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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30-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30회>-챕터8 <아픔보다 더 붉은> 제2화
 
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19/07/27 [17:30]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30-

 

▲ 제2회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멸의 꽃] 표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제30회>

 

챕터8 <아픔보다 더 붉은> 제2화

 

▲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챕터8 표지     ©김명희(시인 .소설가)

 

 

 

“내게 서찰을……?

 

금비는 품에 꼭 안고 왔던 서찰을 꺼내 백운에게 건넸다. 치자 빛 봉투에 담긴 서찰이었다. 흥덕사 선방에서 백운과 잠시 담소를 나눈 금비는 이내 일어났다.

 

“금비야. 먼 길 오느라 고되었을 터인데 왜 이리 급하게 가려하느냐? 오늘은 예서 좀 쉬고 내일 떠나거라.”

 

“스님, 아닙니다요. 저는 어서 또 돌아 가얍죠.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자고 며칠 더 가면 됩니다요. 그럼. 스님 이만 쇤네는 돌아가겠습니다요.”

 

금비가 개경으로 서둘러 길을 떠났다. 백운스님은 아쉬움에 산문입구까지 금비를 마중하고 돌아왔다. 백운스님은 방으로 들어가 묘덕이 보낸 서찰을 어루만졌다. 봉투를 열자, 긴 편지와 함께 붉은 도투락댕기가 스님의 무릎 위로 툭, 떨어졌다. 백운스님은 놀랐다. 붉은 댕기를 보니 낯이 익은 물건이었다. 그 댕기는 오래전 선원사에서 백운스님이 선물했던 댕기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댕기를 얼굴에 가져다 댔다. 붉은 댕기에서 묘덕의 향기가 나는 듯 했다. 둥글게 말린 댕기 속에 뭔가가 하나 더 들어있었다. 조심스레 꺼내 보니 작은 은장도였다. 그는 은장도를 보자 몹시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런 정표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편지를 펼쳐들었다.

 

‘아, 어떻게 은장도를 다 내게 보냈을꼬…….’

 

백운스님이 편지를 펼쳐들자 손끝이 떨리고 가슴이 먼저 저려왔다. 묘덕이 보낸 편지를 읽으려다, 백운은 자신이 없었다. 그는 잠시 밖으로 나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금비는 지금쯤 얼마나 갔을까. 먼 길을 돌아가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그 먼 길을 마다않고 한걸음에…….’

 

스님은 마음이 스산해 뒷짐을 지고 한참을 서성였다. 먼데서 산새 우는 소리가 촉촉하게 들려왔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처마 끝 풍경이 허공 한켠에서 헤엄을 쳤다. 백운스님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묘덕의 편지를 펼쳐들었다.

 

3

 

묘덕의 봉숭아꽃잎처럼 붉은 그리움이 깨알 같은 글자가 되어 한잎 두잎 흩날렸다.

 

 

 

‘묘덕이옵니다.

 

 

 

오랜 시간……, 당신이라는 뜨락을 서성였습니다.

 

차마 견딜 수 없는 사무침에

 

당신을 찾아 무작정 먼 길을 떠나 오랫동안 길 위에 있었습니다.

 

 

 

세상의 바람은 동에서 서로 향해 불고, 남에서 북으로 향해 불거늘

 

왜 하필 저는, 단 한사람을 향한 염원만 가득하여

 

이승 어디에 서 있어도 언제나 임을 향해 불어가는 그리움이 되었을까요.

 

피안의 언덕 이쪽에 서서, 찾아도 찾아도 보이지 않는 그대라는 저 언덕 때문에

 

가깝고도 먼 이쪽에 서서, 불러도 불러도 가 닿을 수 없는 그대라는 멀고 먼 들판에

 

무작정 먼 길을 그렇게 떠났었습니다.

 

 

 

바람결에라도 행여 소중한 분의 소식이 들려올까하여

 

눈보라 차디차게 휘몰아치는 창백한 들판에 홀로 오래오래 서있어도 보았습니다.

