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빗장을 열고(목경희ㆍ목경화 시집, 2020) / 차용국

차용국 | 기사입력 2020/11/07 [21:05]

그리움의 빗장을 열고(목경희ㆍ목경화 시집, 2020) / 차용국

차용국 | 입력 : 2020/11/07 [21:05]

▲ 그리움의 빗장을 열고 표지  © 강원경제신문


그리움의 빗장을 열고
(목경희목경화 시집, 2020) / 차용국

 

단풍이 절경인 만추의 계절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시집 한 권이 내게 왔습니다. 바로 목경희목경화 자매 시집 <그리움의 빗장을 열고>입니다. 퇴근하면서 우편함에 택배 되어 있는 시집을 보고 만발하는 기대에 얼른 목차부터 살펴봅니다. 목경희 시인은 제1부에서 제5부까지 시를 담고, 6부에서 수필 3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목경화 시인이 제1부에서 제3부까지 시를 펼치고 있습니다.

 

먼저 목경희 시인의 제6부 수필 3편부터 봅니다. 시집을 읽고 소감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왜 수필부터 언급하는지 궁금해 하실 분도 있을 듯합니다.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나는 이 수필 작품을 통해서 비록 지면이지만 처음으로 목경희 시인을 만났습니다. 첫만남은 감동이었습니다. <문예마을 24>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당선 작품인 이 수필에서 목경희 시인의 문학적 소양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수필 작품에 흐르는 서정의 물결은 이 시집의 근원적 시향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경희 시인이 수필 3편에서 그려낸 서정은 '추억의 추상화'입니다. '추억은 추상화된 기억의 저편 / 한두 가지 특성만이 돋아난 새순(졸시, ''추억'' 일부)'입니다. 추억은 추상화된 기억이기에 본질적인 특성만이 남아있습니다. 추상은 대상 전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 버리고 남은 단순화된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추상화를 그리는 일과 같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골라내어 버리고 남은 추상화는, 그래서 과거의 기억에만 갇혀있지 않습니다. 추억은 현실에서 재현 가능한 추상화이며, 이 가능성으로 인해 미래로 연결됩니다. 목경희 시인이 그려내는 추억의 추상화는 현실과 미래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추억, 그 아름다운 추상화!'입니다.

 

목경희 시인은 ''꿈마다 '' 를 찾던 아버지''에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늙지 않는 기억이 있다'고 합니다. 빨간 구두와 편지입니다. 어린 시절 서울 다녀오면서 빨간 구두를 들고 오시는 아버지. 서울서 대학 다닐 때 부쳐주신 아버지의 자필 편지.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빵 하고 웃으실 때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가슴 깊은 곳에 진한 그리움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가거라! 38''을 부르며,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으며 흐느끼는 모습입니다. 목경희 시인은 빨간 구두, 자필 편지, 가거라! 38선이란 매게물을 연결시켜 할머니-아버지-자식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애잔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제를 향해 일관되게 끌고 가는 힘이 돋보이는 진한 감동의 추상화라 하겠습니다.

 

목경희 시인은 ''어머니, 그 강인한 이름이여''''오월, 한 마리 나비되어''에서 어머니의 삶의 추상화를 그려냅니다. ''어머니, 그 강인한 이름이여''에서는 재산도 없고 숫기도 없는 아버지를 만난 어머니. 보따리 장사로 시작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자식을 키워내신 강인한 어머니. 그 이름 뒤에는 사랑받고 싶은 여인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제 손주들과 둘러앉아 추억을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삶은 오로지 자식 사랑이었습니다. 그 깊은 감동은 ''오월, 한 마리 나비되어''의 서랍장에 어머니가 마련해두었던 하얀 광목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딸의 초경에 쓸 생리대 천이었습니다. 어머니--자식으로 이어주는 사랑의 연결을 보여줍니다.

 

목경희 시인이 그리는 추억의 추상화는 과거-현재-미래로 유전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줍니다. 받은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메시지입니다. 목경희 시인은 일상의 삶과 관찰에서 찾아낸 소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타고난 이야기 능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솔한 삶의 향기가 글 전편에 배어있기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작품 전체의 구성과 전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기만 합니다. 용어의 선택과 사용도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타고난 능력과 남모를 노력이 더해진 숙성된 역량입니다. 그 역량으로 추억과 그리움을 담아 맛깔스럽게 빗어낸 아름다운 시집을 펴내면서 목경희목경화 시인은 말합니다.

 

나에겐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이 있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불쑥 치밀고 올라오는 불치병, '그리움'

 

멀리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나에겐

숙명처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병이다.

 

(목경희 '시인의 말' 전문)

 

힘들고 외로울 때,

시는, 문학은

나에게 친구가 되었고

힘을 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감꽃 향기가 그리운 가을

감나무집 막내아들과 마산에 홀로 계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오늘도 난 시를 쓴다.

 

(목경화 '시인의 말' 일부)

 

198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거주하는 목경희 시인에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불치병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움이 절망으로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은 그 안에 충만한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움을 채워준 사랑이 정화수처럼 정제된 시향을 피웠습니다. 목경희목경화 시인은 그렇게 한 땀 한 땀 지은 시를 시집으로 묶어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보내시고 혼자되신 어머니의 생애를 돌아보며 이 책을 어머니께 바칩니다.'

