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아름다운 추상화

차용국 | 기사입력 2021/04/22 [06:19]

추억, 아름다운 추상화

차용국 | 입력 : 2021/04/22 [06:19]

▲ <봄 아이> 정옥이 시인

 

추억, 아름다운 추상화

- <봄 아이>를 통해 본 정옥이 시인의 시향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1. 첫시집 <봄 아이>를 펴다

 

이야기는 힘이 있습니다. 힘은 영향력입니다. 영향력은 자발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부드러운 권위와 지배의 근원입니다. 이야기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하게 합니다. 결국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신화와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이야기입니다.

현생 인류를 생각하는 인간, 즉 호모사피언스(Homo-sapiens)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많은 언어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현생 인류는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인간, 즉 호모나랜스(Homo-narrans)라는 견해입니다.

영국 소설가 바이어트(A.S Byatt)''이야기는 호흡이나 혈액순환처럼 인간 본질의 한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소설이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는 문학이란 점에서 설득력 있고, 공감 가는 진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소설만의 전유물이고, 소설에서만 유용한 걸까? 그렇지 않을 듯합니다. 이야기는 모든 문학의 근원이며, 원래 문학의 시원은 시입니다. 시의 서사 구조는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서사시라 부릅니다. 따라서 시문학의 서사성 여부는 논쟁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현대 시문학의 주류인 서정시에서 스토리의 전개가 여전히 유효하고, 독자와 공감의 터를 공유할 수 있을까?

현대 생활의 복잡성과 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이 스토리를 향유하는 사람의 목적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필요성과 욕구는 더 절실하여 보입니다. 언젠가부터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란 말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여 공감대를 끌어내는 소통방식입니다. 부연하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경험한 이야기 또는 지어낸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상상력과 감성을 주고받는 소통 방식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 또는 타인과의 소통일 수도 있습니다. 시 한 편을 봅시다.

 

목련 나무 하얗게 웨딩드레스 입는 날에

둥지를 튼 노고지리 사랑가 들려오고

붉은 동백아기 몽글몽글 피어오르니

동박새 뾰로롱 날아드네

싱그러운 초록 바람길에서

입술 삐죽 내밀며 막대사탕 빨아 먹던

수선화를 닮은 소녀

개나리 햇살 아래 꼬까신 던져놓고

까르르 웃으며

깡충깡충 고무줄 놀이하던 아이

산들바람에 묻어오는 그리움

한 번쯤

세월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한다면

치맛자락 나풀나풀 휘날리며

뛰어놀던 그 아이를 만나고 싶다

 

(''봄 아이'' 전문)

 

정옥이 시인이 지은 시 제목이면서, 이 시집 <봄 아이>의 표제명이기도 합니다. 위 시에서 화자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시인 자신으로 보건, 독자 자신으로 보건, 독자의 서정에 떠오르는 그 누구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위 시에서 중요한 것은 화자가 아니라 시의 대상입니다. , ''소녀''''아이''입니다. 시인은 목련이 만개한 봄날에 ''입술 삐죽 내밀며 막대사탕 빨아 먹던/수선화를 닮은 소녀/개나리 햇살 아래 꼬까신 던져놓고/까르르 웃으며/깡충깡충 고무줄 놀이하던 아이''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면서 ''한 번쯤/세월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한다면/치맛자락 나풀나풀 휘날리며/뛰어놀던 그 아이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리움의 서정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애절한 시향입니다. 그런데, 목련이 필 때면 만나고 싶은 그 소녀, 그 아이는 둘이 따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화자의 유년 자아입니다. 그래서 위 시에서는 유년의 그리움이 진한 시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정옥이 시인의 시에는 잔잔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시에 스토리를 담는다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적지 않은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 스토리가 너무 장황하거나 막연해서는 안 되고, 리듬이나 묘사 등과 같은 시창작의 다른 요건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구체화된 스토리가 제자리에 안착할 때 비로소 빛나는 시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토리는 구체화된 이미지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위 시에서 정옥이 시인이 펼치는 스토리는 감정이 적절하게 절제된 은은한 달빛입니다. 정옥이 시인의 수고로움이 느껴지는 지점입니다. 결국 예술행위는 스토리를 구체화 하는 일입니다. 스토리는 그림이나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사람의 삶 자체가 스토리이기 때문입니다. 정옥이 시인은 그것을 펼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시를 봅시다.

