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림삼의 초대시 ***
낙엽 사랑 -
가을인데다 거리 서있으니 이 정도면 구색은 갖춘 셈, 낙엽에서 난 사랑을 본다
늦가을 인적없는 공원에서 보았음직 한, 삭풍 힘겨워하다 비명없이 떨어진 한 잎 낙엽인 양 속절없는 만남일지언정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때로는 저 낙엽처럼 부질없는 건 아닐까?
햇빛 곤두박질한 바로 그 아래 가을의 그늘 저녁바람 쓸려와 발목에 채여 나뒹구는 낙엽 피해 조심스레 걸음 옮겨디디면
어둠 내려앉기 시작하는 거리로 사랑은 조심스레 숨 몰아쉬고, 가을지면 낙엽지듯 사랑 갈테니 다 잊을 줄 알았는데
이 마음에 붙은 군더더기는 몸 붙은 살보다도 빼내기가 힘들구나 사랑, 그 쓸쓸한 꿈을 어쩌랴!
사랑이 제 마음대로 날아든 것을, 가을이야 지건 말건 여기 이곳 달라붙어 꼼짝않는 걸
시의 창 -
그래, 올 가을에도 영락없다. 변변한 추억 하나도 못 건졌는데 하마 지려고 한다. 언제나 가을만 되면 속는 줄 알면서도, 해마다 가을이 오면 뭔가 있을 듯 싶어 제법 설레면서 겅중겅중 들떠 한 철을 보내곤 한다. 부질없는 미련일망정 가을의 끝자락이라도 붙들려고 애는 써보지만, 이 맘 때 쯤에는 얼마나 더 빠른 발길인지 도무지 녀석의 그림자조차 잡을 길이 없다. 그렇다, 이제 가을은 저 멀리로 떠나가고 있다. 이렇게 또 하나의 가을을 보내는구나. 올 가을이, 내 삶 속에서 얼마나 더 남아있을 가을의 한 페이지였을지.... 허기사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는 것, 또 겨울이 지나면 이내 봄이 뒤따라 온다는 것, 이런 것들이 과연 삶의 본질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인일까? 가을의 진실이 겨울이 되었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고, 겨울의 진리가 봄에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진대, 하루하루의 오늘들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막연한 내일의 삶에 기대를 걸고 있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도 허무하고도 짧다. 그래서 정신 차려야겠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바라보아야겠다.
그래도 올 가을에는 제법 여기저기 돌아치면서 산하가 변하는 모습들을 눈에 가득 담아볼 기회가 종종 있었던 셈이다. 모처럼 다람쥐 쳇바퀴같은 일상의 제약에서 일부나마 풀려났다는 해방감에 자못 들뜬 심사풀이 삼아 처처를 기웃거리다보니 한 철 저물녘이다. 물론 주로 바쁜 일정에 의한 돌아침이라서 맘 편히 관광을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손쳐도 내내 지하 구석에서 고객들과 씨름이나 하던 지난 몇 해에 비하면, 출장 삼아 길을 나서는 일이 잦았기에 가을의 시절을 이만큼 누렸다는 건, 절기의 운치로는 꽤나 드문 호사였다. 남한강을 따라 흐드러진 군데군데 산자락의 단풍들과 억새의 군락 하며, 물안개 피어오르는 여주의 강변도로에서 가던 길 멈추고 서서는, 넋 놓고 가을과 밀회를 즐기던 이른 아침의 그 짜릿한 공기는, 여름내 더위에 시달린 폐에 상큼한 가을의 기운을 한껏 불어넣어 주었다. 눈 감아도 떠오르는, 강물에 비치는 가을은 정녕 농염하였다. 여울의 신비로움에 화려한 단풍의 잔상까지 환상적으로 더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절없는 물안개까지 훑고 가면, 말 그대로 강변의 가을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렇게 감동과 감탄으로 몇 차례 오가는 중에 가을이 푹 익었다. 이젠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고, 하늘은 더욱 더 높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설레는 가을의 정경이었는데, 더욱 마음을 뒤흔드는 강변의 억새는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진즉에 눈부셨다. 단풍이 북(北)에서 내려오면 억새는 남(南)으로부터 올라오는 가을진객이다. 가을 풍경은 사실 억새 풍경이다. 억새가 9월 중순부터 11월 하순까지 두 달 내내 장관을 이룬다면, 단풍은 기껏해야 한 달을 못 간다. 그래도 단풍을 윗길로 치는 건 아마도 그만큼 단풍이 강렬해서일 터이다. 높고 깊은 산에서 만나는 단풍이 화려하다면, 남한강 옛길의 단풍은 수수하였다. 남한강 옛길에서 만났던 단풍은 다른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의 되바라진 단풍과 달리 한갓진 맛이 있었다. 그 멋드러진 단풍과 억새를 솔찮게 만났던 올 가을의 필자는, 실로 계절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는 복을 누린 편이니, 퍽이나 행복하고도 수지맞은 축이었을 게다. 다음 가을에는 반드시 미리 다부진 일정 차비를 갖추고, 은애하는 누군가와 더불어 강변의 가을을 만끽하리라고 다짐해본다.
