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림삼의 초대시 **
- 겨울 바람 -
아주 조금, 낡은 창살문 열었을 뿐인데 서성이던 바람들 소스라쳐 먼저 밀려들어
늘어선 병동 좁다란 울타리 갇혀 지내던 바람들이-
참 이상도 하지 이제사 말하지만 여긴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같은 바람들이 불고있었어
내가 알던 언젠가의 그 바람들이야, 그건
황량하고 칙칙하고 앙상하던 내 추억의 겨울강에서 불어온 바람들,
기슭 넘어오지 싶게 기세 좋이 넘실거리던 풍경이 사람 부풀게 하는 바람에 갈아부은 듯 흰색으로 덮이면 이스트 뿌린 것 처럼 온통 하얗게 변하는 추억....
겨울숲도, 겨울강도, 겨울을 사는 사람의 가슴도, 바람결 스멀스멀 부풀어올라 달콤시큼한 발효의 냄새 풍기고 있을 터,
자꾸만 눈감게 한다
좁디좁은 방안 고개 디밀어 시린 추억 밀려들게 하는 겨울 바람들이-
- 시작노트 -
겨울이 무르익기 시작한다. 겨울의 시작점부터 추운 숨결을 몰아쉬면서 우리는 2025년의 겨울을 살아내기 시작했다. 올 겨울은 예년에 비해서 엄청 추울 거라는데 아직은 별다른 큰 추위 없이 겨울이 소리 없이 쌓여간다. 허기사 아직까지가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끝까지 이럴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언제 온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혹한이 우리를 엄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항상 대비하면서, 긴장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겨울의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세먼지는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올려다보이는 하늘이 뿌옇다.
예전에는 미세먼지니, 초미세먼지니, 황사니, 매연이니, 이런 환경 공해라는 건 전혀 없었는데. 사시사철 푸르른 하늘과 맑은 공기가 너무도 쾌청한 것이 자랑인 우리 나라의 하늘이었는데. 언제부터 이토록 대책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는지 돌아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세상을 암담하게 물들이는 대기의 습격에 그저 하리망당해질 따름이다. 이것이 이웃 나라인 중국만의 영향일리도 없고, 지구촌 전체가 무방비로 배출하는 문명의 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매일 별 생각 없이 저지레하는 우리의 일상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드러나는 민낯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 참담하고, 한결 더 고개를 숙일 수밖에.
대관절 우리의 편리함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인간들이 자랑하고 큰 소리치는, 끝닿은 데 없는 지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로봇과 드론을 앞세운 그 첨단과학이, AI나 챗봇으로 열어가는 미래과학이 만들어내는 발전과 폐해는 어떤 상대적 공식으로 결론을 짓게 될까? 어쩌면 불확실하게 다가오는 미래의 우리 모습은 진정한 행복이나 만족 보다도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여겨져 자못 불안하고 두근거린다. 그저 주어진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인 우리들이지만, 이제라도 가능하면 진솔하고 성실한 자기 성찰과 점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임은 분명하다.
설사 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을지라도 명확한 점검과 확실한 성찰이 있다면 다시 바로잡아 길을 되짚을 수 있다. 설령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으로 실수를 했더라도 반성과 다짐을 통해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삶의 얼굴이다. 어차피 완전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대충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오늘날의 인류는 이만큼 발전해 온 것이다. 이것이 이룩된 역사이며 쌓여진 전통의 속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전 유럽을 석권하던 ‘나폴레옹’이 ‘폴란드’를 침략하던 때의 일이다. 거침없이 폴란드를 점령하던 나폴레옹이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한 폴란드 영주가 나폴레옹을 초대해 저녁 만찬을 대접했다. 그런데 영주가 안내한 나폴레옹의 자리는 위에 상석이 두 자리가 더 있는 세 번째 자리였다. 불쾌한 나폴레옹의 표정에 함께 온 신하들은 항의하며 영주에게 물었다.