 

바다가 펼쳐지는 고향 남해

아침에 일어나면 고기를 잡으러

바다를 나가 태양을 잡고 오죠

 

태양 아래 일렁이는 물결은

황금빛 물결

바다 아래 사는 물고기는

인어인 줄 아는 어린 소녀

 

밤이면 바다를 이불 삼아

하늘을 바라보고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노래 삼아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이야기하고

 

아침에 태양과

저녁에 태양이 주는 아름다움에

지친 일과를 끝내어도

삶의 아름다움을 아는

어린 시절은 나는 그냥

어부의 딸

 

아직도 설렘이 있는

오십을 넘어선 중년의 나이

일렁이는 파도에 삶의 노래를 실어

출렁이는 부표 하나에

모든 행운을 걸어보는

나는 그냥 어부의 딸입니다

 

(''어부의 딸'' 전문)

 

위 시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앞의 시 "봄 아이"와 매우 유사한 맥락의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위 시에서는 ''라는 화자를 등장시켜 행복한 유년의 추억을 구체화 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펼쳐지는 고향 남해"에서 "바다 아래 사는 물고기는/인어인 줄 아는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노래"했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이야기"했던 "어린 시절은 나는 그냥/어부의 딸"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면서 "오십을 넘어선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출렁이는 부표 하나에/모든 행운을 걸어보는/나는 그냥 어부의 딸입니다"라고 진술합니다. 유년의 자아가 ''어부의 딸''이었던 것처럼, 오십을 넘어선 지금의 자아 역시 여전히 ''어부의 딸''이기를 노래합니다. 유년의 향수와 그리움, 그리고 행복한 유년 자아로의 회귀를 소망하는 간절함이 깊은 시향입니다.

 

2. 그리움의 스토리

 

정옥이 시인이 보여주는 유년의 스토리는 기억의 재현입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지각과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그대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정보를 선택해서 저장합니다. 선택된 정보, 이것이 기억입니다. 또한, 기억은 고정 불변으로 있지도 않습니다. 기억은 자신이 처한 환경, 경험, 지식, 신념 등에 의해 쉼 없이 재구성 됩니다.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다 버리고 남은 알짜배기 정수로 재구성된 그림을 추상화라 합니다. 추상화는 난해하고 모호한 그림이 아니라, 본질의 핵심만이 남아있는 그림입니다. 이런 기억의 추상화가 추억입니다. 바로 정옥이 시인이 그리워하는 유년의 추억입니다. 그 추억의 문을 열어 봅니다.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여 떼를 쓰면

울 얼마 화나서

부지깽이 들고 학교까지 따라오셨지

 

타닥타닥 톡 튀어 오르는 불꽃

부지깽이 살살 그을려

도 써보고

도 써보고

철수야 놀자

적어서 팔딱이며 좋아했었지

 

저녁마다 붉게 타오른 빛이

얼굴을 감싸 안을 때 포근함이 좋아

아궁이 곁을 내어주지 못했네

 

불꽃이 뜨거워 눈물 흘리던 소나무

제 몸을 내어주어

고등어 기름칠한 불씨도

눈물 콧물 찌어 짜며 생선 굽는 나도

부지깽이 손에서 놓지 못했네

 

(''부지깽이'' 전문)

 

정옥이 시인은 위 시에서 유년의 삽화 한 편을 들려줍니다. 그 매개물은 부지깽이입니다. 이것은 불을 피울 때 쓰는 도구입니다. 지금은 주택문화가 변하여 용도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꼭 필요한 도구였습니다. 그러니까 부지깽이는 이제 쓸모가 없는 구시대의 유물인 셈입니다. 하지만, 정옥이 시인의 눈에 포착된 부지깽이에는 유년의 추억이 생생합니다. ''타닥타닥 톡 튀어 오르는 불꽃'처럼 청각에서 시각으로 전화하는 이미지의 변화가 돋보이는 언술도 시의 생동감에 한 몫 더합니다.

