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충고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다시 보며

차용국 | 기사입력 2021/03/15 [05:59]

100년의 충고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다시 보며

차용국 | 입력 : 2021/03/15 [05:59]

 

▲ 100년의 충고,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다시 보며


100년의 충고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다시 보며

 

 

▲ 차용국(시인, 문학평론가)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1. 사람은 가도 문장은 남아

  

이 책을 지은 상허(尙虛) 이태준(1904~?)은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신명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아버지가 사망한 후 철원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그는 철원에서 봉명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이 학교에 국문학자 가람 이병기(1891~1968)가 교사로 있었다. 이태준이 그의 수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 특별히 주목 받는 사제지간이었는지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이태준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했다.

 

1925년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가 입선된 것으로 보아 작품 활동을 시작한 듯하다. 하지만, 그는 1926년 일본 도쿄의 조오치(上智) 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가 1928년 중퇴하고 귀국할 때까지 작품을 발표하지는 않은 듯하다. 이태준은 1929년 <개벽> 입사와 1933년 8월 김기림, 정지용, 이효석 등과 구인회(九人會)를 결성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듯하다. 1934년 <달밤>, 1937년 <가마귀> 등의 단편소설집과 1937년 <구원의 여상>, 1938년 <화관> 등의 장편소설을 발간했다. 1939전부터는 <문장> 지를 주관하였다. 1939년 <이태준 단편선>, 1941년 <이태준 단편집>, 1947년 <해방전후> 등의 단편집과 1940년 <청춘무성>, 1946년 <사상의 월야> 등의 장편소설을 발간했다. 더하여 1947년에는 기행문 <소련기행>을 발간했다.

 

이들 작품을 살펴보면 당시 유행을 타기도 했던 경향주의 문향을 느낄만한 여지가 별로 없다. 오히려 순수예술, 즉, 예술지상주의적 색체가 농후한 편이다. 인간 본래적 서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의 문장은 탁월한 언어 예술이다. 그의 작품은 깊은 서정성과 예술적 완성도가 교묘하게 어우러진 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그가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홀연히 월북했다. 그해 7~8월경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의 월북에 관해서 자의적이 아니라 강제적이었다는 후문도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한 것은 사실이므로, 이후 그의 활동은 북한에서의 이력이다.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월북 작가들처럼 그의 행적도 찾기가 어렵다. 한국전쟁 때에는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다는 소문도 전해진다. 1949년 <첫전투>, 1950년 <고향길> 등의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신빙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순수예술 지향성의 문학세계와 사회주의 사상의 경향문학이 온전히 결합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사상 검증을 추궁당하다 1956년 숙청당했다는 풍문만 있을 뿐이다.

  

이 책 <문장강화>는 문장론에 관한 뛰어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원래 1939년 2월 <문장>지 창간호부터 9회 연재하다가 1940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의 택스트로 활용하고 있는 책은 1988년 초판을 발행한 2019년 28쇄 발행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내용을 이루는 글은 80년 전에 쓴 것이다. 80년도 더 지난 책이 지금도 여전히 고전처럼 읽혀지고 있는 것은 임형택 교수의 표기법 현실화와 같은 수고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책의 문장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알찬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당대 제일의 문장가란 칭송을 들었지만, 글이 마음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고치기를 거듭했던 작가로도 유명하다. 미사여구와 상투어를 덕지덕지 엮어 글을 써놓고 자칭 시인이요 작가라며 까부는 인사들과 질적으로 달랐다. 이 책은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글쓰기의 교본이다. 이렇게 사람은 가도 문장은 남는 것인가?

  

 

2. 말의 시대에서 문장의 시대로

  

문장이란 언어의 기록이다. 언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17쪽). 흔히 좋은 문장은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기(多商量). 즉, 삼다(三多)에서 나온다고 한다.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글을 쓰려면 이런 고전적인 충고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해 보인다. 무언가 실질적인 무기가 갖고 싶은 것이다. 명필 완당(阮堂) 김정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법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도 안 된다(23쪽)''고 했다. 마찬가지로 좋은 문장의 법은 무엇인가?

 

말은 청각, 글은 시각에 의해서 이해된다. 말은 당시성, 글은 시간과 공간의 지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글은 말처럼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배워야 된다(19쪽). 글은 말에서 나왔지만 이렇게 차이가 많다. 원래 말과 글은 변론술에서 발달했다. 즉, 말하기 기술에서 시작했다. 당연히 말의 기술인 수사학(rhetoric)이 중요했다. 그러다가 인쇄기의 발명으로 대량의 출판이 가능해지자, 말보다 글이 중요하게 되었다. 당연히 수사학은 수사법으로 대체되었다.

