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깊은 밤에'의 작가 감성시인 안동석

김철우 기자 | 기사입력 2019/04/22 [23:55]

'그리움 깊은 밤에'의 작가 감성시인 안동석

김철우 기자 | 입력 : 2019/04/22 [23:55]

[강원경제신문] 김철우 기자 = 2004년 11월 28일부터 근 14년 동안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해 오면서 6,000여 명 이상의 블로그 이웃들에게 “감성시인”으로 불린 사람. (원 닉네임은 嫩芽 : 눈아 - ‘어린 싹’이란 의미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의미의 필명) 그리고 2년 전 페이스북으로 옮겨 와 페이스북 친구들과 따뜻한 소통을 나누면서 올 3월부터 강원경제신문에 주 2회 감성 시를 연재하는 토박이 강원도 양구 출신의 눈아 안동석 ‘時人(시인)’을 만났다.

 

▲ 안동석 시인     © 김철우 기자

 

안동석 님을 소개해주세요

 

1963년 날도 더운 8월 어느 날 원주 명륜동에서 태어나 3살 되던 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 등에 업혀 강원도 양구군 동면 덕곡리 집망태골이란, 지명도 생소한 산골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덕곡리 본동에서 5km 이상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작은 분지가 나오는데 이웃이라고는 우리 집을 포함 달랑 세 채. 그것도 각각의 거리가 1km 이상인 이웃들로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나들을 빼곤 내게 친구는 한 명도 없었지요. 어려서부터 함께 했던 친구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와 소 닭 그리고 자연의 동식물들이 전부였었습니다. 원래 임당초등학교를 가야 했지만 작은 누나가 원당초등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마을 친구도 둘밖에 없는 강 건너 원당 초등학교를 10Km 이상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마다 누나의 다 쓴 공책에 아버지께서 붓글씨로 손수 써 준 천자문을 익히고 대암중학교에 들어가니 한문박사, 양반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지요. 양구종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할 땐 아무 고민 없이 수업료가 싸고 장래가 안정적인 강원대 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매년 소 한 마리씩은 팔아야 수업료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난 한문이 젤 재밌었고 성적도 좋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마칠 수 있었었습니다. 졸업 2주 전 삼대독자인 관계로 일찍이 사랑스러운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고 한문전공 교사가 드물던 그 시절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고는 어디나 다 갈 수 있었기에 남쪽으로 멀리 가 보자는 생각에 아무 연고 없는 ‘대프리카’ 대구로 발령받아 1986년 3월부터 중등 한문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계절제 대학원을 다닌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 1989년 12월 28살(노부모와 아내, 두 딸을 부양하던) 늦은 나이에 출퇴근하는 6개월 방위로 군 복무를 마쳤고, 그 후 오래지 않아 부모님 두 분이 치매에 걸리셔서 5년 정도 좁은 집에서 고생하시다 몇 달 차이를 두고 돌아가셨습니다. 또 몇 달 뒤 혼자 남으신 장모님마저 돌아가셔서 1년도 안 되는 사이 세 분의 부모님을 하늘로 보내 드려야 했네요. 그리고 얼마 후 비통한 큰 처남의 죽음. 젊은 시절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 주시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잃는 세월 속에 그리움은 절로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제 글을 읽고 그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부모님과 고향. 아내 그리고 친했던 지인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부모님을 잃고 나서 고향도 함께 잃었다 생각했는데 首丘初心(수구초심)이라 했던가요? 여우는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언덕을 향해 죽는다고. 저도 이제 50줄을 훨씬 넘고 나니 잃었던 고향이 자꾸 그립고 꿈속에서도 보이네요. 힘든 젊은 시절을 이렇게 보내며 대구의 여러 중, 고등학교를 두루 거쳐 올 2월 말로 33년의 교직을 마감하고 명퇴를 하여 지금은 제3의 인생을 글과 함께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 안동석 시     © 김철우 기자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저의 첫 취미는 사진입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아본 때가 고등학교 시절로 큰 매형이 집에 다니러 왔다 놓아두었던 카메라지요. 셔터 소리에 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내 잊히게 됩니다. 처음 발령을 받고 막 태어난 내 딸들과 아내를 촬영하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되었으며 사진에 무지했던 저는 카메라와 책을 통해 독학으로 촬영 기술을 익히며 가족과 풍경, 꽃들을 찍으며 기종을 바꾸어갔죠. 찍었던 사진들을 저장할 마땅한 공간으로 처음 찾은 곳이 14년 전 네이버 블로그였어요. 사진을 올리고 블로그 이웃들과 소통하다 보니 사진과 관련된 글을 써 보고 싶은 맘에 낙서처럼 써 본 글들이 내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블로그에서 이웃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준다고 이웃들은 저를 “감성시인”이라 불러 주셨고 2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와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서 글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학생들 아침 독서 시간에 저는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며 글쓰기를 하던 중 2017년 초가을 운명적인 페이스북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그 당시 아픈 아내로 인해 제가 많이 힘들어할 때 제 글에도 아픔이 묻어 있었는지 자령 이영희 님이 백일만 제 글을 캘리그라피로 써서 저의 아픔을 위로해 주겠다고 시작한 캘리그라피 쓰기가 지금까지 하루 두세 편씩 쭉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자령 님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글쓰기에 더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내 글쓰기의 동기는 원초적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아픈 아내와 블로그 이웃, 페이스북 친구들입니다. 이런 감성이 남아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는 한 제 글쓰기는 늘 현재진행형일 거예요.

 

▲ 안동석 시인     © 김철우 기자

 

시인님의 글은 어떤 글인가요?