정옥이 시인이 부지깽이를 통해 보여주는 엄마의 추억은 동시적이며 회화적입니다. 1연과 2연에서 보여주는 시적 언술은 그대로 한 편의 동화입니다. 정옥이 시인은 이와 같이 동화적인 삽화를 적절히 배치하여, 시적 긴장을 완화시킴으로써 자칫 감정의 과잉으로 빠질 위험을 차단합니다. ''시는 넘쳐흐르는 감정의 발로이다''라는 견해도 있지만(윌리엄 워즈워드), 과잉 감정은 시의 본질적 서정을 형해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독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유념해야 합니다. 오히려 T. S. 엘리어트가 갈파한 것처럼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고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경고를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옥이 시인이 부지깽이를 매개로 그려내는 엄마의 추억은 감정을 정제한 잔잔한 서정입니다. 정옥이 시인의 독특한 언술의 특징과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향입니다. 그 시향은 다음 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추 두 세장 손에 쥐고 팽팽한 문짝에

쫙 물 뿌려가며 먹던 상추 맛은

 

도구 통에 삶은 콩 쿵더쿵 찍어

손으로 토닥거려 짚으로 엮어서 메주 만들어

햇살 잘 드는 처마 끝에 매달아 말려

소금물 부서 넣어 일 년간 잘 익힌 된장

아무것도 넣은 거 없지만

된장 조금 넣어

꽁보리밥 먹던 시절

 

그 시절 쫙 울려 퍼지는 소리는

어느 음악가의 교향곡 소리

한 소쿠리 꽃상추 상위에 덩그러니 있는 모습은

어느 화가의 그림 솜씨

어린 자식 입속으로 한 쌈 한 쌈

밀어 넣어 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주 속 한울림의 모습이랍니다

 

(''엄마의 상추쌈'' 전문)

 

엄마의 추억을 상추쌈을 통해 전개하고 있습니다. 상추쌈은 유년의 추억이며, 엄마의 사랑입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며 믿음입니다. 정옥이 시인은 ''어린 자식 입속으로 한 쌈 한 쌈/밀어 넣어 주는 어머니의 모습은/우주 속 한울님의 모습이랍니다''라며 그 감동을 전합니다. 다소 과장적이며, 관습적으로 볼 수도 있으나, 동시에 평범한 일상의 언어를 통해 순수하고 소박한 감흥을 맛있게 재현한 느낌도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시는 언어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도 ''언어가 있는 곳에서만 세계가 있다고 했으며,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어 선택의 적정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시는 언어를 통해 깨달음과 감정을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의 언어가 일상의 삶에서 유통하는 것이지, 따로 독자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는 일상의 언어로 통제된 감성과 사유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서포 김만중(1637~1692)<서포만필>에서 ''일반 민중이 쓰는 일상어를 구사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언어에서 구체적인 서정의 스토리를 그려내는 능력은 시인이 갖추어야 할 귀한 자질입니다. 정옥이 시인은 그 비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시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 보리 익어 가는 계절

다랑이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

봄기운 빨아들일 적에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에

자박자박 논두렁 밟는 소리

출렁이는 막걸리 탓하며

주전자에 입대고 쪽쪽 거리며

두 손으로 청 보리 비벼 대어

술안주 대신하는 어린 손

검정 고무신에 커다란 주전자

출렁거리며 반은 논바닥으로 흘리고

반은 입속으로 출렁이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이 해롱해롱

막걸리는 내가 마셨는데

술은 하늘이 취하네.

 

(''아버지 심부름'' 전문)

 

정옥이 시인은 위 시에서도 두 명의 화자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유년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입니다. 유년의 자아가 겉으로 들어난 화자이지만, 시향은 유년의 자아를 지켜보는 현재의 자아에게서 나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풍경이지만, 한 세대 전 농촌의 봄은 가난했지만 분주한 계절이었습니다. ''청보리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농촌의 아이들은 들일을 하는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에'' 덩달아 바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 하면서 술맛이 궁금하여 ''출렁이는 막걸리 탓 하며/주전자에 입대고 쪽쪽 거리며''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논두렁을 걸어오는 유년의 자아는, 실은 현재의 자아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날 수 없는 아버지를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현실의 자아 말입니다. 위 시에서 직접적으로 '그리움'이라는 시어를 썼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독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공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구체화된 스토리의 이미지가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시의 매력은 바로 넌지시 말하고 보여주는 은유의 미학 때문입니다. 정옥이 시인의 시는 일상의 언어로 친밀한 서정을 엮어 스토리를 만들어냅니다. 선명한 회화적 스토리의 다정한 매력입니다.

 

3. 스토리로 엮어내는 시향

 

스토리는 기억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다 기억할 수 없고, 추억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에게 두 가지 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그것입니다. 정옥이 시인의 시에서 등장하는 두 개의 자아 중, 현실의 자아가 경험하는 자아이고, 유년의 자아가 기억하는 자아라고 하겠습니다.

