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햇살(서윤택 시집, 2020) / 차용국

차용국 | 기사입력 2020/09/09 [22:25]

요양원 햇살(서윤택 시집, 2020) / 차용국

차용국 | 입력 : 2020/09/09 [22:25]

▲ 요양원 햇살(서윤택 시집, 2020)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요양원 햇살(서윤택 시집, 2020)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저녁때가 다 돼서야

사립문 들어서시던

아버지 지게 발목엔

 

어김없이 소금절인

간 갈치 한 두름과

고등어 한 손 매달리고

 

누런 사각봉투 속엔

겹겹이 포개진 식은 풀빵 열 개가

담겨있었다

 

(''강경장날'' 일부)

 

땀과 정성으로 지은 '참외''싸리발지게에' 싣고 '동트는 새벽녘''십여 리 길'을 걸어 장에 가신 아버지. '읍내 시장바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허기진 배를 달래면서 '애지중지 키워낸' 참외를 파신 아버지. 하지만 늘 애쓴 만큼 신통치 않은 벌이, 아쉬운 속내와 가난한 삶의 애환을 '막걸리 한 사발로' 삭이면서, '저녁때가 다 돼서야' '사립문 들어서시던 아버지'. '아버지 지게 발목엔 / 어김없이 소금절인 / 간 갈치 한 두름과 / 고등어 한 손 매달리고', '풀빵 열 개'가 담겨있습니다.

 

서윤택 시인은 ''강경장날''에서 가난한 시골 촌가의 소박한 하루 일화를 잔잔하게 그려냅니다. 한 장면, 또 한 장면, 선명한 이미지가 스토리처럼 이어져 드라마가 됩니다. 작위적이거나 기교 하나 없는 시적 언술로 그려내는 은유가 이토록 신선한 것은, 서 시인이 맑은 심안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밝고, 따뜻하고, 속 깊은 은유는 맑은 심안으로 보아야 비로소 볼 수 있는 듯합니다.

 

눈 맑은 서윤택 시인의 심안이 주목한 것은 '아버지의 지게 발목'입니다. 그곳엔 '간 갈치고등어풀빵'이 매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보조관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가족사랑(원관념)'임을 독자는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적은 벌이지만 가족이 함께 나누어 먹을 '간 갈치, 고등어', 그리고 어린 자식들의 간식거리인 '풀빵'까지 잊지 않고 사 오시는 아버지 마음. 그것이 '사랑' 말고 또 있겠습니까? 사람은 '가족을 사랑하라'는 도덕 교과서 같은 뻔한 말을 따분하게 골백번 듣는 것보다, 이런 시적 은유 한마디에 감동하는 것입니다. 시가 은유의 문학인 이유입니다.

 

바늘귀에

자식이 앉아 있다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야삼경 긴--

 

옥색치마도 아직인데

분홍저고리는 재촉을 하고

골무는 아프다 징징댄다

 

(''삯바느질'' 일부)

 

늦은 밤입니다.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고 계십니다.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 야삼경 긴--' 긴 노동. '벗겨도 벗기어도 / 양파의 가난 굴레'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어 보입니다. 헤어날 수 없는 가난한 삶의 굴레. 하지만 '삯바느질'을 멈출 수 없는 것은 '바늘귀에 / 자식이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삯바느질'은 어머니의 눈물과 소망이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아가페적인 사랑의 은유입니다. 가슴으로 진한 눈물이 흐르는 모정의 강이었습니다. '순항하는 자식 목함에 / 돛을 달아주고 싶었던()(''부모 마음'' 전문)' 소망은 사랑의 터에서 승화된 꽃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지만, 무심하고 인정머리 없는 것이 세월이라 했던가. 그렇게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임종을 기다립니다.

