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름돌(김동석 시조집,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차용국 | 기사입력 2021/01/09 [20:19]

누름돌(김동석 시조집,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차용국 | 입력 : 2021/01/09 [20:19]

누름돌(김동석 시조집,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글을 짓는 것은 관찰에서 시작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그것을 체화하여 글로 옮기는 일은 녹록하지 않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네 삶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이 시적 소재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쉽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형상화하여 한 편의 시를 생산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인마다 삶과 생각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익숙한 것에 관해서는 관심과 호기심을 느끼는 강도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삶의 주변에서 숨 쉬고 있는 익숙한 사물에 관한 관찰과 그에 대한 적절한 묘사는 적잖은 숙련의 결과일 수도 있다. 김동석 시인이 자신이 생활하는 주변의 사물에서, 그가 걷는 여행길에서 마주친 사물의 관찰과 사유의 서정을 운율에 실어 시조를 지어내는 것은 오랜 숙련의 과정을 거쳐 이룩한 체화된 역량이다.

 

대나무가 겨울에도 새파랗게 반기는 곳

게이트볼 즐기시며 어르신들 기분 좋은

한여름

물놀이 시설

피서지가 따로 없네

 

한 바퀴 돌아가며 가문비 물푸레나무

스트로브 잣나무와 대화도 나누면서

마가목

빨간 열매에

푹 빠져도 보는 곳

 

양지쪽 삼삼오오 햇볕 쬐는 어르신들

어제도 잘 보내고 오늘도 무사하니

내일도

건강한 하루

아름다운 권선공원

 

(''권선공원'' 전문)

 

위 시조는 수원시 권선공원의 일상을 그린 풍경화다. 김동석 시인이 무시로 걷고 사유하는 시민들의 생활공간이다. 무심히 지나치는 주변의 평범한 공간에서 김동석 시인은 이미지를 풀어낸다. 시인의 이미지로 재탄생한 권선공원은 일상의 공간에서 시적 공간으로 전환한다. 이제 더는 일상의 무료한 공간이 아니라 '아름다운 권선공원'이 창조된 것이다. 김동석 시인은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또 계절 따라 산과 들의 꽃을 보았다. 나무와 계절의 바뀜과 주변의 경관을 주제로 공부하였다''고 말한다. 이 시조집에 실은 대부분의 작품이 걸으며 포착한 주변의 꽃과 경관들인 이유가 될 듯하다.

 

봉오리 붓 같다고 이름이 붙여진 꽃

넓적한 하얀 날개에 연지곤지 찍은 듯

누이가

만들어주던

흰 손수건 그립다

 

붓꽃은 바람 불면 허공에 글을 쓴다

무지개 뜨는 날처럼 기쁜 소식 안고

반가운

손님 오신 듯

환하게 피어난다

 

(''노랑붓꽃'' 전문)

 

위 시조는 노랑붓꽃의 속성에 화자의 서정을 자연스럽게 이입시키고 있다. 김동석 시인의 체화된 관찰과 언술의 유연함은 오랜 습작의 노력으로 축적된 것이다. 1953년생인 김동석 시인은 젊은 시절부터 직장의 문학동호회(삼성전자) 회장을 맡으며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지었다. 그의 오랜 수련이 숙성된 결실의 기반이 되었다. 2001<문예사조>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에 나와 첫 시집 <흐르는 물처럼>을 펴낸 이력이 있지만, 시조의 문은 2019<문예사조> 시조 부문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열었다. 흔히 늦깎이 등단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이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애초에 시와 시조는 남이 아니다. 비록 시조의 정형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운율의 형식적인 격식에 관한 것이지 본질이 딴판인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3음보와 4음보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말의 속성을 고려하면, 시조의 숙련을 통해 얻은 운율이 시에 리듬을 불어넣어 생동감을 더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김동석 시인이 이 시집에서 보여주는 작품은 체화된 관찰로 숙성된 시어에 정형적인 운율의 옷을 입힌 것이다. 시력 20년을 다지고 숙성시킨 소리다.

