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창작입문(구상 지음, 2006)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5/10 [18:06]

현대시창작입문(구상 지음, 2006)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5/10 [18:06]

 

▲ 현대시창작입문(구상 지음, 2006)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현대시창작입문(구상 지음, 2006)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이 책은 2004년 타계한 구상 시인의 유품입니다. 구상 시인은 1947년 북한에서 발발한 문예지 ''응향'' 사건을 계기로 월남하여 서울예술학원(서라벌 예대의 전신) 등 여러 대학에서 40년 동안 강의를 하면서 시를 지었습니다. 이 책의 제1부는 그가 강의한 창작이론 및 실작지도 노트를 정리하여 구성하였습니다. 2부는 여러 행사와 문학지에서 발표한 10편의 논문을 수록하였습니다. 독자에게 대학 시창작 교재를 소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나, 시창작과 시읽기가 전혀 별개의 영역일 수 없으며, 오히려 시창작이론이나 기법을 습득하면 시읽기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은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라고 합니다. 시에 대한 정의의 어려움과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를 짓고 읽기를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시심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심이란 시를 불러일으키는 생각느낌흥취 등을 말합니다(11). 그런데 우리는 시심을 오래도록 잡아놓을 수가 없습니다. 폴 발레리는 시적 감흥이라 하여도 그대로 놓아두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구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순간, 또 그 신묘한 지각을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끄집어내어 항구적으로 보존하려는 것이 바로 시를 쓰는 작업(18)이라고 합니다. 시짓기는 바로 시심을 언어라는 매체로 기록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시심을 언어로 기록하는 일은 경험(상황)을 구체화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를 현실적 경험을 시적 경험으로 재구성한다고 합니다(21). 시적 경험으로의 재구성 기재가 관찰과 상상입니다. 시에 있어서의 관찰은 사물에 관한 과학적 정확성이 아니라 순수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의 조력을 필요로 합니다. 현실적인 경험이 시적 경험으로 창조되는 과정에서 시인의 상상력, 즉 연상력이 수반 발동하는 것(34)입니다. 결국 시는 관찰과 상상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며, 시의 수준은 관찰력과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에 비례할 것입니다.

 

관찰과 상상으로 재구성한 시심이 언어로 표현될 때 비로소 시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시는 언어예술이라고 하며, 시짓기는 언어를 통한 예술행위입니다. 언어는 '의미적 기능' '청각적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의미적 기능은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속에서도 그 한 가지의 지시성을 변화시키지 않으나 청각적 기능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또는 그것을 말하고 듣는 사람의 정서에 따라서 천만 가지 변화를 보입니다(42). 그래서 청각적 기능을 정서적 기능이라고 합니다. 훌륭한 시인이 되려면 '의미 속의 의미', 즉 말의 정서적 기능을 체득하는 것이 절대적 조건(42)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술은 감동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인데, 언어는 곧 말의 울림, 즉 말소리의 강약고저나 속도음색 등에 따라 상대방에게 복잡 미묘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54)이기 때문입니다.

 