 

피골상접 이내 몸뚱이

남은 것은 코끝 숨결뿐

 

피안세계 가는 길이

이리도 요원한가

내 집에 가고 싶다

 

(''요양원 햇살'' 일부)

 

'단조로운 종짓밥그릇' 조차도 눈으로 밖에 먹을 수 없을 만큼 하루 또 하루를 연명해가는 '숨결뿐'인 순간까지도 어머니의 영혼은 자식만 생각합니다. 요양원 '아침 창가 햇살'이 들어올 때, 또 하루 연명하는 어머니는 '다음 주는 피붙이들 / 어미 보러 온다했는데'라고 말합니다. 이 시 마지막 연의 '내 집에 가고 싶다'는 애절한 그리움의 언술과 맥을 잇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자식이 오기 전에 죽을 수도 있는 절박한 울림이 전이되어 오기 때문입니다.

 

서윤택 시인은 유년의 추억을 소환하면서, 그곳에는 '태풍 앞엔 산이 되어 주고 / 어둠 앞엔 등불 되어 주며 / 널 지켜가는 어미아비의 눈빛(''백일홍'' 일부)'이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장성한 시인은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가족과 사회로 확장해갑니다. 시의 영토를 확장해가는 시인의 걸음은 조급하게 허상의 미혹에 빠지지 않고, 정직하고 따뜻합니다.

 

저 산등성 놀빛

한 폭 재단하여

 

옷 한 벌 해주고 싶은

당신 삶 언저리

 

언제까지 내게

동행자가 되어줄까

보석 같은 당신

 

(''놀빛 부부'' 일부)

 

서 시인은 삶의 동반자로 살아온 아내 사랑을 노래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내리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서 시인의 삶의 행로는 정제된 정화수처럼 맑고 단아합니다. 이러한 시심은 사회로 확장됩니다.

 

먼 길 찾아온 손님

형편대로 소반 차려놓고

잔 기울이면 되거늘

 

청산에 묻혀

자연 함께 사노라면

이 아니 족하리오

 

어이타! 소유만으로

사람살이 논하는가

 

(''청산에 묻혀'' 일부)

 

그렇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을 나누고 정을 쌓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만남조차도 실익을 따져가며 계산기를 튕기는 속물스런 시류에 휘말린다 하더라도, 어찌 사랑과 우정을 재력과 권력의 다소로 소유할 수 있으랴. 시인은 외칩니다. '어이타! 소유만으로 / 사람살이 논하는가'라고.

 

날고 싶다

날고 싶다

저 창공을

 

접었던 나래를 펴고

저 하늘을 날고 싶다

 

칡과 등나무처럼 얽힌

너와 나의 갈등을 걷어내고

 

저 푸른 하늘

솔개의 눈빛으로

그 성을 날고 싶다

 

(''날개'' 전문)

 

서 시인이 소망하는 세상은 '칡과 등나무처럼 얽힌 / 너와 나의 갈등을 걷어내고' 꿈과 이상을 찾아 마음껏 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저 푸른 하늘 / 솔개의 눈빛'처럼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살필 수 있고, 소외된 곳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시력 좋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산속 어둠 짙다하나

내속보다 더하랴

 

보름달이 밝다한들

내속까지 비추랴

 

장미꽃이 붉다한들

내속보다 붉으랴

 

매화나무 잔설가지

속울음 쌓였는데

 

재 너머 봄소식은

언제 오려나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전문)

 

시인은 소망하는 세상으로 걸어가는 삶의 행로를 멈출 수 없습니다. 개인의 작은 노력이 세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느냐고 반문도 하겠지만, 설악산의 눈꽃도, 내장산의 단풍도 삭풍과 염천의 계절을 이겨낸 한 그루의 여린 가지와 한 잎에서 시작합니다. 75년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고, 통일을 향해 가는 여정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서 시인의 시심이 거시담론으로 넘어오는 소리입니다. 그 노래는 시적 은유가 확장된 언술이기도 하지만, 그 원천에는 부모로부터 내리받은 사랑이 있습니다. 서윤택 시인의 은유의 확장은 사랑의 확장입니다.

 

그곳인들 햇볕이 없으랴

그곳인들 바람이 없으랴

그곳인들 물길이 없으랴

 

너에 눈빛은 매가 되어

너에 발끝은 치타가 되어

너에 용맹함은 사자처럼

그 장벽 이념을 허물어라

 

(''바람 불면 떠나라'' 일부)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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