경험 자아, 즉 현실 자아는 살면서 매일 매시간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한순간도 쉬지 않고 받아들였다가 버리기를 반복하는 자아입니다. 무한정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도 하지만, 그럴 필요나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기억 자아는 경험에서 받아들인 정보의 정수만을 골라 선택하고 엮어서 저장합니다. 기억 자아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기억 자아에 저장되어 있는 자아는 끊임없이 재구성 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재현됩니다. 추억은 바로 이런 기억 자아에서 생성된 이야기입니다. 세월이 흘러 좋았던 이야기도, 힘들고 비참했던 이야기도 다 추억이 되는 것은, 그것들이 과거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 삶의 한 축을 지탱하면서 영향을 미치며, 미래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견디기 힘들었던 일도 좋은 추억이다''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라 하겠습니다. 정옥이 시인의 추억의 스토리가 과거의 회상에만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섬진강 물길 따라

매화 향기 짙어지면

찾아와 달라고 하던 임

 

섬진강 얼음이 녹아

매화 향기 물길에 스며들길 바라며

내 집 앞 매화나무만 쳐다보네

 

찬서리 된서리 이겨내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

창문을 두드리니

 

가슴속 깊은 곳

두근거리는 소리에 잠 못 이루고

 

섬진강 나루터에

노 젓는 소리 들려오나

귀 기울여 보지만

밤은 더디 가고 마음만 애달파라.

 

(''암향 섬진강에 스며들면'' 전문)

 

서정성 짙은 위 시에서 정옥이 시인은 은근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스토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배경은 섬진강입니다. 먼저 '섬진강 물길 따라/매화 향기 짙어지면/찾아와 달라고 하던 임'을 그리워합니다. 임이 누구인지는 독자의 몫입니다. 간혹 ''이란 말을 구시대의 상투적인 관습적 표현으로 보는 분도 있지만, 꼭 그렇게 단정할 일은 아닐 듯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이나 사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를 임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꼭 시향이 떨어진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임이 현실에 있건, 추억에 있건, 사랑과 그리움의 서정에는 큰 차이가 없을 듯합니다. 그 임을 찾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드디어 ''찬바람 된서리 이겨내고/꽃망울 터지는 소리/창문을 두드리니'' 그 벅찬 기다림과 설렘이 하도 커서 ''가슴속 깊은 곳/두근거리는 소리에 잠 못 이루고'' ''밤은 더디 가고 마음만 애달파라'라고 노래합니다. 드라마의 잔잔한 영상처럼 생생한 스토리의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은 스토리가 있는 시를 기억하고 사랑합니다. 인간의 뇌는 말과 글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미지로 변환하여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정옥이 시인은 언어의 형상화에 남다른 자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체화하여 역량을 확장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수고로움은 반드시 보답할 것입니다. 별빛 같은 시향의 열매 맺기는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시 한 편 더 보겠습니다.

 

섬진강 푸른 물결 따라

매화 향기 흐르는 곳

 

은은한 향기 따라

숨어든 마음

한 잎 따라 물결 위에 흘려보내니

섬진강 뱃사공이 그 마음 받았으리라

 

세월이 흘러

섬진강 너머로

매화꽃은 만발한 데

 

섬진강 뱃사공

보이지 아니하고

잔잔한 물결 위로

매화 향만 그윽하구나.

 

(''강물에 매화 향 흐르고'' 전문)

 

은유의 강으로 달빛 같은 시어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옥이 시인이 그려놓은 매화 향 흐르는 강입니다. 정옥이 시인은 매화 향기 따라 ''숨어든 마음/한 잎 따다 물결 위에 흘려보내니/섬진강 뱃사공이 그 마음 받았으리라''고 회상합니다. 그리고 ''매화꽃은 만발한데/섬진강 뱃사공/보이지 아니하고/잔잔한 물결 위로/매화 향만 그윽하구나'라고 노래합니다. 감정과 언어의 절제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더하여 그 무음의 스토리를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 특히 서정시는 언어로 그려낸 그림과 같습니다. 상황은 물론 감성의 세밀한 묘사를 강조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소위 미사여구나 관습화된 좋은 말을 권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언어 자체는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및 가치의 우열이 없으며, 좋은 시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이건, 배경이건, 감정이건, 언어로 그려내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묘사는 시창작에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합니다. 오죽하면 T. E. 흄이 ''시의 중요한 목적은 정밀하고 명확한 표현에 있다''고까지 했을까? 언어로 그린 풍부한 묘사는 그대로 선명한 영상의 세계를 생성합니다. 정옥이 시인이 그려내는 시 세계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시어로 잔잔한 스토리를 엮는 정옥이 시인의 야무진 솜씨입니다.

