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행복의 기원

박현식 | 기사입력 2020/01/0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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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행복의 기원
 
박현식 기사입력  2020/01/09 [22:12]

 

▲ 행복의 기원(서은국 저, 2015)



 

행복의 기원(서은국 저, 2015)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새해를 맞아 어느 오찬 모임을 주최하는 분이 건배사를 합니다.

''...의 행복을 위하여!''

참석한 분들도 큰 소리로 따라 외칩니다.

''...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는 늘 '행복'을 소망합니다. 행복이란 말은 들으면 좋고, 말하기에도 친밀하고, 쓸 때에도 즐겁기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삶의 목적이 행복인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2천 년 전에 인류 정신문명의 축을 세웠던 현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 그리고 톨스토이와 같은 많은 문학가들도 같은 말을 한 듯합니다. 그런데 유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불변의 믿음처럼 굳게 자리잡고 있는 이 말이 사실일까?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우리의 모든 의식과 행동은 그것을 성취하고 비축하는데 특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 백 세대의 조상이 층층으로 성취하고 축적한 행복의 목록을 펼쳐보고 확인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류에게 그런 것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탁월한 통찰력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진실을 제대로 알고 인정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입니다. 관찰과 실증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삶과 행복의 관계를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당위성을 배경으로 구성한 논리적 관념의 틀에서 해답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논의들이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고 추상적입니다(184쪽).

 

관념은 의식의 터에서 자라는 이성의 결과이고, 경험은 무의식의 터를 지키는 본능의 결과입니다. 행복이 관념적인 것이냐 경험적인 것이냐는, 이성적인 것이냐 본능적인 것이냐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이성은 학습과 같은 의식적인 생각이고, 본능은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인 반응입니다. 행복이 이성적인 것이라면 교육과 생각을 통해 성취하고 축적할 수 있기에,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가 덜 배우고 덜 가진 자보다 반드시 더 행복해야 합니다. 지식과 생각의 척도가 곧 행복의 순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행복이 본능적인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공기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축적할 수도 없고, 순위를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배움이나 소유의 차이는 행복과 별로 관련이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로 행복에 대한 논의에서 베어낼 사족을 찾아봐야 합니다. '오컴의 면도날'이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 이상의 가정과 개념들을 면도날로 베어낼 필요가 있다(183쪽)는 과학 이론의 기본 원리를 말합니다. 삶의 목적과 행복의 관계에서 의식적인 관념을 베어내면, 행복은 인류의 진화에서 무의식적인 경험으로 체득한 실체가 남게 됩니다. 이것은 행복의 기원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원이 다르면 과정과 결과도 달라집니다. 행복의 진짜 얼굴이 이성-의식-관념의 연결고리인지, 본능-무의식-경험-의 산물인지 알고 싶으십니까? 궁금한 것을 찾고 확인하는 일이 여행입니다. 여행을 떠납시다. 행복의 기원을 찾아.

 

자연 법칙의 유일한 불변의 주제는 생존입니다. 생존한다는 것은 수많은 경쟁을 극복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경쟁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수단과 정신적인 수단, 둘 다 필요합니다. 음식이 생존을 위한 물질적인 수단이라면, 행복은 정신적인 수단입니다. 음식과 행복, 그 자체가 생존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입니다(10쪽). 행복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이기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입니다(71쪽).

 

결국 행복은 인류의 지난한 진화의 경험에서 체득한 생존과 유전을 위한 산물입니다. 인류는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생존과 유전에 유리하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그러기에 행복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쾌락의 경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거나 축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123쪽)이 중요하다는 함의입니다.

 

행복은 인류가 수 세대의 생존과 유전을 통해 경험한 무의식적인 정서적 산물이기에 삶의 목적도, 거창한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더 자주 어울려 소소한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상의 기쁨 같은 것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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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09 [22:12]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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