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32-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32회>-챕터9 <거칠고 뜨겁고 무거운 길>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기사입력 2019/08/10 [17: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32-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32회>-챕터9 <거칠고 뜨겁고 무거운 길>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 입력 : 2019/08/10 [17:01]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32-

▲ 제2회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멸의 꽃] 표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32회>

챕터9 <거칠고 뜨겁고 무거운 길> 제2화

 

▲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챕터9 간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나리, 접니다.”

 

“부인 어서 들어오시오.”

 

“나리, 청이 있어 잠시 들었사옵니다.”

 

“청이라……? 그게 뭔지 어서 말해보시오.”

 

“나리. 사실 저는 그동안 부처님 말씀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접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게 하고 싶어 주자에 대해 조금씩 알아보던 차였사옵니다. 백운스님이 설파하시는 부처님 말씀을 듣길 원하는 이가 많은데 목활자본으로는 충당이 어려워 부족한 힘이나마 다른 길을 찾아보고자 금속활자 개발을 시도하려하옵니다. 금속활자 주자를 성공하면 이 땅에 마음이 주린 이들에게 부처님의 새로운 위안과 희망의 뜻을 나눌 수 있을 듯해서 말이옵니다. 주자를 만들려면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하옵니다. 다른 것들은 저와 활자장 영감이 구하면 될 일이지만 청동은 아무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요. 나리가 조정 군기감에 연을 넣어 필요한 만큼만 구해주실 수 있으실지 해서 말씀드리옵니다.”

 

“아, 그랬구려. 그래서 그동안 부인이 자주 집을 비웠던 게로군요. 부인 잘 알았소. 거 참 기특한 생각을 했구려. 그건 나라의 녹을 먹는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라 나조차 부인께 부끄럽소이다. 부인 아주 좋은 생각이오. 나도 돕겠소.”

 

“그러하시면 우선 필요한 청동 다섯 돈 중만 구해 주소서. 그러면 큰 힘이 될 듯하옵니다.”

 

“알았소. 요즘 나라안팎이 소란스러워 군기도감에서 무기를 충당하느라 청동 구하기가 쉽지는 않소만 다른 곳에 허비하는 것도 아니니, 내 힘을 써 구해주리다.”

 

“나리, 고맙사옵니다. 저는 앞으로 금속활자 주자개발에 전념할까 하옵니다. 나리께서 허락하여 주시길 부탁드리옵니다.”

 

“그야 물론이오. 다른 이웃나라들도 그 일로 앞 다투어 연구하고 모든 심혈을 기울인다 들었소. 우리 고려도 그에 뒤질 수야 없지 않겠소. 사실 이는 조정에서 그 분야 박사들이 나서줘야 하건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오. 허나 나라를 걱정하고 부처님 광명과 선업을 기리는 일에 어찌 빈부귀천과 남녀노소가 따로 있겠소. 그런 장한 생각을 한 부인이 참으로 기특하고 자랑스럽구려. 앞으로는 내가 힘 되는 대로 적극 도울 터이니 언제든 내게 부탁하시오.”

 

묘덕은 자상한 남편덕분에 청동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그녀는 그길로 도토를 구하기 위해 서해안 청자도요지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찾아갔다. 최영감이 적어 준 양주속현 부곡촌과 서산속현에 있는 오사촌을 찾아갔다. 그곳 주변은 촌마다 청자를 만드는 가마들이 즐비했다. 길 어귀마다 온통 청자사기조각들이 햇살처럼 반짝였다. 사금파리들은 한낮의 태양을 잘게 부수며 눈 속을 파고들었다. 마을을 찾아가는 그녀의 발밑에서 부서지는 사기조각 소리가 맑고 청량했다. 활자장 최영감이 말한 가마를 찾아가 도공이 챙겨준 진흙 표본을 받아서 그녀가 속히 개경으로 돌아왔다. 묘덕은 각 지역의 도토 표본들과 남편 정안군이 구해 준 청동 다섯 돈 중을 활자장 최영감에게 전달했다.

 

“영감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사저로 연통을 주십시오.”

 

“아씨, 고맙소이다. 지리산 함양속현과 남원속현에 요청한 밀랍이 올라오면 곧 주자를 진행해 보겠소, 그 때 다시 연락을 드리리다.”

 

“네. 알겠습니다. 금속활자 주자에 성공하면 그것들로 꼭 만들어야 할 중요한 서책이 있습니다. 이는 제 생이 다 하기 전에 반드시 이뤄야 할 대업입니다. 영감님께서 꼭 도와주십시오.”

