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森의 招待詩 - 강물인 양 흘러 흘러

林森의 招待詩

림삼 | 기사입력 2023/05/06 [08:08]

林森의 招待詩 - 강물인 양 흘러 흘러

林森의 招待詩

림삼 | 입력 : 2023/05/06 [08:08]

  © 림삼

- 林森招待詩 -

 

강물인 양 흘러 흘러

 

뮤즈의 여신 미소 짓는 하오에는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난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내려지는

천상의 축복이

굉음으로써 파지마냥 흩어져 오고

 

오늘만큼은 이별조차 아름다운

기약의 인연 되어

웃음으로 꽃피어 난다

 

어차피

만나는 이들 보다는 헤어지는 이들이 많은

세상

 

떠나고 보내는 무수한 인연들을

버릇 마냥 보아오다 정작

이제 우리가 헤어질 때 된 거라면

우린 우리의 찬란한 이별 위에

조심스레 소담한 축복 뿌리리라

 

산등성 명멸하는 별 빛처럼

교차로 떨어져 쌓이는 빗줄기처럼

 

가슴 저린 사연일랑 맨 밑에 깔고

아름다움으로 추억하기 위함이라면

눈물 어우러진 작별의 입맞춤 대신

서로에겐 소중한 마음, 웃음을 심자

 

진실은 강물인 양 흘러 흘러

저 먼 바다에서 해후할 테고

사람들의 모래알 같은 역사는

 

그렇게 따라 흘러가는

모든 미움과 애증과 아픈 오해의 편린은

시간 가고 나면 한낱 거품인 것을-

 

웃자,

웃자,

미련도 회한도 한두 줄기 바람에 실어

멀리로 날려버리고

 

남은 자리 있으면

우리의 절절한 사랑 얘기로

담뿍 담뿍 메꾸자

 

또 그렇게 가고

다시 그렇게 보내자

 

- ()의 창() -

 

오늘은 제법 긴 시를 골라보았다. 필자의 시 중에는 이보다 훨씬 긴, 서사시나 연작시, 또는 역사시들도 더러 있지만, 실상 시라는 건 짧아야 제 맛이다. 촌철살인의 함축된 언어로 하고픈 말을 콕 집어서 표현하는 재주가 모자라다보니, 필자의 시는 너저분하게 길어지는 경우가 퍽도 많다. 그래서 막상 시를 쓰고 나면 누가 볼까봐 얼른 숨긴다. 이런 걸 시라고 썼느냐는 핀잔이라도 들을 것 같아서 잽싸게 감추는 게 습관처럼 되어졌다.

 

그리고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슬그머니 뒤져보면서 당시의 시심을 추측하곤 한다. 그래도 역시 남부끄럽고 민망한 느낌에, 다시 처박아두곤 하는 버릇을 되풀이하다보니, 지금에 와서는 서랍이나 책 무더기 속 여기 저기서 예기치 않게 숨어있던 습작들이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물론 짧은 시는 짧은 만큼 강렬하고 신축성 있는 멧세지가 담기지만, 길게 쓰여진 시라도 어쩌면 나름대로 더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감동을 줄 수 있지는 않을까?

 

이 시도 아마 예전 어떤 시절의 애절했던 마음을 농축시키려 딴에는 무진 머리를 쥐어짰던 시인 듯 한데, 고백컨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필자가 무덤덤한 성품을 갖고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보다는 살면서 너무도 많은 슬픔과 이별을 겪다보니 웬만한 충격에는 단련도 되었고, 미상불 필자의 삶이란 게 아픔만 쉼 없이 이어진 현실들의 모듬이다보니 아마도 헤어짐에 이골이 난 것 같기도 하다.

 

만일 그도 아니라면 건망증이나 초기 치매의 이유이던가. 좌우간 이 시를 복기하면서도 필자는 오늘 또 다른 이별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새록새록 솟아나는 옛 상처를 지긋이 누르면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려고 애쓴다. ‘무덤덤하게 보내기’, ‘아닌 척 하면서 뒤돌아서기’, ‘슬퍼도 그냥 웃기’, ‘남의 일처럼 여기기’, 기타 등등 이른바 필자가 갖고 있는 기술은 참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그러니 어디 필자의 마음 한 구석일지라도 아픔 부스러기가, 슬픔 나부랭이가, 자그만 흔적의 편린이, 스며들 여지인들 있겠는가?

