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林森의 招待詩 -
내 나이 예순 훌쩍 넘겼거늘
당신 보이지 않게 되자 내 마음 보이더이다 온통 사랑밖엔 다른 방도 없을 줄 알았는데 당신 떠나고야 알아지더이다
내가 사랑한 건 당신이 아니라 당신 옷자락 흩어지던 바람냄새였다는 거 날 매혹시킨 것도 그 바람냄새였고 당신 단념케 만드는 것도 그 바람냄새임을,
당신 보이지 않게 되자 비로소 당신 보이더이다 당신은 절대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음인데
지금 내 나이 예순 훌쩍 넘겼거늘-
세상 다 안다 생각했지만 아직도 사람을 다 이해할 나이는 아닌가보구려
그래도 이 막막하고 낯선 곳에서 날 붙잡아준 건 당신의 존재함이었고, 또한 짓이겨질 듯한 삶의 무게 끝내 감당케 해주는 건 당신의 부재이니,
당신의 있음과 존재하지 않음이 똑같은 무게로 내 양팔 붙들고있음으로 인해....
언젠가, 지금으로선 도무지 기약할 수 없지만 언젠가 한번은 돌아와서 왜냐고 묻고 싶소이다 오늘, 당신 왜 떠나느냐고
- 시(詩)의 창(窓) -
소천하신 아버지를 대전 현충원에 모시고 돌아온 뒤 적었으니 예닐곱해 쯤 전에 지은 시다. 아버지 떠나신 게 그저 엊그제 같거늘, 이제는 계절이 바뀌는 걸 일일이 챙기기도 벅찬지라 문득 세월이 정신없이 빠르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경황중에 이 시를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아버지를 추억한다. 잘 지내고 계시리라. 저 높은 하늘 끝에서... 오늘은 저잣거리 이야기로 시의 창을 시작해본다.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었다. 그런데도 장성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실한 자물쇠를 채웠다. 그 후 아들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 보던 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노인은 별 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조사해보려 하였지만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생각하였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 놓은 금은보화일 거야.’ 아들들은 그때부터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노인은 죽었고, 아들들은 드디어 열쇠를 가지고 그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 아들은 화를 내었다. “당했군!” 그리고는 궤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 쳤다. “왜? 그 유리 궤짝이 탐나냐? 그럼, 네가 가져라!” 작은 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적막한 시간이 흘렀다.
1분, 2분, 3분. 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작은 아들은 그 궤짝을 집으로 옮겨왔다.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다. 그는 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말이다.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작은 아들은 그것을 읽다가 꺼억꺼억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아들딸도 달려왔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 웃게 하였다.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그들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 뿐이다.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 지금은 사금파리, 유리 조각 같은 기억. 아아, 내 아들들만은 나 같지 않기를... 그들의 늘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딸도 그 글을 읽었다.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들딸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도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들 집안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오늘도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면 그 열쇠는 자기 자신이 들고 있다는 걸 알면 된다. 이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은 그 어떤 금은보화 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는 절망과 고통의 밤에 비로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본 사람만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당신은 영혼의 향기가 고난 중에 발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향기도 참 그윽하고 따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이런 향기를 맡게 하는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어여쁜 꽃이라도 전혀 향기가 없는 것도 있고, 아주 미워서 쳐다도 안 보는 꽃이지만 그윽한 향기를 품어내는 것도 있다.
하찮고 보잘것 없는 것들이지만 나름대로 소중하고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만이 간직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도 개개인 나름대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내면의 향기가 있을 것이다. 단지 그 향기를 얼마나 품어내고 풍기냐에 따라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담아낼 수 있는 향기를 지닐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큰 것만이, 예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값지고 소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인간관계의 인연을 만들어감에 있어, 친구를 교제함에 있어,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 상호 간에 예의를 잊어버리는 일도 없고, 남의 중상을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나가서는 말을 조심하고, 남의 결점을 비평하기 전에 자기 결점을 반성해야 한다. 겸손은 보배요 무언은 평화다. 말하지 않고 후회할 때가 한 번이라면, 말하고 후회할 때는 다섯 번, 여섯 번이다. 그러므로 섣불리 어떤 말을 하려고 들지 말고, 우선은 신중하게 판단하고 심사숙고 한 후에 말을 해야 실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아무에게도 모질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뜬구름 같은 세상의 덧없는 운명은, 오늘은 당신에게 좋을지 모르나 내일은 나빠질 수도 있는 일이고, 현세의 재물은 모두 얼마 후에는 갚아야 할 부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 무엇을 얻겠다고 남에게 모질게 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누구를 먼저 모질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운명의 모진 대접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다. 되갚음의 의미다. 가끔 입바른 말 속에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안에서 이루어 질 때가 많다. 그래서 늘 누군가를 험하려 하다가도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행동도 때론 상처요, 말도 또한 때론 누군가에게 상처이니, 다른 사람을 해한 말과 행동이 반드시 내게 되돌아옴을 알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생각 없이 하던 말과 행동들에 신중을 기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것으로 대접하면, 꼭 같은 것으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더 좋은 다른 무엇으로 내게 되돌려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좋은 인간 관계란 우리 삶의 가장 든든한 보험 적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12월로 접어들으니 이미 올 가을도 저물었고 눈바람으로 단장한 새 계절이 열렸음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마음의 풍파를 잠깐 동안이지만 내버려두어도 좋은 초겨울의 좋은 시간들, 또는 지인들과의 만남이 순간 순간 우리의 인생 통장에 차곡 차곡 사랑을 저축하는 시간들로 빚어진다면 좋겠다. 모두가 무진장 행복한 초겨울의 서막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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