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표기법의 이해(김미형ㆍ서은아 지음, 2014) / 차용국(시인ㆍ문학평론가)

차용국 | 기사입력 2021/02/23 [21:51]

국어 표기법의 이해(김미형ㆍ서은아 지음, 2014) / 차용국(시인ㆍ문학평론가)

차용국 | 입력 : 2021/02/23 [21:51]

차용국(시인문학평론가)

국어 표기법의 이해(김미형ㆍ서은아 지음, 2014) 

 

  

가만히 생각해 볼까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

다정하게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라라 즐겁거나 또는 슬플 때

마음속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말과 글의 고마움을.

바라보아요, 우리가 표현해 놓은 글자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요.

아름다운 마음을 기억하게 해요.

자랑스러운 일을 한 날 일기를 써요.

차고 넘쳐나는 우리들의 마음.

카랑카랑 맑고 밝은 동심의 소리,

타당성 있는 이성의 소리,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사랑의 소리,

하고픈 모든 소리 다 표현해 주는

아, 위대하고 거룩한 우리들의 말과 글.

야무지게 배워 익혀

어긋나지 않게 사용할 때

여름 숲처럼 풍성하게 유익한 정보 넘쳐나고

오달진 사람으로 우리가 바로 서고

요모조모 슬기 넘치는

우리네 한글문화 뭉게뭉게 피어나서

유구한 역사 속에 우뚝 서는 한국.

으뜸 자랑 우리 말글

이고지고 사랑해요.

 

위 글은 이 책 ''머리말'' 앞에 있는 <한글 24행시>다. 자음 14개, 모음 10개, 총 24개의 한글 자모순을 각 연의 두운으로 붙여 노래한 시다. 읽으면 읽을수록 흥이 난다. 호흡도 척척 맞아 떨어진다. 역시 한글이 으뜸이다. 슬쩍 욕심을 더하면, 누가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많이 듣고 부른 영어 ''알파벳 송''이나 1980년대 송창식이 부른 ''가나다라''처럼.

 

언젠가 어떤 회의를 마치고, 속기사가 작성한 회의록 초안을 보며 재밌게 웃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속기록만 보고는 우리말을 제대로 하는 분이 도대체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 회의는 의사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이 아주 잘 마친 회의였다. 그런대도 회의에서 발언한 말을 기록한 글을 보니 전혀 매끄럽지 못하다. 역시 말과 글은 다르다. 말에는 표정이나 억양 등의 비언어적 요인과 개인적인 언어 습관 등이 혼합되어 있으므로 글처럼 규칙적으로 쓰지 않아도 뜻이 통하고, 효율적인 언어 사용 측면에서도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한국어를 적는 한글은 매우 과학적인 문자로서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임에 틀림없지만, 한글을 이용한 한국어 바로 적기는 매우 까다로운 요인들을 안고 있다. 어떤 발음을 표준으로 삼아서 표기에 적용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의 문제도 있고, 그 소리를 연철하여 적는가, 분철하여 적는가 하는 두 방식이 존재하므로 표기법 문제가 다소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것에 대해 익혀두면서 국어표기를 할 때에는 틀리지 않도록 늘 확인하여 사용하겠다고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머리말'' 일부). 이와 같이 글은 정해진 약속대로 쓰는 연습과 습관이 필요하다. 한글이 표음문자라는 말은 소리 나는 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지, 소리 나는 대로 쓰라는 말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세계의 어느 언어도 소리 나는 대로 완벽하게 표기하는 경우는 없다.

 