 

오랜 추억들이 흑백 영화

필름처럼 차르르 돌아갑니다

 

하얀 양산 받쳐 든 엄마를

따라나섰던 초여름 날

 

한복을 곱게 입은 여인의 모습

입가에 번지던 미소

그날, 엄마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짤막하게 툭툭 끊어지는 화면

찌지직 긁히는 소리

 

선명하진 않아도

살아 숨 쉬는 기억의 편린들

 

수조 속의 생선처럼

파닥거리며 살아납니다

 

이제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고단한 세월의 무게를 느낍니다

 

오래된 대추처럼

쪼그라진 엄마의 인생

 

엄마는 그래도

괜찮다 하십니다

 

끝나지 않은 엄마의 영화

엔딩 자막은 아직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목경희, ''추억은 영화처럼'' 전문)

 

흑백 앨범 첫 장에는

한복 입고 엄마와 함께 갔던 소풍 사진

마지막 장에는

둘째야 하고 불러주시던

시어머님의 눈물 어린 산소가 있다

 

객지 생활 삼십 년

흐릿한 그림자만 남아 있는 고향 마산

가끔 생각나는

초등학교 졸업 앨범 같다

 

(목경화, ''흑백사진'' 일부)

 

홍엽의 계절입니다. 사무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남산의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홍엽에 취하고, 집에 돌아와 거실의 문을 열면 만추에 젖은 서달산의 추풍에 날아온 홍엽을 가슴에 담으며 생각이 깊어지고, 간이역을 머물다 가는 기차처럼 이런저런 추억이 오고 가는 밤입니다. ''추억은 영화처럼'', 그리고 ''흑백사진''이 전해주는 기억 같은 것인가 봅니다. 빛바랜 오랜 필름처럼 '짤막하게 툭툭 끊어지는 화면 / 찌지직 긁히는 소리', 그러나 '선명하진 않아도 / 살아 숨 쉬는 기억의 편린들', 그래서 '흑백 앨범 첫 장''마지막 장'에 남아 있는 사진 같은 것인가 봅니다. 목경희목경화 시인은 이런 추억의 속성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따스한 봄날

한 소쿠리 가득한 봄

 

어릴 적

코피가 자주 나시던 아버지

빨간 피 아깝게

뚝뚝 떨어진다며

엄마가 건네주던

쑥 한 움큼으로 코를 막으셨다

 

금새 코피는 멎고

아버지는 머리에

포마드 바르고 나가시고

 

나가시는 아버지 바라보며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가

쑥버무리를 만드셨지

 

포슬포슬한 쌀가루

하얀 눈 속에 핀 쑥꽃

털털 털어먹으면

입안에 퍼지던 봄

 

쑥은

봄빛 그리움으로 피어나

아버지를 만나게 한다

 

(목경희, '쑥버무리와 아버지' 전문)

 

젊은 날 거뜬했던

삶의 무게가

어느 날

 

허리통증 때문인지

삶의 고단함 때문인지

무겁게 느껴져 내려놓고 싶을 때

 

바지 허리띠를 한 번 동여매고

괜찮다 헛기침에

다시 짊어졌을 그 짐

힘들었을 그것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무거운 짐

내려놓고 가다가

가다가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을지

 

이제는 알겠습니다

 

(목경화, '아버지' 전문)

 

목경희목경화 시인이 ''쑥버무리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에서 그려낸 아버지를 향한 추억은 동화 같은 그리움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추억은 아름다운 추상화입니다. 사람은 싫든 좋든 많은 기억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무엇이든 부족해도 문제이지만 많아도 병이 되는 것이 만물의 이치입니다.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한 기억은 삶에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불필요한 기억을 버리는 망각의 기제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제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를 말합니다. 추억은 영원히 망각의 강에 버릴 수 없는 특성을 가진 소중한 추상화입니다. 결국 좋은 추억은 삶에 힘이 되고, 나쁜 추억은 삶에 장애를 불러옵니다. 목경희목경화 시인의 추억의 중심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있고, 가족과 이웃으로 전파하는 사랑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삶에 힘이 되는 선한 영향력입니다.

 

너희와 함께 웃기 위해

미소를 연습하고

너희 얼굴에 행복을 심기 위해

노래하듯 말을 한다

 

무서워 뒷걸음 하는 어두운 길

앞장서서 걸을 수 있는 것도

내가 걷는 이 길을

너희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천근 같은 눈꺼풀 뜨기 싫은 날

새털처럼 가볍게 일어날 수 있는 것도

아침을 먹여 보내야 하는

너희들 때문이다

 

사랑하는 딸아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엄마라고 부르는 너희들 때문이고

내가 웃으며 살아가는 이유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목경화, ''살아가는 이유'' 전문)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우린 비를 피해

나무 밑으로 들어갔지

 

당신이 웃으니

나도 웃게 되었어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의 우산은

당신이었네

 

(목경희, ''우산'' 전문)

 

추억이 유전합니다. 목경희목경화 시인이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의 추억은 그리움을 넘어 자식에게로, 가족에게로, 이웃에게로 전해집니다. 선한 추억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감사할 줄 아는 긍정적 삶의 원천으로 작동합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독자의 일인인 나는 흐트러진 삶이 정돈되면서 따사로운 기운을 느낍니다. 시의 보편성에 관한 가치와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일 듯합니다.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찰과, 감성의 울림을 독자와 교감하는 것 말입니다.

 

시는 궁극적으로 분석과 해석의 터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공감의 터에서 비로소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공감을 어렵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남과 더불어 우는 것이 공감입니다. 남이 울면 따라 울고, 남이 웃으면 함께 웃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고통과,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하고 희망이 있는 아름다운 사회일 것입니다. 시는 남과 더불어 우는 공감이기에 시를 사랑하고 누리는 사회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목경희목경화 시인이 그려낸 추억의 추상화는 우리 사회에 전하는 공감의 메시지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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