 

이 싸늘하고 모진 겨울바람 봄꽃향기조차 모두 다 불 타 소멸되고 나면

 

그 길 끝 어딘가에서 임이 나를 향해 웃으실까요.

 

그 따스했던 손으로 저의 시린 손 고요히 잡아주실까요.

 

 

 

우리가, 한 길에서 만날 수 없음을 저의 마음은 이미 다 알면서도

 

제가 쓸어안게 될 그 아픔보다 더 붉은 그대라는 그리움 때문에,

 

여기, 세상에 꽃이 피면 그 어느 모퉁이쯤에 그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여기, 세상에 잎이 지고 나면 홀연히 높아진 달빛 아래 그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바로 여기, 세상에 비 내리고 눈 내리는 뒤안길마다 저는 기다림의 등을 밝히고

 

오랜 시간 그렇게 길 위에서 서성였습니다.

 

 

 

임이시여,

 

이번 생에서는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제 마음은 너무나 잘 알면서도

 

제가 감싸 안게 될 그 아픔보다 더 붉은 그대라는 그리움 때문에

 

이 밤, 소리 없이 눈물 떨구며 당신 앞에 이 글을 씁니다.

 

 

 

임이시여,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인연의 이 끝과 저 끝에서 만나

 

단 한번도 서로의 안쪽을 환하게 들렀다 갈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왜, 제가 한발 다가서면 저만치 제게서 너무 멀리 있는 당신일까요.

 

우리는 왜, 당신이 한발 제게로 다가오시면 또 홀연히 그곳에서 너무 멀리 있는 저일까요.

 

 

 

임이시여, 지금 온 들판이 당신을 향해 애끓는 제 심장처럼 붉고 뜨겁습니다.

 

저는 이제, 제 속에서 몰아치는 뜨거운 용암 같은 이 사랑을 하나하나 떠나보내려 합니다.

 

저 혼자만의 것으로 모두 차지할 수 없는 너무나도 높고 깊고 크나큰 당신이기에

 

그런 당신 앞날에 예비하신 부처님의 숭고하고 높은 선업이 예정되어 있음을 저도 알기에

 

임이시여, 당신이 가시는 길에 행여 거친 돌부리가 될 저의 사랑이라면

 

차라리, 차라리, 이 모두를 뜨거운 불속에 넣고 오래 기도하듯 쇳물로 녹여내어

 

오랜 비바람에도 닳거나 지워지지 않을 견고한 부처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려합니다.

 

그리하여, 수백 년을 이어질 당신이라는 자비로운 이름 속에 낮은 마음으로 스미어

 

억겁의 영원으로 읽혀지고 또 읽혀져도 용광로처럼 꺼지지 않을 불같은 말씀

 

그 뜨거운 열반의 책 한권이 되려합니다.

 

 

 

무심천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우리 님 멀리멀리 비추어 주십시오.

 

임이여 거기 그곳에 아직 계시옵니까? 아, 그대여…….

 

눈물진 곳일랑 딛지 마시옵고 어느 곳에서나 마른 데로만 가옵소서.

 

아, 내 임이 가는 곳에 날이 저물면 그 마음 또한 저물까 두렵습니다.’

 

 

 

4

 

차마, 함부로 사랑하기조차도 아까웠던 여인. 그토록 마음에 밟혔던 여인의 편지를 품에 안고 백운스님은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그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스님은 그날 밤 흥덕사 법당 부처님 전에 엎드려 그녀의 행복을 간절히 빌었다. 그의 마음속에 거친 풍랑이 일었다. 온 몸을 출렁이며 홀로 흐느끼던 그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흥덕사 절 앞마당으로 미친 듯 달려 나갔다. 어둠 속 달빛이 흥덕사 앞마당에 서 있는 백운스님의 등을 어루만졌다. 스님은 슬픔이 복받쳤다. 스님은 속세의 허울을 벗듯, 몸에 입고 있던 장삼가사자락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한 올 한 올 이승에서의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벗어버렸다. 가능한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백운스님은 뜨거운 흐느낌을 삼키며 달빛 아래 웃옷을 벗어버리고 탑처럼 서 있었다. 고요한 달빛아래 스님의 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중후한 어깨와 육중하고 단단한 구릿빛 가슴을 달빛이 어루만졌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에 비장한 법고 소리가 흥덕사에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탁!’