저자는 국어 표기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어법이나 맞춤법을 무시하다 보면 결국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나 단절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표현이 활발해진 현대에 와서 역설적으로 의사소통의 벽을 느끼는 때가 더 많아졌다. 정서법을 어긴 예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읽고 이해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며, 표현의 뜻을 모를 지경에 이르게 된다(1쪽). 둘째, 어법이나 맞춤법을 무시하면 이성의 핵심에 있는 과학성과 정확성의 정신이 사라지게 된다. 글자를 바르게 적는 것은 자기 정신의 바름을 드러내는 일과 맥이 같다 한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인 마가렛 맥마너스가 ''언어는 우리의 인성을 반영한다. 틀린 문법을 사용하는 것은 자세가 나쁜 것보다 더 나쁘다. 나쁜 자세는 육체적인 나약함을 반영하지만 틀린 문법은 정신적인 나약함을 반영한다.''라고, 한 언론 매체를 통해 말했다. 언어를 잘 쓴다는 것이 정신적인 면과 관련됨을 역설한 내용이다(1쪽). 셋째, 어법이나 맞춤법을 무시하면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애국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모국어'라는 말 속에는 '애국심'이라는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2쪽). 넷째, 글자를 바로 적는 것, 글을 잘 쓰는 것은 인문 정신의 시작이다. 인문 정신이란 우리 사람들에게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정신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문명의 이기도 인문 정신을 근본으로 하여 사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다. 그러면, 왜 인문 정신은 글과 관련되는 것일까? 글은 바로 정신과 이성의 형성체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은 곧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며 생각을 통해 인격이 형성된다고 하는 인간적 당위성에 합당한 것이 되는 것이다(3쪽). 이외에도 바른 표기법을 써야 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을 듯하다. 중요한 것은 그걸 다 알면서도 익히기는 쉽지 않다는 것일 듯싶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 맞춤법은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하여 공포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개정한 것으로, 1988년 문교부가 확정 고시하고 1989년 3월부터 시행된 것이다(13쪽). 한편, 2005년 1월 27일 국어기본법도 제정되었다. 국어기본법은 국어의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법 제1조). 한글 보전을 위한 선열들의 희생과 공적을 여기서 더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과 글을 바르게 쓰려는 노력은 우리의 정신을 바르게 하려는 노력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164쪽)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글을 바르게 쓴다는 것이 소위 미사여구나 고상한 언어의 나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언어의 사용이 인격의 고양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세상에 언어의 우열이란 있을 수 없다. 고상한 언어가 따로 있고, 천박한 언어가 따도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상황과 맥락에 꼭 맞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말과 글을 바르게 쓰는 일이라 하겠다.

 

추가로 생각해 볼 일이 디지털 시대의 언어 사용이다. 특히 지금은 인터넷이 세상을 그물코처럼 연결하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세계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퍼 나르기 바쁘다. 각국의 언어가 뒤섞이고, 이모티콘과 같은 유사언어도 사용하고 있다. 세계의 어떤 언어도 순수한 고유어로만 존재할 수 없다. 가끔 근거 없이 감정적으로 외국어 사용을 비판하거나 언어 순화 대상으로 몰아 부치는 사례를 보면 답답하다. 외국어가 섞여있다고 좋은 말이니 나쁜 말이니, 언어 순화를 해야 하느니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촌극이 아닐 수 없다. 말이 섞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모국어에 외국어가 섞이는 것은 문화 교류의 산물일 수 있다. 외국어를 쓴다고 우리의 정신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우리의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우리글에 정착한 한자어가 어떤 역기능과 순기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것 때문에 민족의 정체성이 훼손되었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예컨대, 매년 교수신문에서는 한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선정 발표한다. 2020년 응답자의 32.4%가 ‘아시타비(我是他非)’를 택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뜻이다. 타인과 자신에게 적용하는 도덕적 잣대가 다를 때 흔히 쓰는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바꾼 신조어다. 한자어가 우리글의 일상적인 사용의 일면으로 자리 잡고 있는 위와 같은 사례와 새로운 외국어의 유입 및 사용을 동일하게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든 외국어가 우리글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며, 부득이하게 들어온다고 우리글이 퇴행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 변해갈 뿐이다.

 

다만, 이미 일상의 친밀한 우리글이 있는데도 외국어를 마구 쓰는 것은 지성인의 언어 행위도, 바른 글을 쓰는 일도 아닐 듯하다. 외국어가 우리글에 들어오면 외래어로 인정받아 쓰는 것이지, 외국어 자체가 우리글 마당에 들어와 휘젓고 싸돌아다니는 것까지 방관하는 것일 수는 없다. 언어는 우리가 자제하고 선별해서 쓸 도구이다. 도구는 갈고 닦아야 빛난다. 국어 표기법도 마찬가지다.

▲ 국어 표기법의 이해 표지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