 

4. 오래된 미래의 시향

 

춘천시 구봉산 아래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이 있습니다. 네이버의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 서버를 관리하는 각은 모토는 ''어제와 오늘의 소중한 이야기를 내일로 전한다''입니다. 최첨단 포털 사이트의 수많은 데이터 서버는 기억의 보고입니다. 이렇게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은 미래로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제와 오늘의 자료를 기억(저장)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퇴행성 스토리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위한 스토리입니다.

기억은 과거의 정보가 유지되고 조종되는 과정을 통해 미래 기억으로 갈 수 있습니다. 기억이 과거로만 갈 수 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롤의 말처럼 '변변찮은 기억'일 뿐이며, 그 가치도 일천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된 기억이 진정한 기억이며, 창조와 상상력의 근원이 될 수 있고,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정옥이 시인이 그려내는 기억의 세계입니다. 역동적인 삶의 현장에서 좌표가 되는 시세계입니다. 시 한 편을 음독해 봅니다.

 

냉정해지려고 찬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헤매어 봅니다

볼이 얼얼해지고

머리는 차갑게 식어갑니다

 

쪽빛 바다를 가르며

파도를 타는 배 한 척

뱃머리에 부딪히며 달려오는

파도는 꽃을 피워 바다 꽃이 되었습니다

 

갈매기 배를 따라 쫄랑쫄랑 기류를 타고 나르면

아이가 어미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따르는 모습

 

인생의 좌표를 어디로 놓아야 하죠!

밤하늘 북극성 따라

출렁이는 달빛 부표에 눈빛을 꽃아

나는 지금 삶의 바다에 표류하는 선장입니다

 

인내는 꽃을 피우고

성실은 열매를 맺었으니

성공의 육지에

이제는 표착할 때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항해와 같다'' 전문)

 

위 시의 제목처럼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는 사유체계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익숙한 관습적 언술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것은 이 시가 인생과 항해의 비유 자체에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시의 관심은 통속적인 세상의 어느 삶에 표착할 ''의 자아입니다. 이 시의 화자 ''는 일종의 탈입니다. 시인을 대신해 말하는 역할 모델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화자의 소리는 시인의 인생관을 반영한 것일 수 있습니다. 화자가 어떤 특정 상황에서 이런 언술을 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시인의 세계관을 검토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시의 화자 ''는 시인 자신입니다. 정옥이 시인은 ''지금 삶의 바다에 표류하는 선장입니다.'' 배의 모든 책임과 결정을 주관하는 선장은 나 자신을 상징합니다. 지금까지 삶의 바다에서 정처 없이 살았지만, 삶의 많은 굴곡을 헤쳐 온 경험과 추억이 있고, 그것을 다스릴 줄 아는 경륜과 역량도 쌓았습니다. 정옥이 시인은 ''인내는 꽃을 피우고/성실은 열매를 맺었으니/성공의 육지에/이제는 표착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방황을 끝내고 온전히 자신의 실체적인 삶에 정착하겠다는 의지의 선포라 하겠습니다. 그것이 시인의 길이든, 그 어떤 길이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어우러진 원숙한 삶의 출발일 것입니다.

 

사뿐히 한 걸음 내디딘 발걸음

오늘 하루의 첫걸음

 

! 잘하고 있나요?

토닥토닥

 

뒤따라 다가온 발걸음이

첫걸음이 중요하다고

잘하고 있다고

 

, 한 걸음 나아가지고

다독여줍니다

 

우린 이렇게 살아갑니다

누군가 옆에서 기운을 북돋아 준다면

살맛나겠죠.

 

(''한 걸음'' 전문)

 

이 시의 화자이며 주체인 '()'''오늘 하루의 첫걸음''을 사뿐히 내딛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첫걸음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시는 느끼고 공감하는 서정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삶의 출발이든, '' 자신의 내면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의 첫걸음이든, 이 시를 관통하는 서정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서정이란 ''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조동일, <한국문학통사 1>, 26)라 할 수 있습니다. 르네 웰렉은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중요한 원리는 어조와 은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시의 어조가 서정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어조는 화자 자신 또는 독자를 향한 '태도'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 잘하고 있나요?''라고 말을 겁니다. 그러면서 ''우린 이렇게 살아갑니다/누군가 옆에서 기운을 북돋아 준다면/살맛나겠죠.''라고 말합니다. 낙천적이고, 고백적이며, 대화적인 어조입니다. 이런 어조는 밝고 친밀한 서정을 그리는데 효과가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절실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만, 부담 없이 긍정적 정서를 다정하게 극대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옥이 시인이 원숙한 삶에서 우러나는 서정의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라 하겠습니다.

