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中(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2013) / 차용국

차용국 | 기사입력 2020/10/08 [04:39]

열하일기 中(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2013) / 차용국

차용국 | 입력 : 2020/10/08 [04:39]

 

▲ 열하일기 中(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2013)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열하일기 中(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2013)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열하일기> 중편은 상편에 이어, 연암이 1780년 8월 9일 오후부터 8월 14일까지 태학관에 머물면서 쓴 6일 간의 기록과 8월 15일부터 8월 20일까지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쓴 일기입니다. 당시 청국의 인사들과 다양한 문제들에 관해서 토론하고, 조선의 실상과 연관시켜 자신의 견해를 진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동설에 관한 친구 홍대용의 견해, 목축업과 생물종의 다양성 문제, 학문의 본질과 학문하는 자세, 조선인의 음주 문화 등등, 당시 시대 조류와 조선이 처한 문제에 관하여 속 깊은 질문을 던지고 해법을 찾아갑니다.

 

연암은 8월 13일, 기공이란 자와 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연암은 땅덩이의 본바탕이란 둥글둥글 허공에 걸려 사방도 없고 아래위도 없이 쐐기 돌듯 돌다가 햇빛을 처음 받는 곳을 날이 샌다고 말하는 것(70쪽)이라며, 해와 달은 원래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요, 또 오고 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땅이 움직여 돌지를 않고 언제나 한 자리에 박혀 있다고 너무 믿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 아닐까요?(71쪽)라고 말한다. 이에 기공은 땅이 둥글다는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이 처음 말했지만 땅덩이가 돈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선생의 이 학설은 이녁이 터득한 학설인가요, 그렇잖으면 어느 선생에게 계승한 학설인지요?(73쪽)라고 묻는다. 연암은 이것은 내가 터득한 지식이 아니라 귀동냥이랍니다. 홍대용이란 친구가 있는데 호는 담헌입니다. 학문을 좋아하되 하나에 얽매이지 않아 일찍이 나와 함께 달구경을 하면서 장난삼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73쪽)라고 대답 합니다. 이미 상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암은 담헌 홍대용(1731~1783년)과 절친이었고,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등과도 가까이 지냈습니다. 당연히 당시 실학자들 간에는 지동설에 관한 개념도 상당한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8월 14일, 연암은 수필 필의 말 떼가 대문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깊은 시름을 토로합니다. 실상 내가 연암에 가서 살게 된 것은 일찍부터 목축에 뜻을 두었던 때문이다. 연암이 자리 잡은 곳은 첩첩산중에 양쪽이 펀펀한 골짜기인 데다가 수초가 좋아서 소, 말, 노새, 나귀 수백 마리를 치기에 넉넉했다. 내가 일찍부터 말했지마는 우리나라가 이토록 가난한 탓은 대체로 목축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까닭이다(78쪽)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목장이라고 가장 큰 곳은 다만 탐라 한 곳으로, 이곳에 있는 말들은 모두 원나라 세조가 방목한 종자이다. 사오백 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종자를 갈지 않고 보니 기가 막히게 우수한 종자들이 필경은 느림뱅이 꼬마 말로 변하고 말았으니, 이것이야 안 그럴 수 없는 필연의 결과이다(79쪽)라고 합니다. 조선의 후진적 목축업의 실태를 정확히 분석해 내는 탁월함도 놀랍지만, 그 원인을 생물 종의 다양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서 찾고 있는 점은 현대 유전학적인 면에서 보아도 결코 손색없는 통찰력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고립의 폐쇄성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열성인자가 말과 같은 동물에에만 적용되었겠는가? 인간과 인간이 만든 제도 또한 다를 바 없으니, 조선의 집권세력이 그러했고, 조선의 제도가 그러했습니다. 지금 4차 산업혁명기술로 연결되고 융합되어 새로운 지능이 창조된다는 지구촌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우리는 어떠한가?