“우리 황제의 말씀 한 마디면 이곳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황제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 자리에 상석을 저렇게 비워두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영주는 주변 사람들과 나폴레옹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두 자리는 곧 나오실 제 부모님의 자리입니다. 두 분이 연로하셔서 거동이 조금 늦으십니다. 황제 폐하가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분인지 모르지만, 이 집안에서는 저희 부모님이 가장 높은 분입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 상석을 준비했습니다.”
영주의 효성과 기개에 감탄한 나폴레옹은 마음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위대한 업적보다도 부모님을 공경하고 가족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이 어쩌면 더 크고 위대한 일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도 항상 우선순위에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의 모습을 먼저 떠올려 보는 올 겨울이 되면 좋겠다. 좋은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좋은 가정이란 누군가가 전해주는 선물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가고 가꿔가는 노력의 산물이며 열매다.
몸이 너무 편하거나 생활이 호사스러우면 마음은 만족하기 보다 오히려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몸과 마음이 호사스러움과 쾌락을 즐기다 보면 정신과 영혼은 서서히 병들게 된다. 반대로 몸과 마음이 시련을 겪게 되면 그 시련 동안에는 괴로울 것이나, 시련이 끝나고 보면 정신과 영혼은 겪은 시련만큼 성숙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시련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 빠른 길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의하는 것이며, 인생에 대한 깊은 자유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자성을 발견함으로서일 것이다. 시련에 의하든,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의하든, 깨달음이 있으면 정신과 영혼은 건강하게 성숙할 것이고, 쾌락 속의 방종이라면 정신과 영혼은 병들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살다보면 자꾸 자꾸 낡아지고, 닳아 없어져 갈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첫 장부터 빽빽하게 잘 정리해 나가던 노트를 다 썼을 때라거나, 또 두껍던 일기장 한 권이 어느새 마지막 장을 보일 때, 새로 산 잉크 한 병이 어느 새 바닥을 보일 때, 참으로 기분이 좋다. 또 책이나 사전에 손 때가 묻어서 얇게 부풀어 오른 것도 은근히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 모습이 좋아서 억지로 길을 들이려 하거나 닳아 보이게 하려 해도, 그처럼 자연스러운 멋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낡고 닳아지는 것들은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그것들이 낡고 닳아가는 사이에 내 한 쪽이 충실하게 채워져가고 있다는 뜻이 될테니까 말이다. 바쁘게 이리저리 쏘다니다보니 피곤에 겨워 그리 썩 컨디션이 좋지를 않다. 가는 데 마다 주절주절 이야기 보따리를 잘도 풀어내곤 했었는데, 웬 걸, 어제 오늘 사이에는 힘이 좀 부치는 것 같다. 그래도 항상 들르는 장소에 도장 찍듯 걸음하고, 작은 목소리로라도 정겹게 나누는 대화는 사뭇 즐겁기만 하다. 오랜 집기들에 더 애착이 가는 것처럼, 낡으면 낡아지는 만큼, 그리고 손 때가 묻는 만큼 정이 드는 탓과 무관하지 않음이다.
길이 든다는 것은 적응이 된다는 것. 그만큼 편안해지는 것이고, 비록 생명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젖어들어 속(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한 끼의 밥이 우리 앞에 놓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하며, 한 뼘의 키가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물들의 목숨이 사라져야 하는지 돌아본다. 지금까지 우리를 존재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희생되어 왔는지도 돌아본다.
마음이 흥부를 만들고, 생각이 놀부를 만든다. 흥부가 다리를 다친 제비를 보고 불쌍함을 느껴서 치료를 해주었던 것은 마음에서 기인된 행동이지만, 놀부가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분질러서 치료를 해주었던 것은 생각에서 기인된 행동이다. 자신과 대상이 합일되었을 때의 감정은 마음에서 기인되고, 자신과 대상이 분리되었을 때의 견해는 생각에서 기인된다. 무엇이건 상대적일 때에 평가가 가능한 것 같다. 공급해 주는 이들이 있어 수요자가 있는가 하면, 수요자가 있어 또한 생산을 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제 이 겨울이 점점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시작된 이 겨울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지 다시 한 번 다잡아 자신을 점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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