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53)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09/10 [01:01]

바람의 제국(53)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09/10 [01:01]

▲     ©정완식

 

고귀한 은총을 받은 

하늘이 내린 먹고 마실 것과 

금과옥조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까​

 

한데 어우러진 축제의 무대 뒤에는 

논공행상이 있어야 제격이지 

표창에 붙는 상금과 벼슬은 양념이야​

 

어용이 나쁜가 

숨어서 등치는 사기는 더 나쁜 거지 

어용 레시피는 공생의 처세술​

 

돌고 도는 돈이 좋아 

어깨 위에 힘 솟는 권세도 좋아 

나는 감추고 너는 뒤쫓는 숨바꼭질​

 

- 어용(御用) 레시피 - 

 

 

54,  공회, 비즈니스 유니언 

 

워낙 서둘러 다니다 보니 연수와 이선 과장이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첫 면담자와 약속된 면담시간까지 아직 3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연수는 룸으로 들어오자마자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환복을 하고 나서 첫 면담자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이선 과장이 먼저 들어오면서 첫 면담자가 호텔 근처에 도착해 곧 연수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전하며 차를 준비했다​

 

이과장의 말대로 찻물이 채 끓어오르기도 전에 첫 면담자가 도착해 룸의 벨을 누르자 이과장이 문을 열어 첫 면담자를 반기며 데리고 들어와 연수에게 소개하여 줬다​

 

이과장의 친구라며 소개한 여성의 이름은 정태은이라고 했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호리호리해서 단신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눈이 크면서 눈매가 선선해 인상이 좋아 보였다​

 

정태은은 이과장의 손에 이끌려 찻물이 끓고 있는 스탠드 테이블로 가서, 같이 차 준비를 하고는 쟁반에 차를 올려 연수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돌아오는 이과장을 따라와 이과장과 함께 연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평일이어서 움직이기 불편했을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면담내용이 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크게 부담을 갖지않아도 되고, 정태은씨가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도록 저희가 신경을 쓰겠습니다. 

혹시라도 답변하시기 불편하거나 하기 싫으시면 대답을 하지 않으셔도 되고, 옆에 친구도 있으니 마음 편하게 임하시면 됩니다. 

우선 차 한 잔 마시면서 시간도 넉넉하니 면담은 천천히 하는 것으로 합시다!"​

 

연수가 첫 면담자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먼저 부드럽게 분위기를 끌고 갔다​

 

"그래, 태은아! 

내가 전화로 잠깐 얘기했듯이 편하게 해도 괜찮아. 

내가 믿는 분이니까 안심해도 돼!"​

 

이과장이 옆에서 정태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연수를 거들어 주었다​

 

차를 마시며 이과장과 정태은이 안부와 환담을 잠시 나누고 있는 사이, 연수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기다려 주다가 이윽고 정태은의 얼굴에 긴장이 풀리고 웃음기가 돌자 연수가 면담을 시작했다​

 

"지금 소청화학에서 정태은씨가 하고 있는 일은 어떤 업무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정태은의 말을 틔워주기 위해 연수가 답변하기 쉬운 질문부터 시작했다​

 

"네. 우리 소청화학에는 지원본부와 구매본부, 생산본부, 물류본부 이렇게 네 개의 본부 조직이 있는데, 저는 그 중 지원본부장의 한국어 통역과 비서업무를 같이 수행하고 있고, 오늘은 마침 우리 지원본부장이 북경에 출장을 가 있는 중이어서 별 무리 없이 여기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정태은의 대답이 처음 룸에 들어왔을 때의 조용하고 떨리던 음성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크고 밝아졌다​

 

"다행입니다. 

정태은씨도 그렇겠지만 저희도 부담을 많이 덜 수 있겠습니다..."​

 

연수가 양 손바닥을 모아 한 번 박수를 치는 시늉을 하며 정태은의 대답에 리액션을 보이자, 이과장도 정태은을 보며 같은 시늉을 하고, 연수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소청화학은 태왕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알고 있는데, 소청화학이 태왕그룹과의 관계는 좋다고 생각하나요?"​

 

"네. 아주 좋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매월 첫 주 금요일에 태왕그룹에 가서 부회장님이 주관하는 회의를 하는데 우리 소청화학의 총경리와 제가 모시는 지원본부장이 같이 참석을 하세요. 

