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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좋아 만화와 함께 한 삶 만화가 이해경
 
김철우 기자 기사입력  2019/03/14 [01:17]

[강원경제신문] 김철우 기자 = 그는 이미 나이 세 살에 소아마비로 하반신 지체 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열세 살이 되어 만화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만화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지체 장애를 갖고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사는 만화가 이해경 선생님을 만나 그의 만화 이야기를 들었다.

 

▲ 만화가 이해경     © 김철우 기자


이해경이란 사람을 소개해 주세요

 

이해경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화를 시작한 후로 척박한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힘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짧게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겠죠.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1951년 부산의 초량 출신입니다. 세 살 경 소아마비로 하반신 지체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태어날 당시는 6·25 사변 중이었고,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가 어려워 모든 국민이 힘들게 살던 시대였습니다. 동생들이 네 명에다 철도원이었던 아버지가 병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까지 해서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해 제도권 학벌은 3일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엎드려서 글을 독학하여

한글을 깨친 후로는 만화를 빌려 읽었습니다. 만화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세상을 배웠습니다.

열세 살이 되자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화는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창작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대리만족이 가능했습니다. 내가 만드는 모든 창작물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화는 내 꿈이 되었습니다.

그 후 혼자 만화 스토리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19세 때 그 당시 아동 만화가 협회(지금의 만협) 회장이던 김정파 선생님께 스카우트되었습니다김정파 문하에서 9개월간 스토리 수업을 받은 후 독립하였습니다. 동생과 함께 자취하면서 자작한 작품 초상화의 비밀로 한국일보 신인 만화가로 등단했습니다.

 

 

▲ 2005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     © 김철우 기자

 

요즘 주로 그리는 만화는 어떤 것인지

 

지금은 창작의 자유가 있지만, 7, 80년대는 장애인이 주인공인 작품은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부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창작자 스스로 검열을 하곤 했습니다. 사회가 만화를 폄하하고 심지어는 만화를 불량으로 몰아서 정부에 고발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교통사고와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인해 멀쩡한 젊은이들이 졸지에 장애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후천적 사고로 척수 장애인이 된 젊은이들을 국립 재활 병원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만난 친구들의 사연들을 모니터링해서 겨드랑이가 가렵다.’는 장애인들이 주인공인 만화를 창작했습니다. 그 만화로 2005오늘의 우리 만화 상을 수상했고 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우수 만화 지원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가 되면서 만화 생태계가 달라졌습니다. PC로 작업하고 PC나 모바일로 독자를 만나는 웹툰이 탄생했습니다. 종이가 아닌 웹상에서 만화를 보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현재의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현장성이 부족하여 청소년 만화는 창작하지 않고, 어른들이 볼 수 있는 만화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곧 출판될 작품은 커피 로맨스란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 커피 카페를 하고 싶어 집에서 가까운 국립 수목원 근처에 무작정 커피 카페를 열었다가 3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3년 동안 온갖 사람들의 사건 사고도 목격했고, 가게로 찾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경청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사연들을 만화로 구성했습니다.

 

여섯 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진 커피 로맨스는 서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     © 김철우 기자

 

특별히 커피가 소재가 된 이유가 있습니까

 

1990년대 들면서 주간 만화 잡지에 작품을 내고, 이름을 이해경으로 바꿔 명지대 만화창작과 교수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다가 1997IMF 이후 잡지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작품 활동이 뜸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늘 하고 싶었던 커피 카페를 국립 수목원 근처 카페촌에 잠들지 못하는 여자란 이름의 카페를 개업했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여자는 매주 만화 잡지에 옴니버스 연재 작이었고, 이해경의 살아온 이야기 자서전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밤에만 작업하는 관계로 잠들지 못하는 여자란 작가 자신이 자전적으로 소소하게 푼 내용인데 카페 간판으로 봐서는 술집인 줄 알고 남자 고객들이 그 카페에 가면 팔베개 해 줄 여자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고객이 들어와 보니 만화책과 만화가들의 그림과 클래식 음악이 있는 카페라 그 손님은 소문을 퍼트린 사람을 불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소문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2008년에 개업했다가 2010년에 카페 잠들지 못하는 여자를 폐업하고, 부천 만화 진흥원 사무실로 왔는데 여기 사무실에서도 카페처럼 차려놓고 가끔 맘 맞는 작가들과 함께 커피를 즐기고 있습니다. 커피는 1970년 후반부터 지금까지 제가 가장 즐기는 기호품입니다.

  

만화가를 꿈꾸는 장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최근에 장애인 웹툰 창작 활성화란 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는 만화가란 직업이 최적이라고들 합니다만, 그러나 전혀 그렇지않습니다. 청각 장애인이든 지체장애인이든 만화 작업에 장애는 지대한 걸림돌입니다. 접근은 쉬울지 몰라도 창작자로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매우 힘 드는 일입니다. 천재적 재능을 타고났다 해도 여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곳이 바로 만화계입니다.

 

내가 만화가가 되기로 작정한(13) 수십 년 전에는 장애인은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시절이었고 지금처럼 정보가 무한한 시절이 아니었기에 만화가로서 살아남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노력에 따라 좋은 조건의 환경이 되었으니 당시보다는 수월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창작은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만화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점씩 그리는 미술 작품과는 차원이 다른 장르가 만화입니다. 그래서 만화가를 꿈꾸는 장애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나는 만화작가가 반드시 되어야겠다. 만화가 좋아서 굶어도 연습에 몰두할 수 있다.’ 는 굳은 결심이 있다면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았기에 만화창작이 척박하다 못해 맨땅이었던 7, 80년대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누구처럼 국민 만화가도 아닙니다. 그냥 만화가 좋아서 만화만이 내 인생이어서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화와 결혼하여 아들도 한 명 얻게 되었습니다. (37세 만화가인 김성용 작가)

 

만화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은

 

사실 만화가를 꿈꾸는 장애인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위한 교육에 힘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살아온 인생이 소외되고 외롭고 힘든 사람들의 등불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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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4 [01:17]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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