 

봄 되면 주렁주렁

금메달 매달고

 

한 해를 열어주고 한세월 낚아 내는

 

그 생김

벌집 밀랍처럼

활활 타는 불쏘시게

 

(''히어리'' 전문)

 

위 시조는 '송광납판화' 또는 '갈잎떨기나무'라고 불리는 히어리의 속성을 노래한 작품이다. 히어리를 본 적이 없어도 그 꽂은 '금메달'과 닮은 노란 꽃송이처럼 보일 것이고, 중장의 '한 해를 열어주고 한세월 낚아 내는' 생육과 만개의 시간 흐름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종장에서 히어리 '그 생김/벌집 밀랍처럼/활활 타는 불쏘시개'라고 일러준다. 이쯤 되면 히어리와 일면식이 없어도 그 꽃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어려움이 없다. 짧은 평시조의 시어를 다듬어 낯설고 신선한 비유의 언술이 빛나고 있다.

 

인고도 슬퍼함도 없는 건 너뿐인 듯

한겨울 한파에도 시퍼런 세상 모습

이 세상

웬만하면은

더불어서 살아가지

 

리스트를 만들어서 흔들었다 하더니만

똑같이 반복하는 현 정치 위정자들

겨 묻은

돼지 엉덩이

무엇이 다를까나

 

겨울에 변함없는 맥문동 바라보며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변함없는

이 나라

기둥이 되는

사람들이 그립다

 

(''겨울 맥문동'' 전문)

 

이 시조는 지금까지 김동석 시인의 눈에 포착된 우리 생활 주변의 사물과 일상을 노래한 시향과 사뭇 다르다. 그를 자연 친화적인 시를 짓는 목가적 시인으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그는 자연의 현상에서 현실 사회의 이면을 유추해내고 해학적 일침도 주사한다. 시인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시인은 많든 적든 사회 문제에 직접 관여하거나 글을 짓는다. 소위 참여시니 하는 것이 특정 시인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정도와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김동석 시인의 사회성 있는 시조는 위 ''겨울 매문동''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사물에서 포착한 비유를 기저로 한다. 자연의 진실과 인간 군상의 위선을 비추어 보여주며 나무란다. 그러나 그 방식은 직설적으로 요란스럽거나 독설적이지 않다. 넛지(nudge)의 방식이다.

 

김칫독 된장 고추 장독에 누름돌을

차곡한 김치 위에 돌 하나 올려놓아

수북한

숨을 죽이면

김치 맛이 나는 돌

 

자신을 잘 누르고 사랑을 보듬던

어머님 누름돌을 품으며 사시었지

욕심도

감정도 접고

여유로움 보이며

 

부부간 친구 간도 직장의 동료 간도

저마다 누름돌에 세상이 밝아지니

누르며

사신 어머님

보고 싶음, 더한 날

 

(''누름돌 2'' 전문)

 

이 시조집 이름이기도 한 ''누름돌 2''는 어머니의 사랑을 담고 있는 누름돌을 소재로 사랑의 확산을 비유한 노래한 수작이다. '자신을 잘 누르고 사랑을 보듬던' 어머니의 사랑은 '부부간 친구 간 직장의 동료 간'으로 내리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근원이다. 김동석 시인이 일상의 생활 주변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찾아낸 꽃의 시어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관해서 은근한 해학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어머니와 같은 모태적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것이 세상에 따뜻하게 피어나기를 소망하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김동석 21/01/09 [22:14] 수정 삭제  
  김동석입니다 이렇게 서평을 잘 햐주셨네요 감사 드립니다
나도야 21/01/11 [01:18] 수정 삭제  
  김동석님의 시조집을 구독하고 싶습니다. 계좌주시면 입금하겠습니다 나주시 봉황면 욱실길85-4 나점수 나도야는 필명입니다 시조시인으로 시조를 배우고 싶습니다
나도야 21/01/12 [03:26] 수정 삭제  
  나점수 전번010*6739*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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