그런데 저희 회사는 매번 실적이 좋아서 회의 때 칭찬을 많이 받고 분위기도 좋다는 말씀을 저희 본부장님이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연수는 정태은이 그녀의 본부장이나 총경리에 대해 꼬박꼬박 존칭과 함께 예를 갖춰 대답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녀가 그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으며 그녀 또한 그들과의 관계에 현재 문제가 없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문제없이 잘 지내기를 원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느낌이 들자 연수는 연수 자신이나 친구인 이선 과장을 믿고 그녀가 마음을 다 열어주지 않는 한,  변화를 원하지도 않고 모험을 할 생각도 없는 정태은에게서 그가 원하는 답을 못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다 가정하면서 연수는 좀 더 직설적으로 질문을 이어 갔다​

 

"혹시 소청화학의 공회조직 안에도 태은씨가 아는 사람이 있나요?"​

 

"네. 공회의 위원장을 비롯해 주요 간부들은 대부분 알고 있어요.​

 

그들과 우리 본부장님이 같이 어울리는 식사 자리에 여러 번 저도 같이 어울려서 공회 내의 여성 간부들과 같이 식사하며 대화도 많이 했었고,​

 

그들이 우리 본부장님과 연락할 때는 저를 통해서 연락하는 경우가 많아서 좀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꽤 있어요."​

 

다행히 정태은은 연수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별 거부감이나 스스럼없이 공회에 관한 연수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연수나 이과장을 경계하면서 답변을 회피하거나 숨기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 연수는 안도했다​

 

"그러시군요. 태은씨가 여기 친구인 이과장처럼 밝고 꾸밈이 없어서 사람들이 태은씨를 믿고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연수가 이렇게 말하며 정태은에게 가볍게 웃음을 보이자 정태은도 그를 따라 소리 없이 웃었다​

 

연수와 계속되는 대화를 하면서 그녀의 마음이 열렸다고 생각하며 연수는 다시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러시면 혹시 그 사람들과의 모임이나 식사 중에 공회의 파업에 관해 얘기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나요?"​

 

"네. 상무님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공회의 위원장이 우리 본부장님의 사촌 동생이어요.​ 

위원장도 우리 본부장님이 만들어 주신 거나 마찬가지고..., 

 

공회조직이나 구성원인 간부들도 형식적으로는 직원들이 선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각 부서를 대표하는 자들도 전체 조직원의 신임투표로 결정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사실 각 부서 대표를 처음 추천할 때 우리 본부장님이 많이 관여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우리 본부장님이 공회 간부를 선출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건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중국의 공회조직은 거슬러 올라가면 공산당 조직의 하부조직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각 기업체의 공회조직도 결국 공산당 간부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 기업체의 총경리나 주요 영도들은 공산당원인 경우가 많아서 그들이 공회조직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상무님도 잘 아시겠지만, 그런 점에서 보면 노동 3권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의 노동조합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옆에 있던 이과장이 정태은의 답변을 보충해서 설명하듯 얘기했다​

 

연수도 그런 점은 알고 있었지만, 정태은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었고,​

 

게다가 공회의 위원장이 지원본부장의 사촌 동생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적지 않게 놀랐다​

 

노동자를 중시하는 중국 공산당의 전략적인 정책에 따라 대기업체나 제법 규모가 있는 외투기업의 중국 공회조직률은 근래 들어서 90퍼센트에 가깝게 급증하고 있고,​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공회의 권한을 높여주고 자율성도 대폭 강화를 해주어 외투기업의 경우는 노사분규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데 반해,​

 

여기 소청화학은 현지의 로컬업체로서 아직도 초기의 공회 활동 조직에 머물러 있고 이것을 회사에서 이용하고 있는 '비즈니스 유니언' 즉, 회사에서 운영비를 받아 쓰고 자주성은 없는, 그저 이익단체로 활동하는 어용노조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ㅇㄷㄱ 21/09/10 [08:12] 수정 삭제  
  즐독하고 갑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