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림삼의 초대시 **
고작 개꿈 -
하늘은 초록색으로 떠 있고, 나무는 검정색으로 자라고, 길은 보라색으로 나 있고, 집은 빨간색으로 서 있고, 호수는 노란색으로 빛나는 곳
나는 늘 총 천연색 꿈을 꾼다네
내 꿈속에는 언제나 딴 세상이 있지, 뒤바뀐 세상 내 꿈속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뒤로 가고 하늘에선 개들이 날아다닌다네
슬플 땐 웃고, 즐거워 우는 세상 산 자는 눈 감았고, 죽은 자 시끄럽게 구는 내 꿈 속에선 밤낮 없이 나만 왕이지
그레서 난 밤낮 없이 잠만 잔다네 개꿈 꾸려고-
시의 창 -
‘림삼 제 2시집’인 ‘일년이면 삼백예순 날을’ 중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얼추 오십년 가까이 묵은 시다. 당시라면 많이도 젊었을 적인데 하물며 어찌 개꿈 따위나 꾸면서 허송세월을 보냈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피끓는 열정과 불타는 청춘으로 세상을 정복하려 들었어야지 한낱 개꿈에나 몰두하면서 꿈속 세상을 탐닉하고 있었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허기사 그랬으니 지금도 주제비가 요 모양 요 꼴인가 보다.
게다가 아직도 꿈의 주제나 소재는 변치 않고 오늘까지도 줄창 개꿈이니, 이젠 질릴만도 한데 이 버림받은 끈기는 도무지 누구에게서 물려받은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이 먹었으니 이제라도 개는 말고 돼지나 용이나 뭐 그런 동물들을 소재로 삼는다거나, 아니면 동물성은 이 쯤에서 아예 끊어버리고, 그 재수 좋다는 똥이나, 아니면 혹여 운수대통의 조짐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망자를 만난다거나, 불 구경을 한다거나. 그렇게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주제를 꿈 속에 슬그머니 끼워놓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그저 하는 짓이 생시나 꿈이나 한결같이 따라지다.
그러면서 한 켠으로는 요행수나 바라고 있는, 감나무 밑에서 큼직한 과실이라도 떨어지지 않으려나 하면서 고개 아프도록 행운 바라예는 필자의 현실이 구차하고도 모양 빠지지만, 그러니 어쩌랴? 애시당초 이렇게 생겨 먹은 팔자인 것을. 어제 밤도 간절한 염원으로 복꿈을 꾸기를 기둘렸으나 새벽에 깜짝 놀라 깬 어스름에 느껴지는 건 뒤죽박죽된 스토리의 허망한 결론 뿐이니, 그렇다고 다시 잠 들 것도 아니고, 주섬주섬 머리맡의 자리끼만 들이켠다.
꿈에서 만나지 못한 행운이라면 오늘 생시에서 혹여 만나질지 모른다는 애매모호한 기대로 스스로에게 기합을 불어넣으며, 부적같이 감싸쥔 소망을 소중하게 품에 갈무리하면서 고단한 오늘길 나설 채비를 한다. 실상 운명이라는 건 거절한다고 해서 비껴가지도, 바란다고 와주지도 않는다. 그냥 시간의 흐름을 따라 되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순리대로 적응하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거부하는 몸짓도 회피하는 염원도 다 부질 없다. 사람과의 인연도, 일이나 사건과의 조우도, 이미 하늘에서 예비된 섭리대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그냥 현실에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요 대응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무엇인가 안 되는 일 있어도 결코 실망하지는 말자. 잘 되는 일도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게 현명한 거다. 더불어 사는 것이 정말 좋지만,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사람을 피하신 적도 있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범인인 우리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자.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마음쓰고 아파하지도 말자. 그냥 잊어버리자. 세상은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둥글게 살아가자.
누가 나에게 섭섭하게 하더라도 그 동안 그가 나에게 베풀어 주었던 고마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밥을 먹다 돌이 씹혀도 “아무래도 돌보다는 쌀이 많아.” 하며 껄껄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밥이 타거나 질어 아내가 미안해 할 때 “누룽지도 먹고 죽도 먹는데 뭐.” 하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는가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이 잘 사는 것을 배 아파 하지 않고, 사촌이 땅을 사도 축하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서 좋고, 날이 개면 쾌청해서 좋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의 약점을 보고 나는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남의 장점을 보고 그것을 본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루 세 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비가 새도 바람을 막을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은 비록 생활이 궁핍하다 해도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리 급박하고 커다란 일도 하루가 지나면 어제로 밀려나고야 만다. 아무리 힘들었던 일도 오늘은 어제라는 바닷물에 묻히고 만다. 은근히 찔러대는 가시같은 아픔들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커다란 문제들도, 흐르는 시냇물처럼 흘러 지나가고 어제가 되어버린다.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새하얀 도화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새벽 도화지는 새롭고 깨끗할 뿐이다. 우리는 어제 일을 다시 가져다 그리지 말아야 한다.
‘사마광’은 1천년 전 중국 ‘송나라’ 때 사람이다.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어느 고관대작 집을 갔는데 그 고관 대작의 5대 독자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장독대에 있던 큰 물독에 빠진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술래가 찾지 못하도록 몸을 숨기려다 독에 빠지게 된 독자가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는 비명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사다리를 가져와라. 밧줄을 가져와라.” 소리쳐대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물독에 빠진 어린 아이가 숨 넘어갈 지경에 도달한 것을 안 소년 사마광이 돌을 집어 들어 물독을 향해 던졌다. 독이 깨지면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사마천의 기지 덕분에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그 물독이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 것이고 몇 대를 이어온 귀한 것이며, 아주 먼 고을에 있는 옹기장이에게 주문을 해서 오랜 기간 작업을 해야 구할 수 있는 것이라느니 하며 물독 깨진 것을 아쉬워 했다.
그러자 소년 사마광이 그 어른들을 향해서 말했다. “拈一放一(염일방일)!”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어른들은 사람의 생명보다 물독 값, 물을 길러 온 노동력, 관리소홀, 책임소재 등을 따지느라 정말 소중한 것을 잃고 마는 우를 곧잘 범한다. 사마천의 염일방일은 우리가 진정 귀한 것이 무엇이며, 그 귀한 것을 얻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돌로 깨부셔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소중한 하루의 날들을 헛된 개꿈으로 소비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진정 우리에게 주어진 귀하고 높은 삶의 의미를 깨달아 한 걸음씩 차근차근 전진해야 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을 곱씹으며,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 하는 욕심이나 단번에 멀리 가고자 하는 망상을 버리고 스스로 자신을 견인하는 지혜를 쌓아가야 한다. 아무리 힘겹고 벅찬 오늘이라 할지라도 하루가 지나면 어제가 된다. 그리고 다른 새 날이 밝아온다. 그 새 날의 주인공도 역시 소중한 오늘의 주인공이 나였던 것처럼,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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