운, 출근하지 않는 첫 월요일 아침 9시의 풍경과 기분, 퇴직한다고 하니 연락이 끊긴 사람과 먼저 연락 온 사람에 대한 고찰, 출근길이 아닌 등산로나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 깃든 속마음 등이다.

셋째, 현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아카이빙을 쓰는 것이다. 이는 기록을 넘어 강연이나 전자책 등 수익화로 연결되기 가장 좋은 주제이다. 나의 30년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돈을 주고서라도 배우고 싶은 치트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 후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방법이다. 예를들어 ○○업계에서 30년간 일하며 깨달은 절대 망하지 않는 영업비밀, 신입사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와 대처법, 내가 다시 팀장이 된다면 절대 하지 않을 말 3가지 등이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장

발췌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지 26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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