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9-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49회>-챕터16<토복령과 남태령 산적들 > 제1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19/12/07 [17:01]
HOME > > 김명희 [소설 불멸의 꽃]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9-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49회>-챕터16<토복령과 남태령 산적들 > 제1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19/12/07 [17: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9-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49회

챕터16<토복령과 남태령 산적들 > 제1화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챕터16간지     © 김명희(시인 .소설가)

 

 

 

영감은 뒤란을 정리한 후, 홀로 서성였다. 장작 위에 걸터앉아 두 손만 연거푸 비벼댔다. 그는 안절부절 못했다.49회->이것저것 아무리 생각을 떠 올려보아도 머릿속은 하얀 백짓장 같았다. 밤만 무심하게 깊어갔다. 피로감이 밀려왔다. 황해도 해주에서 돌아온 후 그는 잠시도 쉬지 못한 상태였다. 온몸이 젖은 솜처럼 까라졌다. 용광로 속 차갑게 식은 회색빛 잿더미를 나무긁개로 긁어냈다. 먼지처럼 풀썩이며 희뿌연 재가루가 쓸려나왔다. 잿더미를 바라보던 영감은 문득 그것들이 괴물처럼 끔찍했다. 영감의 마음도 희부옇게 흩어져 허공에 어지럽게 떠다녔다. 어쩌면 앞으로 영영 용광로를 사용할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 아니. 다시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뒤란의 환기구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는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작업장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거처실 의자가 구만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땅으로 푹, 꺼질 듯한 몸을 이끌고 작은 책꽂이를 지나 터덜터덜 낡은 의자로 다가갔다. 팔을 뻗으며 기어들듯 낡은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는 눈을 감다, 다시 떴다. 방금 지나온 뒤쪽으로 뭔가가 환하게 스친 듯했다. 분명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던 것 같았다. 영감은 순간 몸을 일으켜 세웠다. 뒤로 돌아서 급히 어딘가로 걸어갔다.

 

‘아, 그래. 혹시……. 혹시 몰라, 있을지도 모른다…….’

 

서너 발자국 걸어간 그가 책꽂이 앞에 멈췄다. 그의 손이 책꽂이를 더듬기 시작했다. 책꽂이를 훑던 영감의 손가락이 어딘가에서 단호하게 멈췄다. 여러 권의 낡은 책을 밀치고 영감의 투박한 손이 꺼내 든 서책.

 

‘금속활자주조실험서(金屬活字鑄造實驗書)!’

 

영감은 급히 그 책을 들고 의자로 와 앉았다. 그의 눈은 이미 책장을 넘기며 번뜩였다. 그 눈빛은 방금 전 피로에 찌든 영감의 눈이 아니었다. 며칠 굶은 짐승이 생사를 걸고 먹이를 사냥하듯 날카롭게 빛났다. 영감은 두꺼운 책을 앞뒤로 수없이 반복하며 무언가를 찾아 글자를 한자 한자 훑어 내려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것은 없었다.

 

‘허긴……. 이건 활자주조비법서이지. 치료서가 아니질 않은가……. 내가 당치도 않은 기대를 다하고 있구나…….’

 

영감은 책을 교탁 위에 던져두었다. 갑자기 아까보다 더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견딜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여력도 남아있지 않은 영감은 의자에 몸을 묻고 이내 눈을 감았다.

 

 

 

< 16. 토복령과 남태령 산적들 >

 

1

 

얼마나 눈을 부쳤을까. 어디선가 새벽닭이 첫 홰를 쳤다. 그 소리에 눈을 뜬 그는 의자에 파묻힌 채 출입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명이 비춰 밖은 푸르스름했다. 해는 아직 뜨기 전이었다. 영감은 새벽 한기가 몰려와 몸이 떨렸다. 화로를 몸 가까이 끌어와 나무 조각 몇 개를 더 넣었다. 까칠한 손을 비비며 불을 쬐다가 침울한 얼굴로 작업장 위를 둘러보았다. 오늘 혹시 일을 마치기로 약속해 놓고 잊은 것은 없는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았다. 한식경쯤 후 영감은 주변이 소란스러워 눈을 떴다. 벌써 저자거리로 몰려나온 사람들 소리가 장터를 메우고 있었다.

 

밖은 이미 해가 완전히 떠올라 세상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영감은 떨리는 몸을 움츠리며 화로를 껴안고 어제 읽다 내던진 서책을 다시 펼쳤다. 영감은 껍껍해진 눈을 치켜뜨고 첫 장부터 다시 세세히 훑었다. 혹시 돌아가신 조부님이나 선친이 어딘가 구석진 곳에 뭔가 적어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미련이 영감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여백에 적힌 사소한 내용까지 샅샅이 훑어 내려갔다.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그가 애타게 찾는 내용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영감은 아까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서책을 교탁위로 던져버렸다. 던져진 책이 반쪽으로 나뉘며 교탁위로 넓적하게 떨어졌다. 영감은 의자에서 일어나 작업대로 다가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이 잡히지 않아 계속 서성였다. 영감은 작업실 모든 환기구를 활짝 열었다. 앞뒤에서 맞바람이 불어와 작업장은 일순간 모든 것들이 펄럭이며 날아다녔다.

