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마크 해리슨 지음, 이영석 옮김,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강명옥 | 기사입력 2020/12/31 [09:23]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마크 해리슨 지음, 이영석 옮김,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강명옥 | 입력 : 2020/12/31 [09:23]

 

▲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마크 해리슨 지음, 이영석 옮김, 2020) /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 강원경제신문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마크 해리슨 지음, 이영석 옮김, 2020)

차용국(서평 쓰는 시인)

 

 

코로나19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없는 답답한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집단 면역이 생길 정도의 백신 효력이 발생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한국은 내년 2~3월경에 백신이 들어온다고 한다. 갈 길이 멀기만 하다. 3차 대유행이 한창인 2020년 세밑에 성탄절도, 해넘이와 해맞이 장소도 막아버린 썰렁한 연말연시다. 집과 직장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책읽기로 시간의 공백을 매꿀 뿐이다. 인류의 역사에 전염병이 없었던 적이 있었을까?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과 살아왔고, 미래 또한 전염병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대응을 살펴보고, 그 함의를 숙고하는 것은 또 다시 창궐할 보험증서를 찾아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서 주로 언급한 전염병들은 18세기 이후 서구에서 자주 창궐한 황열병, 콜레라, 페스트, 그리고 가축 질병인 우역 등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20세기의 새로운 전염병인 인플루엔자, 인수 공통 감염병, 광우병 소동까지 다룬다(6쪽). 물론 18세기 이전에도 전염병은 창궐했다. 그 많은 전염병 발병의 원인부터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전염병과 상업, 특히 전염병의 국제적 전파와 방역에 초점을 두고 있다. 풍토병이 국지적 전염병으로, 그리고 다시 세계적 대유행병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여러 환경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인간 사회의 교류 증대, 특히 근대 이후 국가 간의 교역과 무역의 활성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더욱이 근래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이전에 비해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급증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새로운 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가 곧바로 대유행병으로 창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5쪽). 국가 간의 인적ㆍ물적 교류의 범위와 속도는 선박과 기차, 그리고 비행기와 같은 교통수단의 발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원거리 무역은 세균 전파의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종종 그 연결점들을 변모시켰다. 원격지 시장을 위한 대량 생산과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항구 도시와 공업 도시 그리고 농업 지역의 질병 생태계가 바뀌었고, 때때로 종종 새로 유입된 감염병균이 번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수단을 통해 세계는 어떤 점에서는 질병에 의해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506쪽).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사람과 물자뿐만이 아니다. 전염병도 국경이 없는 지구촌 사회다. 경제 문제가 국지적 대응으로 해결할 수 없듯이, 전염병 문제도 국제적인 공조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저자는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에서 전염병을 이해하는 방식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정부가 개입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매우 정치적이었다는 점(56쪽)을 지적한다. 물론 아시아와 유럽에서 전염병에 대한 이해나 대응 방식이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에 대한 궁극적 해결은 정치적 개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와 전염병 간의 영향력과 파급력이 별건이 아니듯이, 그 조정과 해결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3년 이후 일련의 인수 공통 감염병이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발생해 전 세계로 퍼졌기 때문에 새로운 인종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감정이 집단의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10쪽). 이와 같이 전염병은 인권과 사회 분열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대응은 방역과 의학 등과 같은 특정 영역의 전문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총체적인 문제이고, 그 해결도 통합의 시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정치적 위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BSE)과 사람도 비슷하게 걸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을 유발하는 '프리온'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두려워했다. 외국산 제품으로 인해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는 당시 이명박 정부를 향한 무수한 불평과 의혹의 초점을 부채질했다(13쪽). 감염병은 개연성만으로도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정치적 이슈를 촉발할 만큼 강력하다. 감염은 심각한 경제 혼란과 때로는 정치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전염병 내습에 따른 피해는 종종 정부가 경솔하게 사태를 무시하는 행태를 벌이거나, 또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그런 위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더 증폭된다(14쪽). 특히 소통과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편향된 정보에 편승한 정치적 목적에 숙주처럼 달라붙어 럭비공처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기승을 부린다. 정보가 통제되고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오히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내가 믿으면 진짜 뉴스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가짜 뉴스가 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전염병이 유행하는 위기의 시대에는 정직한 정보의 소통과 정책이 중요한 이유다.