시에 있어서의 언어란 존재에 대한 인식의 높이와 깊이와 그 넓이에 비례하는 것이며, 실제 작품에서 나타난 언어의 표상은 보이지 않는 인식의 치열성과 경험의 부피가 생명을 결정(243)하는 것입니다. 시심 깊은 말이란 결코 말의 수효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또 소위 미사여구를 많이 익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우리가 현실생활에서 쓰는 그 평이한 말의 의미적 기능과 정서적 기능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솜씨 있게 쓰느냐 하는데 그 열쇠가 있다(55)는 점입니다. 시어란 의미와 정서가 조화롭게 함축되어 녹아있는 말이라고 할 것이며, 위대한 시란 최대한의 의미를 지닌 언어에 불과(에즈라 파운드, 81)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시짓기란 있는 시어를 거저줍거나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언어를 조탁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시는 설득의 문학이 아니라 암시의 문학이라고 합니다. 암시는 비유, 특히 은유를 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능은 도식적 형태에서부터 복잡한 변형과 다양한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래서 비유기능의 질적 변화가 시의 진화의 역사(69)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유는 어떤 한 가지 사물이나 사실을 말하려 들 경우 그것 자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물이나 사실을 말하면서 '암시'로써 그 목적하는 바를 표현(62)하는 것입니다. 비유는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으로서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처럼, 시의 가치와 생명력의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시적 표현은 비유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비유는 크게 직유와 은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직유는 어떤 것을 다른 것과 직접적으로 비교해서 말하는 것이며, 은유는 두 사물의 유사성을 압축시켜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에서의 상징이나 심상(이미지)도 비유의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상(이미지)은 어떤 말을 듣거나 읽고 마음속에 떠오르고 떠올리는 사물의 모습(83)입니다. 시의 이미지는 시각적인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청각과 후각 및 촉각 등 모든 감각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모습입니다. 말은 그 뜻(의미)과 울림(음향)으로써 그 낱말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낱말들의 집합인 시의 한 줄(1)에는 그 줄마다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또 이미지를 다음 줄이 받고 넘기면서도 서로가 작용을 해서 결국은 그것이 집합된 것이 작품 전체의 이미지를 낳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연와공(煉瓦工)이 한 장 한 장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하나의 구조물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시의 한 낱말에 의한 이미지는 시의 각 행의 이미지의 합리적인 한 단위요, 또한 시의 각 행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의 합리적인 한 단위가 되지 않으면 그 시는 안정성을 지니지 못한다(86)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시심이 언어라는 매체를 통하여 비로소 시가 되는 일련의 과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실제 시짓기에 있어서는 이러한 과정들이 순식간에 융합되어 동시에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오랜 기간의 진통을 겪으며 나오기도 합니다. 즉 시인은 단숨에 시를 짓기도 하고, 오랜 탈고를 거쳐 비로소 한 편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음악가 중에서도 모차르트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악상이 떠오르면 그것을 즉석에서 보표에 옮겨 놓으면 훌륭한 음악이 되었고, 베토벤은 어떤 테마가 떠오르면 그것을 메모해 놓고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걸려 가며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최초의 착상 메모를 뒷날 발견한 그의 연구가들은 그것의 미숙하고 졸렬하기까지 한 최초의 발상 속에서 어떻게 그렇듯 훌륭한 기적적 결과가 나왔을까 하고 놀란다(187)고 합니다. 이러한 사례를 시짓기에서는 모차르트형과 베토벤형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유형인가?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 시인마다 다를 것이며, 동일 시인이 지은 시 중에서도 두 유형의 비율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나의 경우에는 발표한 시 중에서 적어도 95퍼센트 이상은 수차의 탈고 과정을 거쳤으니 베토벤형의 시들이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를 짓는다는 것은 손톱으로 바위에 글을 세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탈고의 과정을 이르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를 짓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언어의 붓으로 내면의 소리와 이미지를 그려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시인도 여느 사람들처럼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현실에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나아가서는 이러한 사회상황에 참여하며 시를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는 어떤 의미에서든 미적인 충격을 주어야 하는 것으로 그 시인의 주제나 소재가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어야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179)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합니다. 시를 정치적 현실로만 받아들여 정치제도나 경제기구나 사회적 계급성에다 도식적으로 연결시키거나 현실의 당위성이나 전략적 가치를 목적으로 다루려 들어서는 안 된다(175-176)는 뜻입니다. 시는 아무리 정의롭고 선하고 성스러운 것이라도 그것이 전략적인 이해나 목적에서 씌어져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술이 되지 않는다(178)는 점입니다.

 

시의 제재가 자연서정이든 인간의 정한이든, 사회현실이든, 나아가서는 존재론적 입장이나 형이상학적 관념이든지를 막론하고 스스로의 실존적 삶과 구체적인 결속에 있어야 한다(251)는 것입니다. 문학은 우리 육신생활에 있어 식량이나 마찬가지로 우리 정신생활에 있어서의 양식이요, 또한 종합 비타민 같이 여러 영양소를 함유한 정신의 활력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학은 다른 분야의 지식처럼 사물의 이치만을 깨우쳐 준다든지, 사물의 형상만을 살피게 한다든지, 감성이나 감각의 어느 면만을 세련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식을 전반적으로 흡수하게 하고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도 아주 다양하고 심층적으로 통찰케 하며, 이것도 조미와 조리를 하여 누구나의 구미에 맞도록 제공하고 있기 때문(203)일 것입니다. 좋은 시 내지 위대한 시는 시인의 개인적 감성의 분출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정서로 승화된 시일 것입니다. 시짓기는 이것을 찾아내려는 치열한 노력입니다. 시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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