 

말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 문장이지만, 같은 사람이 같은 뜻을 말하더라도, 경우 따라 기분 따라 말의 조직이 달라진다(42쪽). 글에서 담화를 인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인물의 의지, 감정, 성격의 실면모를 드러내기 위해서요. 사건을 쉽게 발전시키기 위해서요. 담화 그 자체에 흥미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44쪽).

 

담화문을 인용하여 쓸 경우 주의해야 할 것은 그 말은 자기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것을 찾아놓는 데 충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인물의 말'을 찾는 데는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51쪽). 즉, 하나밖에 없는 말을 찾을 것. 어감이 있게 쓸 것. 성격적이게 쓸 것. 암시와 함축이 있게 쓸 것 등이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주의해야 할 것도 만만찮다. 중국의 후 스(胡適)는 다음 여덟 가지 조목을 들었다(26쪽).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글을 짓지 말 것.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하는 글을 짓지 말 것. 전고를 일삼지 말 것. 현란한 어조와 상투적인 말을 쓰지 말 것. 대구를 중요시하지 말 것. 문법에 맞지 않는 글을 쓰지 말 것. 옛사람을 모방하지 말 것. 속어, 속자를 쓰지 말 것 등이다.

 

문장은 일체의 언어로 짜지는 직물이다. 언어에 대한 인식과 세련이 없이는 비단 문장을 짜지 못할 것이다. 언어에 대한 인식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유일어를 찾아야 한다(87쪽). 플로베르는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고 하였으며, 모파상도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 말밖에 없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말을 많이 알아야 한다. 말공부를 해야 한다. 말공부의 방법으로는 듣는 것, 읽는 것, 만드는 것, 이 세 길일 것이다(90쪽). 마지막으로, 글을 스스로 발견해 만들어 써야 한다. 글 쓰는 사람은 전래어든 신어든 외래어든, 이미 존재하는 어떤 언어에도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끊임없는 새 언어의 탐구자라야 한다. 글 쓰는 이는 문장보다 먼저 언어에 책임이 크다(95쪽)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어를 귀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문인이다.

  

좋은 문장은 예컨대, 서정의 묘사에 관해서 직접 슬프다, 기쁘다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 감정을 묘사해서 독자가 절로 슬퍼지고 절로 기뻐지게 하는 것(142쪽)과 같다. 가장 뛰어난 글은 이런 것이다. 이와 같은 좋은 문장의 기본 특성은 다른 장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기행문에는(150쪽) 떠나는 즐거움이 나와야 하고, 노정이 보여야 한다. 객창감과 지방색이 나와야 한다. 그림이나 노래를 넣어도 좋지만, 고증을 일삼지는 말아야 한다. 또한, 기행문에는 날씨, 가는 모양, 가는 곳과 나, 상상하던 것과 실제, 새로 보고 들은 것,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거기서 솟는 추억과 희망, 이날 전체의 느낌 등(168쪽)을 맛깔 지게 버무려 놓아야 할 듯하다.

 

논설문은 공명정대할 것, 열의가 있어 먼저 감정적으로 움직여 놓을 것, 확실한 실례를 들어 의심을 살 여지없이 신뢰를 받을 것, 논리연하여 공리공론이 없고 중언부언이 없을 것, 엄연미가 있을 것(179쪽) 등이 좋은 문장 요건일 것이다.

 

수필은 너무 길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상이나 문장이나 자기 스타일은 살리더라도 이론화하거나 난삽해서는 안 된다. 음영을 관찰해야 한다. 품위가 있어야 한다. 예술적이어야 한다(216쪽)는 점이 좋은 문장의 요건이다.

 

지금까지 논설문, 기행문, 수필 등과 같은 각종 문장의 특성과 작성 요령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글의 제재는 자기가 관찰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곳에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만큼 있는 것이다. 자기가 넉넉히 느낄 수 있는, 요리할 수 있는, 제힘에 만만한 것으로 택하는 것이 상책이다(239쪽). 무엇이든 제대로 모르면서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무식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이며, 스스로 허영과 허세의 빈대가 득실거리는 속물임을 고백하는 일이며, 자신의 글이 신뢰할 수 없는 글이라고 선언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글은 겸손하게 써야한다고 했다. 내가 정확히 아는 만큼만 쓰는 것이 겸손한 글쓰기의 처음이며 끝이다.