 

그렇기에 모름지기 사람에게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는 법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건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신이 퍽 대견스럽다. 대범하게, 의연하게, 꿋꿋하게 보내면 되는 건데 무에 어려운 일이 있는가?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인 양 돌아서면 되는 건데 이별이 뭐 대수냐? 깊게 패이는 상처라고 해봐야 내일이면 오늘보다 덜 할 게 확실한데 말이다. 답도 알고 문제도 아는 이 현실이 참 쉽다.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면 되는 거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마무리 지으면 되는 거다.

 

그리고나서 눈치 봐서 깊은 밤, 혼자만의 공간에서 가슴 부여잡고 속으로 속으로 울부짖을 걸 차마 누가 알겠는가? 이 가슴 속으로 속으로 끓어오르는 통곡의 울림을 뉘라서 감히 들을 수 있겠는가? 속으로 속으로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애간장을 누구인들 정녕 볼 수 있겠는가? 그렇게 지금 아무도 모르는 상처 하나를 또 빚으면서, 깊은 속으로 속으로 담을 채비를 차곡차곡 마련하는 중이다.

 

어차피 삶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다. 기쁨 보다는 슬픔이, 행복 보다는 불행이, 웃음 보다는 눈물이 더 많이 모여져서 반죽을 하는, 소위 엿같은 거다. 거지같은 거다. 그리고 정말이지 개똥같은 거다.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싫다. 지면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저속한 언어를 슬쩍 사용하고나니 이제 조금은 후련하다. 어느 정도는 속이 풀린다. 이만 하면 삶을 관조하는 자세가 나올성 싶다. 이 쯤에서 삶을 바라보는 객관적 관점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삶이란 건 특별한 공식이나 궤도가 정해져 있지는 않는 거다. 그 때 그 때 변화무쌍한 여건과 환경들이 당시에 가장 안성맞춤인 삶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오늘 이렇게 살았다 하여 내일 다시 그 모습이 진실일 수는 없다. 오늘 이루지 못한 것이 내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달성되어 있을 수도 있고, 오늘 결론이 내려졌다 해도 내일은 다른 조건에 의하여 예기치 않았던 결론을 추가로 빚어낼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미리 예측할 수도, 앞당겨 섣부른 결과를 인정할 수도 없음이다. 그저 부드럽고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늘 진실하고 정의로운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한다는 겸손하고 착한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울려서 살아간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면서 살아간다. 사랑을, 이익을, 축복을 공유하면서 나눈다. 그 가운데서 행복과 만족과 보람을 느끼면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투자를 한다. 이른바 사회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다른 각도로 보면 주고받음의 한 단면이다. 행복을 주고받고, 아픔을 주고받고, 그리움을 주고받고, 기다림을 주고받고, 그렇게 서로의 삶을 주고받는 것이다. 추억을 주고받고, 흔적을 주고받고, 그러다가 잊혀짐을 주고받고, 각자의 다른 삶의 길을 주고받고, 그러면서 서로의 내일을 주고받는 소위 주고받음의 연속이며, 그것이 바로 영원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의 인연과 업보며 운명과 윤회다.

 

그 많은 주고받음의 요소 중에서 가능하면 더 많은 축복의 요소들을 주도록 하고, 더 적은 상처의 요소들을 건네도록 애쓰면서 살아가는 게 사람이 지녀야 할 의무적 천성이며,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삶의 구성요소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남에게 축복을 많이 전할수록 자신이 축복을 더 받게 되고, 남에게 아픔을 덜 줄수록 자신의 상처가 줄어든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필자가 자주 제언하고 있지만, 말은 씨가 된다 라든지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일이라든지 웃으면 복이 온다든지, 실은 단지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를 그 말들이 갖고 있는 무한의 능력을 필자는 믿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필자의 앞날에 대한 밝은 청사진을 그리곤 한다. 멋지고 기쁘고도 즐거운 내일의 얼굴을 그린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똑같은 상황임에도 사람들의 갖고 있는 성향에 따라 대처 방법이 다 다르다. 물론 그 대처 방법에 따라 결과 또한 다르다.

 

좋은 확신을 갖고 문제에 맞서는 이들에게 문제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지만, 자신과 일에 대한 불신으로 맞서는 이들에게는 문제 그 자체로 불행이라 생각하기에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나락으로 빠져들 확률이 대단히 크다. 좋은 확신, 적어도 필자와 인연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확신이 삶의 커다란 무기요 방패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러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행복은 따놓은 당상일 거다.

 

필자는 확신한다. 믿는다. 필자는 굳게 믿는다. 오늘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이 일은, 내일이면 다시 만날 약속이리라. 오늘 흘러내리는 이 눈물은, 내일 짓게 될 미소의 연습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행복하다. 슬프지만 행복하다. 내일은 필경 슬프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을테니까....

 

  © 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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