 

5. 새로운 선택의 시향

 

시짓기를 전업으로 하는 시인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시인은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며 시를 짓는 생활인이기도 합니다. 생활은 시의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구속이 되기도 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깨달은 진실을 시로 지을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변적이 아닌 구체화된 삶의 실체를 진솔하게 형상화시키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삶의 서정이 감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시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동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시인과 생활인 두 개의 삶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노래하는 풍경이 언어라는 매체로 조화롭게 다듬어지면 좋은 시가 탄생합니다. 좋은 시란 시어 선택의 적정성과 자연스러움입니다. 시의 전개가 조작적이지 아니하고, 시어가 꼭 필요한 제자리에 들어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시라 할 것입니다. 정약용(1762~1836)<여유당전서>에서 ''시를 짓는 일이 정말 어려운 것은 '자연스러움''깨끗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라 했습니다.

 

푸른 마음을 하늘에 매달아 놓고

살포시 연정 섞으니

노란 잎이 되었습니다

사랑을 한 방울 섞어보니

붉은 마음이 자리하고

그리움 섞어 저어보니

단풍잎이 되었습니다

 

애달픈 마음 한 조각이 깃들어 버리니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연정, 사랑, 그리움에 애달픔까지 넣어보니

바스러진 낙엽이 거름 되어

봄꽃이 피어납니다.

 

(''무엇일까요?'' 전문)

 

순환론적 세계관을 보여주기도 하는 위 시의 구조를 살펴봅니다. 1연에서처럼 ''푸른 마음''''단풍잎''으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노란 잎''''붉은 마음''의 시절을 거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하여, 각 시절 변화의 변곡점을 거치면서 ''연정, 사랑, 그리움''과 같은 감성의 촉매를 섞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2연에서는 ''연정, 사랑, 그리움에 애달픔까지'' 더한 거름 위에 새로운 ''봄꽃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나뭇잎의 순환적 삶에서 깨달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 윤회를 느낄 수도 있고, 인생역경에서 체화한 경험과 지혜를 엮어(섞어)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은유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자의 견해는 이미 고금의 적잖은 사례가 있으므로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나는 정옥이 시인이 후자의 세계로 진일보 하고 있음을 봅니다.

창조라는 것이 ''에서 ''를 생성한다는 견해는 치명적인 오해입니다. 단호히 말 하건데 그런 창조는 우연 이외에는 없습니다. 시창작은 언어 예술입니다. 우연에 맡겨놓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창조는 동종 또는 이종의 엮음(섞음)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플로리스트는 꽃을 만들지 않는다. 여러 꽃을 선택하여 함께 묶어줄 뿐이다. 그렇게 이전의 꽃에서 전혀 다른 색, 다른 모습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꽃이 재탄생한다.''고 했습니다. 창작을 플로리스트의 작업에 비유한 이 말은 기억의 창조성과 미래 지향성의 함의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선별하여 엮는(섞는)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미 창작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함의입니다. 바로 정옥이 시인의 모습입니다.

 

노란 달팽이 더듬이 내밀어

야릇한 봄을 야금야금 핥고 있다

 

낼름거리는 더듬이는

진득한 아지랑이를 뿜어내고

토옥 톡 터지는 봄이

구례를 휘감아 놓아줄 줄 모른다

 

맛 들어가는 계절 앞에

아낌없이 내어주는 달팽이

빙그르르 돌면서

꽃잎 되어 사방으로 날갯짓하고 있다

 

('', 산수유다'' 전문)

 

위 시는 산수유 꽃을 달팽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시각청각촉각 등 감각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음독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며, ''진득한 아지랑이를 뿜어내고'' 있는 달팽이의 걸음은 정옥이 시인의 자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의 내면과 표면의 삶, 추억과 미래가 섞여 연결된 자태를 봅니다. 정옥이 시인은 일상의 삶에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시창작의 열정과 역량을 다져왔습니다. 그 시향을 담은 <봄 아이>''꽃잎 되어 사방으로 날갯짓하고'' 있습니다. 정옥이 시인의 새로운 선택과 시집 출간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강원경제신문

 

서장대 21/04/22 [11:56] 수정 삭제  
  축하드립니다. 더욱 정진하시어 공감과 여운을 남기는 이쁜시 많이 선보여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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