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아래로 내리고 수증기는 위로 오르니 오르내림은 같은 것이라는 소피스트
인간을 능멸하는 에이아이의 열 수를 앞서가는 수 싸움은 학습과 조작이 공존하는 공간
숨는 자와 숨기는 자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바꾸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추격자와 도망자의 눈치에 술래와 숨바꼭질하는 스파이전 같은 게임
- 특별감사(特別監査) -
43. 첫 특감
다소 걱정이 앞선 연수는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룸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실내 정리를 하고 서류 가방과 노트북을 챙겨 서둘러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직장생활 경험이 근 삼십 년에 가까워 쌓인 경험과 노하우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으련만, 감사일은 처음이다 보니, 그것도 연수가 이끌어 가고 있는 특별감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동혁 부장과 박수현 차장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이어 로비로 내려오자 세 사람은 미리 안내 데스크에 부탁해 놓은 호출택시를 확인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태호에서 막 잠을 깬 새벽안개만이 호텔 주변을 서성이며 스멀거리고 있었다
세 사람이 주변을 둘러보며 택시를 찾고 있는데 마침 안개를 헤치며 초록의 택시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호텔 현관 앞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연수 일행이 호출한 택시였다
벨보이 직원이 얼른 택시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고 세 사람은 열린 트렁크에 어깨에 메고 있거나 손에 든 짐을 집어넣고 택시에 올라탔다
첫 감사가 이뤄지는 협력업체는 지난 금요일 연수가 두 번째로 면담을 했던 조선족 통역원이 다니고 있는, 와이어하네스를 납품하는 "화성전기"라는 회사의 중국법인이었다
첫 면담자로부터는 그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 속에 저장된 증거 파일을 이미 넘겨받은 터라 좀 여유가 있었지만, 그 헤드라이트 어셈블리를 납품하는 업체의 바로 인근에 와이어하네스 납품업체인 화성전기가 있었던 관계로 감사 정보가 그 회사로 넘어가면 감사 진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 화성전기를 먼저 감사하기로 한 것이다
택시 기사는 희끗희끗한 안개가 앞 유리로 달려들어 선명치 않은 시야에도 불구하고, 마치 눈을 감고 운전해도 별문제가 없다는 듯이 제법 빠른 속도로 태호를 끼고 있는 호젓한 도로를 달려 곧 4차선 국도로 진입했다
지난 금요일 호텔로 오면서 보았던 기다란 녹차 밭이 보이고, 다시 한참을 달리다 국도를 빠져나오니 고만고만한 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대규모 공업지구가 나왔다
첫 방문업체는 공업지구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중심도로에 접해 있었고, 오후에 방문할 두 번째 방문업체와는 단지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택시가 업체 정문 앞에 멈추고 세 사람은 차근차근 짐을 챙겨 들고 경비실로 향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삼십여 대와 낡은 자동차 두 대가 주차되어있는 주차장 옆에 붙어 있는 경비실로 가서 방문록을 작성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2층짜리 건물이 오른편에 보이고 그 앞에 승용차가 몇 대 주차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사무실로 보였고, 정면과 좌측으로는 제법 길고 높은 공장 건물동이 보였다
연수와 박수현 차장이 사무실 건물로 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향하고, 방동혁 부장은 연수가 손으로 가리킨 캐노피 아래 파레트가 몇 개 수직으로 쌓여 있는 좌측의 공장동으로 혼자서 곧장 성큼성큼 걸어갔다
부품을 상차하거나 하차할 때 쓰이는 플라스틱 파레트와 부품을 내리거나 실을 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두 개의 캐노피는 그곳이 부품 입고와 출고를 하는 창고 겸, 상하차장이라는 것을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연수와 박수현 차장은 사무실 건물로 들어가 곧장 협력업체 법인장실을 찾아갔다
경비실로부터 MH그룹 한국 본사로부터 특별감사를 나온 사람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협력업체 법인장이 연수 일행을 맞으려고 막 사무실을 나오다가 연수 일행을 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저는 이곳 화성전기 중국법인장 김기훈 상무라고 합니다. 먼 길 오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룹감사실에서 나온 장연수 상무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박수현 차장이고 다른 일행 한 명은 헌장을 한 번 둘러보고 이곳 사무실 쪽으로 합류할 예정입니다.
저희가 보낸 협조공문을 보셨겠지만, 저희 그룹 차원의 긴급점검이 필요해 이렇게 저희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업무로 바쁘실텐데, 저희가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만 모쪼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렴요. 당연히 저희가 협조해드려야지요. 우선은 제 사무실로 가서 차 한 잔 드시면서 얘기를 나누시지요.”
김기훈 법인장이 앞장서고 연수 일행이 뒤따라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 회색 천으로 된 사무용 소파에 앉자마자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온 비서가 차를 테이블에 놓고 나갔다
“차부터 드시지요. 그룹에서 협조 요청 공문이 지난주 금요일에 도착해서 갑자기 무슨 일인가? 궁금했습니다.
이 근처에 있는 협력업체 법인장 몇 명과 통화를 해보니 공문을 받은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더군요.
근데 공문을 받은 곳은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이라도 분규나 납품 차질이 있었던 곳이어서 그에 관련된 일로 감사를 나오시는구나 짐작만 하고 있었습니다.
공문에서 요청한 감사 공간은 움직이기 편하시도록 1층에 있는 회의실 하나를 비워놓았으니 차를 드신 후에 천천히 가서 보시지요.”
연수가 예상한 대로 협력업체의 법인장들 간에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통화 몇 번으로 이번 감사대상이 문제가 있는 협력업체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냈다면 이미 그것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놓았을 것이라고 연수는 짐작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강원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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