 

2

 

묘덕은 틈틈이 명산대천을 돌며 암자를 찾아다녔다. 다른 암자에서는 주조법이 지금 어떤 형태로 시도되고 있는지, 얼마나 성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긴 여정에 발이 부르트고 산바람에 입술이 헤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찾아가는 절마다 아낌없이 자신의 곳간을 열어 시주를 했고 오래되어 낡고 허름한 절은 있는 힘껏 재건을 도왔다. 많은 사찰들을 돌아보니, 최영감의 말이 맞았다. 활자장 말대로 그들은 주조를 실험하고는 있지만 완전한 기술터득은 못하고 실패만 거듭하고 있었다. 금속활자 제조과정에서 매번 실수가 발생해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갖은 어려움들을 겪고 있었다. 그들이 애써 시도한 도토가 모두 갈라져 쇳물이 다 흘러버리기도 했고 용광로의 적정온도 유지가 어려워 쇳물이 거푸집 속까지 채워지기도 전에 쇳조각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난관에 부딪치고 있었다. 모든 주자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값비싸고 번거로운 목활자에 의존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묘덕은 찾아가는 곳마다 그들을 위로하고 불상을 세우고 절을 새로 짓는 일에 앞장섰다. 그녀는 하루빨리 금속활자 주조법을 완벽하게 성공해서 불경과 큰 스님들의 어록을 널리 전파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정안군은 사랑하는 여인 묘덕과 정실부인 수춘옹주와 세상 곳곳을 여행하며 부처님 전에 시주하는 것이 하나의 큰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저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춘옹주가 지병이 들어 몸 져 눕고 말았다.

 

“열아, 으흐흑! 열아, 내 가여운 아들아…… 너는 지금 그 어디에 있는 게냐…….”

 

그녀는 병석에 누워있던 내내 오래전 집을 나간 아들 열이만 애타게 찾아댔다.

 

“흐흑……! 이 에미가 이렇게 다 죽어 가는데……. 아들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이더냐……. 이 에미가 살아생전 네 모습 한번 보지 못하고 이대로 이승을 하직해야 하는 것이냐. 열아……, 이 못난 에미를 용서해다오. 열아……, 내가 죽기 전에 제발 한번만 꿈속에서라도 얼굴 좀 보여다오. 제발, 한번만 한번만……. 흐흑……!”

 

병석에 누워 한동안 시름시름 앓다 수춘옹주는 그만 한 맺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을 향한 그리움에 눈도 못 감고, 저세상으로 쓸쓸히 떠나갔다. 묘덕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죄인 양 여러 날 괴로웠다. 정안군도 수춘옹주가 갑작스레 죽고 나자 그 충격으로 오랫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는 누구와도 대면하려 하지 않았다. 묘덕과 정안군은 그녀의 영가를 백운스님의 도량이었던 선원사에 극진히 모셨다. 그녀는 단 하나뿐인 자신의 혈육조차 보지 못하고 한 맺힌 채 죽어간 수춘옹주의 극락왕생을 눈물로 참회하며 오래 오래 빌었다. 백중날 묘덕과 정안군은 선원사를 또 다시 찾았다. 수춘옹주의 영가천도식을 위해서였다. 그들 부부는 법당에 간절히 엎드려 온 정성을 다해 오래 기도 했다. 법당 문 밖에서 삿갓을 쓴 한 낯선 사내가 법당 안에서 기도하는 묘덕과 정안군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서있었다. 묘덕이 일어서자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그가 부처님을 향해 서둘러 합장하더니 다급히 어딘가로 자취를 감췄다. 기도를 마친 묘덕과 정안군 부부는, 삿갓 쓴 사내가 방금 지나가며 남긴 발자국을 밟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채 선원사를 나와 사저로 향했다.

 

3

 

묘덕이 다 저녁때 사저로 돌아와 보니 활자장 최영감이 보낸 사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급히 주자소로 와달라는 전갈이었다. 묘덕은 다음날 날이 밝자 곧바로 주자소로 달려갔다. 그녀가 입구를 막 들어서려던 순간, 입구 저쪽에 은밀히 몸을 숨긴 낯선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녀 시야에 또 다시 들어왔다. 삿갓을 쓴 두 사내가 주자소 안을 또 염탐했다. 그들은 앞전에 주자소를 염탐하다 묘덕에게 들켰던 바로 그자들이었다.

 

“이보시오! 당신들! 대체 뭐하는.”

 

‘휘리릭! 겅중! 후다닥……!’

 

그들은 순식간에 주자소 담장을 넘었다. 엄청나게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묘덕에게 들킨 사내 둘은 뒷골목으로 삽시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상하다……. 저들은 대체 누굴까? 과연 누구관대……. 활자장 최영감과 어떤 관계이기에 이곳을 서성이다 매번 급히 도망치는 것일까……?’

 

 

 

-> 다음 주 토요일(8/17) 밤, 33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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