 

8월 19일, 연암은 청하에 와서 묘당 한 곳을 들립니다. 그곳에는 강희 황제가 '좌성우불'이라고 쓴 금자 현판을 살펴봅니다. 좌성이란 것은 관운장인데 좌우 쪽 주련에는 그의 도덕이며 학문을 냅다 적어 놓았습니다(122쪽). 연암은 명나라 초기부터 시작된 관우 숭배의 그릇된 답습을 꼬집으며 학문에 관해 한마디 합니다. 대체 학문이란 것은 신중히 생각하고 사물을 밝게 분별하고 자세히 묻고 넓게 안다는 것이다. 덕성만 가지고 함부로 추어올릴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묻고' '배움'과 연결시킨 것이다(123쪽)라고 합니다. 학문의 본질은 덕과 의와 같은 도덕성을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사실)을 탐구하는 것이라는 함의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 임금 같은 이가 '착한 말을 하는 자에게는 절을 하고 촌음을 아꼈던 것'과 안자의 '허물을 반복하지 않으며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 행위' 쯤으로는 아직도 그 심성이 완전하다고 평할 수 없을 터인 바, 이는 그들이 학문하는 극치에서 볼 때 아직도 객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객기를 없애는 데는 반드시 자기를 이기고 옳은 심성에 돌아와야 할 것이다. 자기란 개개인의 사욕이다. 마음을 바로잡는데 있어서 만약 조그마한 사욕이라도 비치게 될 때는 성인으로서는 이것을 도적이나 원수를 대한 것처럼 아주 뽑아 없애고야 만다(123쪽)고 합니다. 연암의 학문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소위 인격적인 척, 지식인인 척 하는 자들이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결론을 내놓고, 마치 그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온갖 궤변을 늘어놓거나, 지지자가 없거나 비판적 기류가 보이면 그 일에 관해서는 침묵하면서 아무 관련이 없는 말을 꺼내면서 점잖을 떠는 지금 우리 사회의 이중적 언술은 결코 학문하는 자세가 아닐 듯합니다. 뽑아버려야 할 적폐의 언술이기에.

 

8월 20일, 연암은 덕승문이라는 곳에 와서 조선인의 음주 습성에 관해서도 한마디 던진다. 조선 사람들이 술 먹는 법이란 세상에도 지독하다고 할 수 있으니 소위 술집이란 보잘것없어 길가에 소각문을 내고 새끼발을 늘이고 쳇바퀴로 등을 만들어 단 곳이 술집이다. 시인들이 쓰는 푸른 깃발이란 것도 실상이 아니요, 아직껏 소위 '한 폭 깃대가 지붕 머리에 솟아오른 적'이 없다. 그러나 술 먹는 분량은 호들갑스러워 반드시 큰 중발로 이마를 찡그려 가면서 기울인다. 이것은 붓는 것이지 마시는 것이 아니요, 배를 불리자는 것이지 재미를 보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차례 마시면 반드시 취하고 취한즉 바로 주정이 나오고 주정을 하면 싸움이 되어 술집의 옹기와 질그릇은 죄다 두드려 부순다. 소위 풍류다운 점잖은 모꼬지란 어떤 것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런 것을 배불리 못 먹었다고 비웃는다(130쪽)고 합니다. 18세기 후반 당시 조선의 술집과 음주 습성의 실태를 볼 수 있는 기록이라 할 것입니다. 음주가 삶의 위안이나 풍류, 인간관계의 원만한 윤활유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음주 문화는 개인과 사회의 내면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조선 사회는 매우 팍팍해 보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음주 문화는 18세기 당시보다 더 나아졌을까?

 

<열하일기>는 당시 실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조도 읽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 책은 곧 1783년 이래 100년 동안 금서가 됩니다. 이유는 문체가 순정치 못하고, 중국의 고문을 따르지 않았으며, 오랑캐의 연호를 쓴 책이라는 비판이지만, 속내는 새로운 급진 사상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집권 세력은 새롭고 실용적인 사상을 수용할 만큼 개방적이거나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밀물에 두려움과 위기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형이상학적인 공론에 빠져나오지 못했고, 오히려 그것을 지키려는 수구적 기형을 감싸 안고 망국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18세기 조선은 시대정신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인재들이 넘치는 시대였지만 그들의 이상은 집권 권력의 장벽에 막혀 현실에서 구현되어 발전하지 못하고, 후대의 교훈으로만 남았을 뿐입니다. 이것이 <열하일기>를 일독하면서 감동과 아쉬움이 동시에 교차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 기술 문명으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질주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조류가 개인과 국가의 명운을 결정한다고도 합니다. 이 또한 240여 년 전에 연암이 <열하일기>에 기록하여 전하는 오늘의 숙제는 아닐는지.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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