  

 

3. 일필휘지(-筆揮之)는 없다

 

명문이나 명화치고 일필휘지해서 되는 것은 자고로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일필이 되는 것은 차라리 우연이다. 우연을 바랄 것이 아니라 이필, 삼필에도 안 되면 백천필에 이르더라도 심중엣 것과 가장 가깝게 나타나도록 고쳐 쓰는 것이 문장법의 원칙일 것이다. 이렇게 가장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문장을 고쳐나가는 것을 '퇴고'라 한다(222쪽). 퇴고의 유래를 살펴보자.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들은 연못가 나무 위에 잠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

 

중국 당나라 때 가도가 지은 시다. 가도가 처음 지은 이 시문은 '승고(敲)월하문'이 아니라 '승퇴(推)월하문'이었다. 그런데 '승퇴(推)월하문'을 읊어보니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민 고민하다가 '퇴(推)'를 '고(敲)' 바꾸었다. 그러자 다시 '퇴(推)'에 애착이 생겼다. 며칠을 '퇴(推)'로 할까? '고(敲)'로 할까?에만 골몰하다가 경윤(서울시장에 해당하는 벼슬) 행차와 부딪쳐버렸다. 경윤이 이유를 묻자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연을 들은 경윤은 '퇴(推)'보다 '고(敲)'가 좋다고 말하였다. 경윤은 당대의 문호 한퇴지였다. 이후 가도와 한퇴지는 글벗이 되었고, 세인들은 글 고치는 일을 퇴고(推敲)'라고 하였다(223쪽)

 

한때는 일필휘지니 문불가점이니 해서 단번에 써내버리는 것을 재주로 여겼으나 그것은 결코 경의를 표할만한 재주도 아니고, 또 단번에 쓰는 것으로 경의를 표할만한 문장이 나올 수도 없는 것이다(224쪽).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었을 때 친구가 와 며칠 만에 지었냐고 물으니까 ''며칠은 무슨 며칠, 지금 단번에 지었네'' 하고 말했다. 그러나 동파가 밖으로 나간 뒤에 자리 밑이 불쑥해서 들쳐보니 여러 날을 두고 고치고 한 초고가 한 무더기나 쌓였더란 말이 있다.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은 글쓰기의 진리다(224쪽). 러시아어 문장을 가장 아름답게 썼다는 뚜르게네프는 어느 작품이든지 써서 곧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책상 속에 넣어두고 석 달에 한 번씩 꺼내보고 고쳤다고 한다(225쪽). 예나 지금이나 명문가치고 퇴고에 애쓴 일화가 없는 사람이 없다(225쪽).

 

그럼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즉 퇴고의 기준이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글을 고친다고 해서 으레 화려하게, 유창하게, 자꾸 문구만 다듬는 것으로 아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226쪽). 퇴고를 할 때에는 먼저, 용어를 보자. 정확한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글쓴이의 그 분야에 관한 지적 수준을 말해주는 것과 같다.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다는 함의이다. 둘째, 모순인 곳과 오해될 데가 없나 보자. 셋째, 인상이 선명한가, 어지럽게 하는 데가 없나 보자. 넷째, 될 수 있는 대로 줄이자.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230쪽). 다섯째, 처음의 것이 있나? 없나? 글을 고칠 때 유념해야 할 것이 처음 글을 쓸 때의 생각과 싱싱함을 유지하는 일이다. 만약 이것들을 이지러뜨렸다면 그것은 도리어 실패다(231쪽). 앉은자리에서 자꾸 고치지 말 것이다. 글도 실처럼 급할수록 엉킨다. 피곤해지는 머리로는 '신선함'을 살려나가지 못한다. 여러 날 만에, 남의 글처럼 낯설어진 때에 고치는 것이 이상적이다(232쪽). 여섯째, 이 표현에 만족할 수 있나? 없나? 이다. 글은 자기의 표현이다.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글을 남에게 읽으라고 내놓을 수 있는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지 8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현대 글쓰기의 교본으로도 손색이 없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과 전쟁이라는 시련의 시대에 뼛속까지 글을 사랑한 천재문장가의 귀한 충고는 오늘도 유효하다. 물론 천 년이 가고 만 년이 지나도 여전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의 제목을 '100년의 충고'라 붙인 이유는, 글을 쓰는 일생 동안 오로지 깨닫고 실천해야 할 문장이란 뜻이다. 사람은 비록 100년의 일생이지만 그 안에 우주 시공간의 전부와 삼라만상의 역사와 신화 모든 것을 포괄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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