 

‘탁! 타닥……! 툭!’

 

‘탁! 타다닥! 뚝! 딱……!’

 

그가 천천히 북을 깨우더니 단단한 번뇌를 깨뜨리고 허물었다. 백운을 대신해 법고가 밤새 울었다. 법고를 두드리는 그의 마음에 부처님 말씀이 서기(瑞氣)처럼 피어났다.

 

‘만일 사람의 마음이 억지로 이름 짓지 아니 하면, 좋고 나쁨이 무엇을 쫓아 일어나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만 잊으려 하면서 마음은 잊으려 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잊으려 하면서 경계를 잊으려 하지 않는구나. 마음을 잊으면 경계가 저절로 고요해지고 경계가 고요해지면 마음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나니, 이것이 이른바 無心(무심)의 眞宗(진종)이니라’

 

‘둥! 두둥, 탁! 타다닥! 뚝! 딱……!’

 

‘둥두둥! 두둥둥! 뚝딱! 타다닥! 뚝딱! 타다닥! 둥둥둥! 두둥둥둥! 타다닥! 타다닥!’

 

흥덕사의 커다란 법고가 밤새 둥,둥,둥, 먼데서 천둥치듯 울려 퍼졌다. 그의 먹먹한 마음을 모두 헤아렸는지 흥덕사는 고요한 잠에서 깨지 않았다. 백운스님은 아침 여명이 밝아오도록 육중하고 캄캄한 어둠 같은 거대한 북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둥! 두둥, 탁! 타다닥! 뚝! 딱……!’

 

‘두둥둥 두두둥둥! 뚝! 딱! 타다닥! 뚝! 딱! 타다닥! 둥두둥! 두둥둥! 타다닥! 타다닥!’

 

스님의 등줄기에서 계곡처럼 땀이 흘러내렸다. 땀과 눈물이 얼룩진 백운스님의 모습에 달빛이 어려 신비한 은빛으로 빛났다. 스님의 단단한 등 근육이 달빛 아래 승천하는 황용처럼 꿈틀거렸다.

 

‘둥! 두둥!, 탁! 타다닥! 뚝! 딱……!’

 

‘둥둥둥! 둥둥! 뚝! 딱! 타다닥! 뚝! 딱! 타다닥! 둥둥둥! 둥둥둥! 타다닥! 타다닥!’

 

북채를 강하게 잡았던 백운의 손아귀에 핏물이 베어났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검푸른 하늘이 맞닿은 경계선 틈새로 푸르스름한 빛이 번지더니 어느 새 새벽닭이 울었다. 땀에 젖어 흥건한 백운스님의 우람하고 넒은 등이 여명을 받아 빛이 났다. 백운스님은 천천히 웃옷을 다시 입고 선방으로 가 상자 하나를 꺼냈다. 비단으로 싼 작은 상자에는 스님이 오래전부터 간직해왔던 물건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오래전 묘덕이 어렸을 때 생모가 떨구고 간 노리개였다. 그녀가 정안군 후실로 떠나던 날 건네주려 백운이 준비했던 것이었다. 끝내 그때 돌려주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돌려줘야만 할 것 같았다. 백운은 편지 하나를 썼다.

 

 

‘소중한 묘덕.'

 

 

 

-> 다음 주 토요일(8/3) 밤, 31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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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27 [17:30]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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