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림삼의 초대시 **
언저리 -
수선화, 매화, 튜울립, 벚꽃.... 이름잰 봄꽃무리 앞다투어 솟는 사이로 저 홀로 시절 얼러 갈 국화 피어나니
계절 이긴 고수련가, 제 철 망친 계륵인가, 오밤중 집 나서서 벌건 대낮 돌듯 돌아 해 돋는 동녘으로 하염없이 내어닫는
이쪽 삶의 그쪽 언저리, 돌 맞아 피 흘려도
시의 창 -
진실의 언저리를 뭉퉁그려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진실의 편린조차 진실의 범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엄격하게 살펴볼진대 진실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칭하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진실은 정 중앙에 위치한 단면만을 콕 집어야 자신있게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충 묻어가는 허위나 사술을 일컬어, 스리슬쩍 얹혀져서 가면을 쓰고 있는 걸 가리켜, 진실로 오인하거나 착각하는 사람은 없다. 참과 거짓이라는 뚜렷한 명제 앞에서 우리는 과감하게 참의 반대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참은 미세하고도 좁은 범주를 포함하기에 진실일 뿐이고, 그 주변의 모든 비슷한 많은 것들은 통틀어 거짓의 얼굴이다. 우리 일상에 흔재해 있는 ‘페르소나의 가면’을 우리는 습관인 양 거의 무감각 상태로 마주보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입장에서 대부분 그러려니 하면서 합리화시키고는 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이미 익히 알고 있다. 우리가 숨 쉬듯 반복하고 있는 거짓의 얼굴들이, 허위의 가면들이 결코 참된 진실을 대신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은 원래 가면을 쓰고 사는 존재다. 영어의 ‘퍼슨person, 인간’은 어원적으로 ‘가면’ 또는 ‘탈’을 뜻하는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서 왔다. 여기서 가면은 ‘표리부동’을 의미하기 전에, 사회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역할’이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그에 알맞은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마치 배우들이 각자에게 맞는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여러 개의 가면이 요구된다. 전통사회나 근대사회에서는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가면을 강조했다. 탈근대 사회에 오면서 여러 개의 정체성, 즉 여러 개의 가면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가면을 몇 개 준비해놓고 살아간다.그렇다고 그런 사람이 다중인격자라는 말은 아니다. 가면 쓰기는 보통의 사람들이 세상살이를 위해 언젠가부터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다.
마땅한 처세술을 익히지 못해 방황하면서 근본적인 존재의 문제, 즉,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던 무렵 읽은 ‘강상중’의 ‘도쿄 산책자’는 초반부터 거세게 필자를 몰입시켰다. 일본 ‘도쿄대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 자기 정체성의 문제와 함께 도쿄라는 도시를 분석한다. 강상중 교수가 재일교포로서 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했다면, 필자는 방랑자 같은 삶을 살다가 그 언저리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정착하는 과정에서 혼란에 빠졌었다.
그런데 정작 필자에게 닥친 또 다른 문제는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을 접하는 도시인들은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처사다. 그러다 보니 도시인들의 세련된 예의와 친절이 오히려 차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도시인들이 차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너무 많은 사람과 사건을 접하며 피곤해진 뇌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관계에서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덴티티라는 명제를 놓고 고민에 들어간다.
‘아이덴티티(Identy)’의 사전적 의미는 의외로 단순하다. ‘동일한 것’, ‘일치한 것’, ‘본인’이라는 뜻도 있고, ‘본체 및 정체’, ‘독자성’, ‘주체성’ 등을 말하기도 한다. 즉, ‘나’라는 말이다. 나의 정체성이나 나의 주체성, 이런 말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이 말에서 파생된 것인 ‘ID’는 ‘Identification’의 약자다. ‘신분증명서’를 지칭하기도 하며, 심리학에서는 ‘자기동일시’라는 말로도 쓰고 있다. 사실 아이덴티티라는 것은 포괄적으로 몇 개의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거짓이냐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날에는 ‘부동(不動)의 나’, 또는 ‘확고한 아이덴티티’라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만큼 불확실한 시대도 없었으니까.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것일 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확실한 안정을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결과 자신이 안고 있는 불안이나 울분이 부정적 에너지가 되어 타자에게 분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놈은 형편없어, 저놈보다는 내가 나아.”라는 말을 하면서 남들보다 강해지려는 것이다. 이는 요즘 시대가 안고 있는 큰 문제다.
어차피 사람은 서로 알기 전에는 각기 다른 섬과 섬이다. 그 섬에 다리를 놓는 것이 바로 습관이다. 그 중에서도 휼륭한 인사의 습관은 품격 있는 인간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옷 입는 습관, 책 읽는 습관, 돈 쓰는 습관, 상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습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아는 습관, 아이들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감싸고 도와주는 습관, 사물의 이면을 관찰하는 습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습관이 모여서 인품을 만든다.
나쁜 습관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3의 눈’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다. 좋은 습관이 몸에 밸 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스물 네 시간 지켜보는 것이다. 의식의 일부분을 떼어내서 관찰자 역할을 맡기면 된다. 그렇게 반년 쯤 지나서 자신의 모습을 예전과 비교해보자. 분명 한층 더 성숙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방으로 뻗어있는 사람의 길들이 희로애락을 왕래케 한다. 사람의 뿔은 마음에서 솟는 것, 미움에서 솟을 때는 창같이 사납고 기쁨에서 솟는 뿔은 젤리같이 보드랍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운 이가 있으면 지금 편지를 써보자. 지금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당신에 대한 그의 기억이 날마다 작아져 다음 편지가 도착할 때 쯤이면 당신의 이름마저 생각나지 않아 편지를 반송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울러 지금 시작하자. 만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바로 시작하자. 지금 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그 일은 당신으로부터 날마다 멀어져 아무리 애써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때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어떤 일이든 타성이 있는 법이다. 지금, 때는 무엇의 타성으로 인함인지, 행함에 앞서 생각해 보는 것도 또한 살아감의 지혜이리라 여겨진다. 만일 당신이 살아가야 할 오늘이 삶의 언저리에 내팽개쳐져 있는 오늘이라면, 그 오늘이 회복과 부활의 몸짓으로 되살아날 기운을 싹틔우는 것도, 그래서 아름답고 달콤한 결실을 맺게 되는 것도 모두 당신 하기에 달려있다는 참된 진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결코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된 하루의 삶이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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