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체인지(최윤식 지음,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강명옥 | 기사입력 2021/01/13 [21:24]

빅체인지(최윤식 지음,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강명옥 | 입력 : 2021/01/13 [21:24]

 



빅체인지

 

- 코로나19 이후 미래 시나리오(최윤식 지음,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미래는 항상 궁금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대비도 할 수 있고 걱정도 없을 텐데,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 무언가 예측 가능한 신호 한나 쯤은 있지 않을까? 미래학자 최윤석은 ''미래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미래는 반드시 미래 신호를 주고 온다!''(16쪽)고 말한다. 그러면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여 팬데믹을 일으킨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미래라고 예언처럼 홀연히 나타날 수는 없다. 미래는 어떤 식으로든 현재 및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우선 그 고리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미래 예측의 한 방편일 듯하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염병의 하나였던 천연두는 수세기를 가로질러 인류를 공격했다.16세기에 천연두는 면역력이 없던 중남미 원주민 5천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25쪽). 1967년 한 해에만 1.500만 명을 감염시키고, 그중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 이후에도 매년 기세를 떨치며 1980년 WHO가 공식적으로 종식 선언을 하기 전까지 80년 동안 약 3억 명의 생명을 빼앗아갔다(24쪽). 천연두는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코로나19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과거 전염병은 스페인독감이다. 코로나19처럼 폐에 치명적 손상을 주면서 팬데믹을 일으켰고 바이러스 종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스페인독감의 최초 발병지는 1918년 3월 미국 중서부 곡창지대인 캔자스주 해스켈이었다. 2만 6천 명 규모의 군사 훈련소가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훈련받은 군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위해 유럽으로 파병되어 전장에서 스페인독감을 퍼뜨렸다. 발병 초기에는 살상률도 낮았고, 곧 여름이 되면서 전파력도 잠시 약화되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본국 귀환을 앞둔 각국 군인들이 임시 캠프지에서 다시 모이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캠프지에서 '3일 열병'이라고 불리는 증상이 유행했고, 단순 감기로 판정받은 군인들이 귀향하면서 전 세계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원인은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체인 H1N1 바이러였다. 정식 명칭은 '1918년 인플루엔자'다(27쪽). 1918~1919년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 900만 명보다 최대 11배 많은 5천만~1억 명의 사망자를 냈다(25쪽). 스페인독감은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미국의 역사학자 윌리엄 맥릴은 <전염병의 세계사>라는 저서에서 전염병을 돌발적이고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정치를 비롯해서 경제와 개인 생활환경 등 인간사 전체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26쪽). 그의 견해는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였다. 스페인독감의 공격을 받은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1918~1919년 스페인독감은 3번의 확산기가 있었는데, 조선에는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2차 확산기인 1918년 9월경에 집중 발병했다. 조선 인구의 44%에 해당하는 742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가량 사망했다. 1918년 1월에는 인천 지역에서만 하루에 2천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29쪽). 대량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삶의 기반인 경제가 무너지는 재난 상황은 강력한 사회 변화의 요인이 된다.

  

스페인독감의 확산으로 근대 한국 사회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역사의 변곡점이 될만한 큰 사건의 계기가 되었다. 바로 3ㆍ1 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1월 조선총독부의 독감 방역 실패와 경제 마비가 조선인의 불만을 폭발시켜 3ㆍ1 운동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2017년 김택중 씨가 쓴 <1918년 독감과 조선총독부 방역정책>이란 글에서 ''조선총독부의 독감 방역 실패로 일상적인 죽음을 목격하게 된 한국인들은 무단 정치 10년의 절망감을 분노로 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였다''고 평가했다(30쪽). 3ㆍ1 운동의 원인이 전적으로 스페인독감에서 기인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무리지만, 적어도 3ㆍ1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인식의 변화에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스페인독감은 미국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초 '세계의 공장'으로 불린 미국 최대 공업지역 중 한 곳인 필라델피아는 스페인독감의 파괴력을 우습게 알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군인 환영 퍼레이드를 강행했다(32쪽). 결과는 참혹했다. 스페인독감이 사라지고 난 이후 1920~1921년, 미국 경제가 심각한 경기침체(리세션)에 빠졌을 때 필라델피아의 불황은 유독 심했다(34쪽). 전염병으로 불안해진 사회는 인구가 줄고, 인심이 흉흉한 불안에 놓이게 된다. 숙련된 노동력과 자본이 들어올 문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뒤를 이어 경기 침체가 발생하는 것은 단순한 순환고리다.