 

아침 겨울바람이 모질도록 매웠다. 더 추운 한파가 다가올 모양이었다. 작업대 위에 애벌 인쇄했던 종잇장들이 펄럭였다. 영감은 그것들이 날리지 않도록 공구로 눌러놓고 의자로 가서 앉아 멀리 들판을 내다보았다. 송곳처럼 찌르며 들어오는 바람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맑고 투명한 겨울햇살이 눈부셨다. 열린 환기구로 강렬한 햇살이 사선을 그으며 들어왔다. 영감은 밝고 환한 햇살에 눈살을 찌푸렸다. 주자소 안으로 화살처럼 날아든 햇살이 불빛처럼 교탁 위 한곳을 비추었다. 강한 햇살에 교탁 표면의 긁히고 상한 자국까지 훤히 드러났다. 영감은 강렬한 빛에 사로잡혀 멍하니 교탁 위를 응시했다. 던져놨던 책장이 바람에 너풀거렸다. 영감의 시선이 책으로 옮겨갔다. 겨울바람이 한 장 두 장 서책을 넘겼다. 한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와 단번에 여러 장이 휘리릭, 넘겨지더니 순식간에 마지막 겉장만 남았다. 영감은 겉장안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책의 맨 뒷장이 겨울바람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영감은 의미 없는 상념에 휩싸이다 그 서책 겉장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엇! 저게 뭐지? 그동안 못 본 것인데…….’

 

영감은 얼른 다가가 그것을 살펴보았다. 아주 작은 글씨들이었다. 겉장 안쪽에 깨알처럼 세필로 기록한 잔글씨들이 빼곡히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멀리서 보면 글자가 아닌 흐릿한 얼룩처럼 보일만큼 글자가 작고 세밀했다. 영감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강한 연독에 중독되었을 때 해독제는, 감초 아기장대 토복령. 그리고 명감나무의 잎과 열매가 특효……? 토복령이란, 명감나무의 뿌리를 말한다고……? 이 뿌리는 중금속 중독에 가장 강한 해독작용을 하는데, 급성 중독에 특히 효험이 있다. 그중에서도 경상도 전라도 바닷가 야산자락에서 나는 것을 가장 우수한 약재로 쳐 준다……?’

 

영감은 그 글을 읽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이거다! 토복령이라 했지? 바로 이거야! 찾았다. 드디어 내가 필요한 것을 찾았구나! 부처님이 도우신 게야……. 어젯밤 서너 번씩이나 서책을 뒤져보아도 못 보았거늘……. 아침에, 바람이 나를 찾아와 치료법을 찾아주다니! 기이한 노릇이로다. 필시 부처님 뜻일 게야!”

 

영감은 그 즉시 일어나 주자소 밖으로 나갔다. 토복령을 찾아 약재상으로 달려갔다.

 

“에이, 없습니다요. 한길씩 눈이 빠지는 이 엄동설한에 어디서 그 약재를 구합니까요? 그나마 지난 가을까지 저장해 둔 재고도 다 팔리고 없습죠. 그리고 그 약재는 어쩌다가 아주 간혹 활판 인쇄소 사람들이나 찾지, 그 외엔 찾는 사람두 없는 걸입쇼……. 그래서 저희는 많이 비축해 두지도 않습니다요. 다른 데 한번 가 보십쇼.”

 

영감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또 다른 약재상을 가보아도 사정은 비슷했다. 영감은 두 번째 찾아간 약재상에서 토복령은 구경도 못하고 그나마 붉은 씨앗을 한줌 구한 게 전부였다. 뿌리와 잎이 효과가 좋다는데 구할 길이 없었다. 몇 곳을 더 가보았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

 

영감은 실망한 채 주자소로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이 한겨울에 그것들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영감은 의자에 앉아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이내 다시 일어나 주자소를 나갔다. 영감의 발걸음은 묘덕아씨 사저로 향하고 있었다.

 

‘벌써 사나흘이 더 흘렀는데 아씨 병세는 지금 어찌되었을까……. 날짜는 자꾸 가는데 약재구할 길은 없고 큰일이구나. 제발 아씨께서 아무 일 없어야 할 터인데…… 흐으음…….’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걷는 영감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뉘 시온지요?”

 

“금비야, 내다. 주자소 활자장이니라.”

 

“어서 오셔요.”

 

“그래. 아씨 병세는 좀 어떠시냐? 차도가 있으시냐……?” 

 

 

 

 

-> 다음 주 토요일(12/ 14) 밤, 50회에서 계속......

 

 


광고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9/12/07 [17:01]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김명희 관련기사목록
더보기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