  

전염병 창궐과 관련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격리'다. 이것은 지중해 무역과 더불어 무역도시로 성장한 이탈리아 도시들에서 처음 등장했다. 사람들은 전염의 구체적인 과정을 알지는 못했지만 경험적으로 선박과 승객과 화물을 통해 먼 지역의 질병이 전염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근대 유럽 국가들은 동방 항로를 통해 전염병이 내습하는 순간 서로 경쟁적으로 자국 항구로 입항하는 선박에 대해 격리 조치를 취했다(7쪽). 선박의 격리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물론 격리의 일차적인 목적은 방역이었지만, 정치ㆍ경제적인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격리 조치는 또 다른 이름의 관세가 되었고, 그것이 초래하기 쉬운 분쟁들은 세계 무역에 대해 지속적이고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20쪽). 격리는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단순한 문제로 치부하는 접근법으로는 결코 유효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다. 격리는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될 수도 있다. 당연히 부와 힘의 이동을 수반한다.18세기에 격리란 사실상 전쟁의 무기가 되었고, 때로는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위생 대책의 오용에 따른 상업 교란이 상당했기에 상인과 그들의 정치적 동맹 세력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507쪽). 방역과 경제는 어느 일방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격리로 인해 어떤 집단이나 세력이 정치ㆍ경제적인 이득을 누리게 된다면, 이미 공정성을 넘어 분열의 근원이 된다. 국제 관계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질병 예방은 개별 국가 내에서 차단 방역(bio-security)이든 또는 국가들 사이의 위생 장벽이든(security barrier)이든, 보안(security)이라는 맥락에서 나타났다. 보안에 대한 집착은 엄격한 격리 조치와 무역 금지 조치를 좀 더 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야기하는 불신과 보복은 질병 그 자체만큼이나 심각하게 세계 경제를 위협한다(21쪽). 위기의 시대에 보안은 중요하다. 하지만 보안과 은폐가 같을 수는 없다. 전쟁과 혁명으로 얼룩진 시대에 격리를 둘러싼 논쟁은 이념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었고, 보수파와 그리고 민주제 및 자유무역의 진보적 덕목을 찬양하는 사람들 사이에 극명한 분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121쪽). 위생 보안에 대한 환상만이 유일한 문제가 아니다. 감시와 억류에 집착할수록 병원균이 나타나고 전파되는 상태를 은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511쪽). 국내 방역이든, 국제 방역이든 정보의 통제는 불신의 근원이 된다. 정직한 정보의 공유와 공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이다.

  

철도 역시 감염의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주었다. 1910~11년 만주 전역을 휩쓴 페스트도 눈에 띈다. 당시 페스트의 엄습으로 사망자만 6만 명에 이르렀다. 1890년대 중국 광둥성에서 창궐한 페스트와 달리 1910년 만주를 엄습한 이 전염병은 강이나 해안보다는 주로 철도 노선을 타고 퍼져 나갔다(8쪽). 전염병의 빠른 감염경로가 추가된 셈이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속도는 전염병의 전파 영역의 확대와 확산 속도 및 방역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 방역뿐만 아니라 국제 공조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로 흐르고 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 공조와 협조는 1865년 메카에서 발병한 콜레라가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1860년대에 '국제위생회의'를 소집했다. 이후 주기적으로 국제위생회의가 열려 국제 협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주요 항구의 전염병 발병을 각국에 전신으로 통보하고, 이에 따라 동서를 연결하는 항로의 주요 항구에 적절한 격리 조치를 취하기 위한 국제 협정이 맺어졌다. 콜레라와 페스트는 19세기 후반 새로운 국제주의 물결을 낳는 중요한 계기였다(9쪽).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국제 방역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정직한 정보의 공유임을 아무리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나 개발 국가 간의 정직한 정보 공조 신뢰와 신속한 협조체제만이 방역의 시작이며 종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융합의 와중에 있다. 상품, 금융, 인간 노동 모두 전례 없는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무역에서 나타난 고질적인 질병이 아니라 종 사이의 장벽을 이미 넘어섰거나 넘으려고 위협하는 일단의 감염병이다. 21세기의 첫 번째 전염병인 사스는 합법 또는 불법으로 거래된 야생 동물에서 비롯되었고, 광우병은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산업(가축 사육)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508쪽).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삶의 방식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경제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의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행복을 위해 해결되는 것이 중요하다(510쪽). 인수 공통 감염병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동물의 대규모 밀집사육이다(511쪽). 현대인의 과도한 육류 소비에 편승한 동물 사육의 잔혹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소위 '동물공장'이라 불리는 동물의 밀집사육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와 세계보건기구 같은 단체들은 이 불안정한 상황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시도했지만 감염 위험에 대한 평가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모든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시도로 '과학'에 호소하지만, 무역의 위생 규제에 순수하게 기술적인 해결책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고 제안하는 것은 기껏해야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위험한 허구다(514쪽). 코로나19의 팬데믹이 던진 문제는 방역과 경제의 문제 해결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바이러스 전염병이 간헐적으로 출몰하는 지금은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전 방식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과 제도를 창출해야 한다(12쪽). 인간과 동물의 삶과 행복에 관한 통섭적 통찰,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면서 지속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창조하는 과제가 우리의 숙제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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