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전략(김연철 지음, 2017) / 차용국

이정현 | 기사입력 2020/05/31 [20:32]

협상의 전략(김연철 지음, 2017) / 차용국

이정현 | 입력 : 2020/05/31 [20:32]

 

▲ 협상의 전략

협상의 전략(김연철 지음, 2017)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1938930일 뮌헨에서 히틀러와 회담을 마치고 영국 헤스턴 공항에 도착한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가 서명한 평화 선언 문서를 들어 보이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입니다(25)''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 협상으로 히틀러는 아무런 희생도 없이 체코의 수데텐 지역을 병합했고, 1년 후인 19399월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갈등을 피하고, 상대의 선의를 유도하기 위해 양보했던 체임벌린의 외교정책(유화정책)을 세인들은 '어리석은 협상'의 사례로 비웃곤 합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41). 영국은 독일 공군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공군 위주의 국방정책으로 국내 방위에 집중했기 때문에(40) 유럽 대륙에 진출할 군사력이 제한되었고, 가장 든든한 동맹국인 미국은 고립주의 외교 전략으로 돌아섰습니다.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유럽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체임벌린의 뮌헨협상은 당시 영국이 직면한 특수한 상황의 산물이었습니다. 그의 유화정책은 싸울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시간 벌기였습니다(45). 힘이 없으면 시간이라도 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뮌헨협상 1년 후(1939) 발발했습니다. 독일의 패배가 확실해진 19452월 히틀러는 ''1938년에 전쟁을 시작했어야 했다(45)''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광복의 들뜬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0625일부터 1953727일까지 1129일간의 처참한 살육이었습니다. 전쟁 발발 1년쯤 되었을 때 전선은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팽팽한 대치상태를 이루며 희생자만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종전이 절실했습니다. 결국 휴전협상이 195178일의 예비회담을 거쳐 710일 개성의 내봉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의제를 정하는 데만 2주일이 걸렸습니다. 의제 채택과 일정, 군사분계선 설정, 휴전 감시기구, 전쟁포로 처리, 외국군 철수와 평화적 해결 등 5개항의 의제가 결정되었습니다(223). 이 중에서 무엇보다도 우선할 긴요한 의제는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였습니다.

726일부터 군사분계선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산군은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가 결정되면 전투를 중단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UN군은 '전투 계속의 원칙'을 고집했습니다(223). 협정에 서명할 때까지 전투를 계속한다는 원칙은 휴전협상이 시작될 때부터 UN군이 강조한 조항으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이용해 공산군을 압박하는 것이 협상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224). 한편 한국의 이승만 정부는 휴전 자체를 반대했기 때문에 38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인정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휴전협상을 위한 기본 지침을 준비하면서 ''현 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한다''라는 방침을 정했습니다(225).

전투는 계속되었고, 군사분계선 협상이 이루어지던 19517월부터 11월까지 UN군 사상자는 6만 명에 달했습니다. 공산군 사상자도 23만 명이나 되었습니다(226). 결국 휴전회담은 시작한지 218일이 되어서야 조인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생명이 죽었습니다. 아무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아무도 패배하지 않으려 했던 비기기 위한 협상'이 남긴 상처가 그 뒤로도 오랫동안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241). 휴전협상은 무엇보다도 우선 총을 내려놓고 만나야 합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의무를 다 마쳤다면 편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난 그런 노력을 했다고 믿고, 그래서 영원히 잠잘 수 있다''라고 말했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2013125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591).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남긴 증오와 폭력을 용서와 화해의 정치로 풀어낸 만델라의 철학은 '우분투(Ubuntu)' 정신입니다. 우분투는 '인간은 서로 얽혀 있다'는 뜻의 남아프리카어로,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다른 사람을 통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593)는 말입니다.

협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테이블에 마주앉아 '관계'를 이루어야만 협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7). 만델라의 철학과 협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프레데리크 빌름 데 클레르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89년에 대통령이 되자 감옥에 갇혀 있던 만델라와 대화를 시작했고, 마침내 만델라를 석방해서 세상으로 돌려보냈을 뿐 아니라 권력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흑인 정당 및 단체들과 협상에 나섰습니다(593).

인간관계, 사회관계, 국제관계에서 벌어지는 협상은 수준과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협상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협상가는 직위와 제도라는 모자를 쓰지만 감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협상에서 성공하려면 이익의 기계적인 배분보다 신뢰를 먼저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7). 클레르크가 민주화 조치를 발표한 19902월부터 역사적인 선거가 이루어진 19944월까지 협상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습니다. 위기의 고비마다 비틀거리면서도 협상이 깨지지 않은 이유는 언제나 상대가 동반자라는 점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603). 협상은 '상대가 변해야 나도 변한다'는 식의 오만과 집착의 터에서는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상대의 허점과 실수를 개처럼 물어뜯으며 소탕하려고만 한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만델라와 클레르크는 인내와 신뢰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적절한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특히 적에서 친구가 될 때는 더욱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치유할 시간이 필요한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면 반드시 곪는다(19)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델라와 클레르크의 만남은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만델라가 성공한 위대한 지도자라면, 클레르크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패배자였습니다.

 

위에서 3편의 협상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세계 역사의 변곡점이 된 19가지 협상 사례를 분석하고, 유의미한 협상 전략을 도출해 내어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협상의 시대를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역사는 협상의 연속 기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의견 차이가 있고, 그때마다 우리는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것입니다. 협상의 기술은 줄타기에서 균형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의 의도와 나의 목표 사이에서,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의 사이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와 내편의 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7). 협상의 기술은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협상의 유일한 기술은 때를 알고, 그때에 꼭 맞는 옷을 입고 행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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