또 하나, 가을의 운치를 가득 담은 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올 가을에 필자가 더러 올랐던 치악산 성남계곡이다. 아마도 체력단련 삼아 시간 될 때 마다 부지런히 오르내렸던 것 같다. 실상 시절이 가을이라면 대한민국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겠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완벽한 아름다움을 우리 산하는 잔뜩 품고 있다. 한데 좀 허망타. 천지 사방에서 불타던 단풍 무리가 완전히 남하(南下)하고 나면 어느새 겨울이다. 게다가 가을의 뒷자락부터 전국 주요 산들은 일제히 산불 조심 입산 통제 기간에 돌입한다. 아쉬움도 이런 아쉬움이 없다. 늦기 전에 부지런히 한 번이라도 더 올라야겠다. 성남계곡을 끼고 치악산 중턱까지 가는 길 내내 낙엽송과 자작나무가 끝이 없다. 낙엽송은 가을이면 바늘 같은 솔잎을 깊은 갈색으로 물들이며 떨어뜨리는 나무다. 하늘만 보고 죽죽 자라기에 조림 잘된 낙엽송림을 걸으면 거인 군단 속에 에워싸인 느낌을 주는 잘생긴 나무다. 자작나무는 어떤가? 가냘픈 몸통에 새하얀 껍질, 겨울이면 그나마 옛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하얀 나신(裸身)을 드러내는 겨울 숲의 귀부인, 이맘 때면 노랗게 물든 잎들이 그 높은 가지에 붙어 흩날린다. 애처롭고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자생하는 법이 없는 이 두 나무가 등산로를 따라 산등성이에 열과 오를 맞춰 숲을 이뤘다. 원주 사람들은 낙엽송을 편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자작나무 또한 목록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윽하게 물든 성남계곡 낙엽송림. 가을이 꼬리만 남기고 사라지는 이 때, 치악의 오솔길에서 만나는 풍경이다. 사라져가는 가을의 꼬리가 그렇게 치악의 뒷 편에 숨어 있다. 만추(晩秋)와 다가올 겨울 그림자를 한꺼번에 목격할 수 있는 이 계곡에도, 다음 가을에는 필히 누군가와 다정스레 어깨 맞대고는, 오손도손 가을의 밀어를 나누면서 걸어 오르리라고 하늘 향해 약조를 해본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영긂을 안다고 했다. 그렇다, 봄철엔 모든 이가 시인이 되고 가을에는 철학가가 된다고 했던가. 어느 결에 가을이 산정에서 머뭇거림 없이 슬금슬금 기어 내려와서, 지금은 온 세상에 가을이라는 이름표를 매단 채로 휘젓고 있다. 한 때는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뭇 산이 울긋불긋 가을 단풍옷을 잔뜩 끼어 입고 있더니, 어느덧 시들어 떨어지는 맥 빠진 나뭇잎이, 어찌 보면 나이 들어 사뭇 남루해진 필자의 꼬락서니와 흡사타 하겠다. 황혼은 그지없이 아름다우나 그 뒤에는 캄캄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나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옛 말이 틀림이 없으렷다. 목하 감성을 한껏 품은 가을이 가고 있다. 이어서 겨울이 다음 주자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그걸 안다. 그래서 겨울을 살아낼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다가올 계절을 기다려주고 있다. 바야흐로 짧기만 했던 올 가을이 부지런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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