  

중세를 강타했던 페스트도 엄청난 사망자를 내면서 인구 변화를 일으켰다.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자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임금은 최고 10배까지 상승했다(34쪽). 높은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영주들은 파산했고, 봉건제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자영농이 늘어났고, 한 지역 내에서의 자립 경제는 힘을 잃고 지역간 무역이 확대되었다. 시장 경제가 활성화 되었고 상인과 기술을 가진 장인의 재력과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무역과 기술의 발달은 항해술의 발달과 금융제도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중세사회의 퇴장과 근대사회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대사회를 이끌어갈 부르주아 계급의 탄생과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 하는 신호였다. 노르웨이 사학자 올레 요르겐 베네딕토는 페스트로 인한 농노의 지위 향상과 소득 증대가 소비를 촉진시켜, 페스트가 자본주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미국 MIT 피터 테민 교수는 페스트가 제1차 산업혁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35쪽)한 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재난이 일어나면 삶은 피폐해지고, 분노와 혐오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2020년 코로나19가 뉴욕을 강타할 때 동양인 비하, 인종 차별은 물론이고 염산 테러 등 혐오 범죄가 일어났다(34쪽). 극심한 재해의 시기에 각박해진 인간은 그런 고통스러운 환경과 개인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분풀이식 집단 행위에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재난의 시기에는 포퓰리즘의 득세와 법치의 형해화도 우려된다. 안전의 욕구가 마치 긴급한 생존의 문제로 일반화되면서 법치보다는 행정명령이 힘을 발휘한다. 특정 세력 중심의 일방통행 식의 소통과 처벌을 앞세운 위협적인 언술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증세가 허용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재난의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가 정부를 구성하고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관료를 두고 세금을 내는 것은, 안전의 욕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는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명분을 내세워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재난 상황에 포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부만큼 큰 조직은 없다. 큰 정부가 부상하면, 정부의 재정 확대나 지원만 커지지 않는다. 경제 부문 요소마다 규제와 명령이 강화된다. 일자리를 지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곳곳에 반영된다. 정부가 구제금융을 실시하여 기업을 구제해주지만, 주주와 경영자의 권한과 이익에 제한을 가한다. 각종 금융 규제도 만들어진다. 민간 기업의 국영화도 일어난다(189쪽). 정부의 권한이 커지면 인간의 기본권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인권의 회복과 보장을 위해서는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거대 정부가 귀환하면 심각한 부작용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정부가 위기 극복의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는 말 뒤에 몰래 숨어서 따라오는 위험이다. 바로 독재자의 귀환이다. 혹은 독재의 귀환이다(190쪽). 독재는 총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분별하고 사려깊지 않은 대중의 동의도 독재자를 키운다. 히틀러는 당시 독일 국민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다. 대체로 독재자는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시원시원한 행보를 한다. 독재자 특유의 강한 신념은 위기 시에 대중을 사로잡는 중요한 무기다. 독재자는 자기 신념의 정당성을 위해 대중이 증오하는 적을 재빠르게 간파하여, 적과 아군의 피하를 분명하게 분리한다. 기존 정치 집단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대중을 등에 업어야 하기 때문에 포퓰리즘 성향도 강하다. 이들은 내부의 정치 세력을 비롯해서 다른 나라와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면서 경제적 피해를 입은 대중을 유혹한다(191쪽). 유혹에 빠진 대중은 독재자의 홍위병이 된다. 선악의 경계가 무너지고 맹신이 진실로 둔갑한다. 중국의 문화혁명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살펴보라.

  

재난의 시대라고 그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둠이 어디에나 있듯이 빛도 어디에나 있다.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동시에 위기와 문제 속에 있는 위대한 창조와 혁신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278쪽). 우리의 미래가 어디로 갈지는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286쪽). 지금 우리가 처한 코로나19 상황을 어떤 철학과 기준으로 대처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기본권과 생존(안전, 방역, 재난구제 등)의 문제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우리에게 그런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른 미래에서 살게 될 것이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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