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영 작가 - 도를 아시나요

강명옥 | 기사입력 2026/01/08 [01:01]

장석영 작가 - 도를 아시나요

강명옥 | 입력 : 2026/01/08 [01:01]

▲ 장석영 작가     ©강원경제신문

 

작품2. 도를 아시나요

장석영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대학 호숫가를 걷다가 호수 위에 떨어진 벚꽃을 바라보고 있는데 낯선 여인이 다가와서 한 마디 건넨다. 흘깃 쳐다보니 얼굴 모습이 아주 수려하게 생겼다. 그 만한 미모에 목소리까지 고우니 마른 감정에 호감정이 절로 전해진다. 나는 속으로 이 여자 사람 볼 줄 아네,’ 하고 우쭐해 질 무렵 재차 그녀가 말을 건넨다. 혹시 도를 아시는 지요?”

동서고금을 통해서 숱한 사람이 도()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도를 터득했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삼라만상에 대한 깨달음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말일 게다. 하지만 장자(莊子)도는 세상 모든 곳에 있다.”라고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했다. 개미거미땅강아지에게 있고 쌀 껍데기깨진 벽돌기왓장에 있으며 심지어 대소변에도 도가 있다고 했다. 이는 하찮음에서 삶의 근본을 찾을 수 있으며 작은 것에서 소중함을 아는 순간, 행복의 지혜가 열리게 된다는 말로 달리 표현할 수 있겠다. 이렇다 보니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필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 대표 운동선수로 활동했다. 하루는 감독 선생님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서러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합숙소 뒷산으로 가서,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한참을 울다가 우연히 밤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내 의식 안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그동안 나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은 오로지 운동이라 생각하고 모든 생활을 운동 중심으로 이어갔다. 운동만 잘하면 장차 내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운동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런데 내가 지향하고 있던 그 희망이 한 순간에 물음표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운동 외에도 아름다운 것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운동 외적인 것에서 새로운 희망을 키워가고자 노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맑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무리는 내 마음의 얼룩을 마법처럼 지워가고 있었다. 세상사 분주함은 별빛에 녹아 사라지고 마음은 여유를 찾아가면서 진정한 평온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밤은 점점 더 깊어가고 더 이상 마음 밭에 남아있는 것 없이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즈음 갑자기 어두운 하늘에서 별빛을 무대로, 한 무리의 별똥별이 강렬한 빛을 발하면서 사라졌다. ‘, 이것은 또 무엇일까.’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이어졌던 별에 대한 상상력과 로맨틱한 감정이 묘하게 섞여 흐르면서 감정의 이중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은 그 존재로 영원할 것 같았는데 아름다운 것도 어느 순간에는 빛을 잃고 떨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몇 년 후, 마음이 통하던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나는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친구와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술과 담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서서히 좋지 않은 쪽으로 기울어 갔고 정신적으로도 천천히 지쳐가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술과 담배를 당장 끊지 않으면 더 큰 화에 직면할 거라는 경고도 받았다. 나는 마음을 채잡고 술과 담배를 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술 담배는 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끊고 난 다음이 문제였다. 후유증으로 저녁에는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낮에는 항상 피곤한 상태였다. 불면증이 이어지면서 우울감도 생겼다. 어느 때는 예전에 마시고 피웠던 술과 담배를 다시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하면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힘든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포기라는 단어가 자주 떠올랐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도 포기라는 단어와 맞닥뜨리게 되면 그 다음에는 여지없이 공포감에 휩싸였다. 죽음의 불가피성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그에 대해 특별히 대처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때로는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며 존재와 가치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20171102

히말라야 체르고리봉 등산을 마치고 하산 하던 중, 나는 폭이 좁은 언덕길에서 길 아래로 구르는 사고를 당하여 응급헬기로 카트만두 국제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처치 후 곧바로 귀국 절차를 밟아 국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사고 순간에서 국내 병원으로 이동하기까지 나는 죽음의 실체를 현실에서 똑바로 바라보면서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에 있으며 또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혼자서 묻고 묻는 생각이 길어지면서 그 과정은 더 깊은 고독감이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인간은 경험하는 존재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인생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일부 종교인은 죽음까지도 경험을 통해서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고도의 해탈 과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죽음의 본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평소 삶의 질을 어떻게 높여야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퇴원 이후에도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은 계속 되었지만 뚜렷한 해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 동백꽃공원을 다녀오게 되었다. 공원의 나무들을 바라볼 때는 가지마다 송이송이 맺힌 붉은 꽃에 취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르고 가슴엔 용로의 열원과도 같이 붉은 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한동안 깊은 미의식(美意識)에 빠져들 무렵 나는 또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나뭇가지 아래로 떨어진 선홍빛 꽃잎이 붉은 무덤을 만들어 그리움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들은 나뭇가지에 남아있는 꽃보다 더 맑고 진한 피의 빛깔로 주변인의 시선을 끌었다. 나는 진 꽃을 바라보며 그의 아름다움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살피다가 불현듯이 진 꽃은 핀 꽃으로부터 오는구나.’ 하는 짧고 강한 메시지를 읽었다.

낙화로부터 자연의 순리와 인생 현실의 중요함을 알게 된 깊은 울림.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하나의 과정 안에서 동일한 존재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를 아시나요?”라고 물었던 여인에게 도는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체득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로 대신한다면 현문우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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