 

 저는 무면허, 무자격 詩人(시인)이지만, 시절을 노래하는 ‘時人(시인)’입니다. 격에 얽매인 詩人(시인)이기보다 내 감성을 자유롭고 쉽게 표현하여 독자의 마음을 편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時人(시인)이길 원하며, 전문 작가 아닌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랍니다. 

 머리나 마음에 공감되지 않는 글은 그냥 추상적인 기호들의 나열일 뿐, 죽은 글이라 생각하는 時人(시인)입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제 글을 좋아해 주는 이유도 글의 내용이나 표현이 어렵지 않아 한번 눈으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포근함과 위로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십니다. 누구나 읽고 나면 마음 따뜻해져 행복해지는 글, 그런 글들이 앞으로도 지켜나가야 할 제 글쓰기의 지향점입니다.

 누군가 묻더군요. 나이 들어도 어쩜 그리 감성이 풍부하냐고? 아마도 오지 강원도의 힘인 거죠. 유년기부터 친구 없이 집망태골 자연 속에 묻혀 자라 온 영향력이 90% 이상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무엇인가요?

 

 세월호와 관련된 <4. 16>이란 시입니다. 2014년 4월 15일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다음 날인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인근 바다에서 침몰한 참사로 교무실 TV에서 세월호가 침몰했고 대부분 승객도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안심하며 수업도 하고 교내를 거닐며 피고 지는 철쭉을 찍고 있었죠. 오후가 되면서 믿지 못할 소식은 긴급 자막으로 흘러나왔고 그 당시 집단 우울증이 3개월 이상 지속한 듯싶어요. 아름답게 피었다 지는 철쭉 꽃잎이 수술 한 줄에 매달려 애처롭게 있는 마지막 모습이 꼭 우리 아이들 마지막 모습 같아 먹먹한 마음으로 썼던 글이고 제가 교사였기에 더 가슴 저린 글이라 지금도 이 글과 사진을 보면 아직도 가슴 한편이 아파 옵니다.

 

시인님이 가장 아끼는 글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최근 2년 동안 하루 평균 두 작품 이상은 매일 글을 쓴 것 같습니다. 모두 다 내 마음을 통해 손끝을 거쳐 나온 글들이기에 정들지 않은 작품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중에 제일 아끼는 작품은 글쓰기 초창기 慈嶺(자령) 이영희 님이 족자에 써 주신 <국화차>란 글입니다. 감성 여린 저는 계절의 변화에도 예민하여 봄은 봄대로 가을을 가을대로 페친들과 소통을 하면서도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끼곤 했으니까요.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원초적인 그리움을 안고 태어났나 봐요. 고요하고 적막해서 외로운 겨울밤 전기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찻잔에 따르며 아름다웠던 시절과 사랑도 매일 밤 우려내고 반추하다 보니 더 우러날 게 없다는 생각에 써 내려간 시입니다. 추억은 역시 그 시절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그리움이더군요.

 

▲ 꽃 촬영 모습     © 김철우 기자

 

시인님의 또 다른 취미, 사진에 대해 말해주세요

 

 위에서 말했듯 카메라를 첨 잡아 본 것이 고등학생 때 큰 매형의 캐논 수동 필름 카메라였지요. 셔터를 누르면 찰칵하며 렌즈가 열렸다 닫치는 그 소리에 묘하게 호기심이 생기더라구요. 민물 릴낚시 좋아하는 사람들의 릴대 끝의 방울 소리처럼. 그렇게 처음 잡았던 카메라를 다시 잡은 것은 결혼하고 나서 딸이 태어나고 예쁜 딸들이나 아내의 모습을 담기 위해 본격적인 내 카메라를 갖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처음엔 자동 필름카메라부터 시작해 점점 보급 기종으로 변종을 해 이제는 캐논EOS 5D Mark3 본체에 캐논 28~300mm 줌렌즈로 취미 생활을 하고 있지요. 독학으로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보며 인화와 현상으로 호주머니 사정은 가난했어도 하나하나 그 방법과 기술을 알아 가던 시절 파인더 속으로 보이던 자연이나 꽃들의 또 다른 세상. 같은 꽃도 제일 아름다운 모습은 언제 어느 시선일까란 끝없는 시도가 어떤 사물이든지 자세히 관찰하는 태도를 갖게 했고 한창 사진에 몰두했을 때엔 네이버 포토갤러리에 매일 인기 포토에 뽑혔으며 오늘의 포토에도 선정되곤 하였지요. 인물 사진은 내가 부끄러워 제대로 배우질 못했고 주로 오래 관찰하고 사색할 풍경이나 꽃 사진 찍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찍은 아름다운 사진을 보며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네요. 내 사진에 내 글을 쓰는 것이 참 행복이었음을 이제야 알아 갑니다. 결국, 내가 찍은 사진은 내 마음을 울려 내 글을 쓰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지요.

 

시인님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내 인생의 1부는 외딴 산골에서 친구 없이 살았지만, 자연과 함께하며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했던 유년시절이었고 2부는 결혼을 하자마자 물설고 낯선 대구로 내려와 중고등학교를 두루 거치며 눈빛 초롱초롱한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직 생활이었으며, 명퇴한 지금은 내 인생 3부의 시작이네요. 앞으로의 제 계획은 좋아하는 사진과 글쓰기에 정진하여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읽고 공감해 줄 작은 책 한 권 출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위로이자 마음의 평화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네요. 더 훗날 내 고향이 강원도 산골이었듯 산 높고 골 깊은 자연에 들어가 구름이 앞서거니 세월이 뒤서거니 흐르는 계곡 물에 마음 씻으며 자연 닮은 마음으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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