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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직지소설문학상 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소설 연재 -4-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제4회> -챕터 2<파란>
 
김명희(시인 .소설가) 기사입력  2019/01/25 [20:13]

 

 

▲ 제2회 직지소설문학상대상수상작 [불멸의 꽃]     ©김명희(시인 .소설가)

 

 

고려역사장편소설 [불멸의 꽃] 소설 연재 <제4회> 

 

 

<챕터 2. 파란(波瀾) >

 

 

▲ 불멸의 꽃 챕터 2 <파란>     ©김명희(시인 .소설가)

 

 

 

 

“아니! 이럴 수가! 혹시 그, 그대는…….”

 

충숙왕은 자신의 눈이 의심스러웠다.

 

“그대는, 혹……. 덕비 홍씨가 아닌가? 덕비가 틀림없구려. 정녕 나를 못 알아보겠소?”

 

“…….”

 

그녀는 멀뚱멀뚱 충숙왕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바로 몇 해 전 충숙왕과 밀행을 나갔다가 물에 빠져 행방물명이 된 홍씨였다. 그녀가 지금껏 살아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산발한 채, 누더기 옷에서 땟국이 흐르는 그녀는 전혀 딴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냇물에 빠져 기억상실에 걸렸던 묘덕의 생모 자미는 충숙왕의 부인 덕비였다.

 

“여봐라. 뭣들 하느냐? 어서 마마를 궁으로 뫼시지 않고!”

 

“옙!”

 

덕비는 몇 년 만에 궁궐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그녀가 기억상실증과 실어증에 걸려 궁궐에서는 자미가 아이를 출산한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충숙왕은 그녀를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미는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충숙왕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충숙왕은 어의들을 모두 동원해 실어증과 기억상실에 걸린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덕비는 충숙왕과 동침해 셋째로 아들을 낳았다. 충숙왕의 사랑을 받으며 해가 갈수록 덕비 홍씨는 차차 다시 말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녔던 기억은 그 후로도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덕비는 우울증과 함께 이상한 악몽을 자주 꾸었다. 꿈속에서 자신이 어느 절에서 여자 아이를 낳고 산속을 헤매다 잠을 깨곤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반복되는 동안 홍씨는 기억을 조금씩 되찾게 되었다. 자기가 낳은 어린 딸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자라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갈수록 강하게 들었다. 덕비는 기억을 되짚으며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이 흘러도 딸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 2. 파란(波瀾) >

 

묘덕은 이제 혼자 걷고 뛰었다. 아이의 얼굴은 자랄수록 곱고 눈부셨다. 아이는 말을 배우고 성장해 갈수록 자신의 생모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백운스님은 그럴 때마다 먼 산에 잠시 기도하러 갔다며 곧 오실 것이라고 아이를 달랬다. 그러고는 칭얼대는 어린 묘덕을 품에 안아 재우곤 했다. 묘덕이 네 살 되던 해. 충숙왕은 오랜 왕위 찬탈 싸움에 시달렸고 국정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럴수록 민중들의 생고는 극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북방 야인과 왜구들의 침입마저 더욱 잦아져 고려사회는 불안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중요한 고서들이 불타고 약탈당했다. 서적들이 불타고 사라지자 주자소들은 밀려드는 간행물 요청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러나 목활자는 아무리 급해도 낱글자를 새겨 사용할 수 없었다.

 

목질의 특성상 낱글자로 만들면 쉽게 결이 생겼다. 나무 입자가 떨어져나가고 글자 윤곽이 파괴되어 여러 번 사용할 수 없었다. 몇 번만 사용하면 활자가 모두 깨져 다시 만들기 일쑤였다. 목활자는 이런 단점 때문에 한번에 긴 문장을 통 째로 각인하여 인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특징 때문에 책에 쓰인 모든 문장을 일일이 각각의 문단으로 만들어 매번 새로 활자를 조각해야만했다. 문장이 덩어리로 만들어지니 내용 또한 모두 달랐다. 힘겹게 글자를 판각해도 다른 책에는 다시 사용할 수 없는 맹점이 있었다. 책 한권을 만드는데 소비되는 나무 양도 많았고 그 때문에 비용도 엄청나게 들었다. 책마다 매번 다시 판각을 해야했기 때문에 판각용 황양목이 많이 소모되었고, 그것을 판각하는 시간도 무척 오래 걸렸다. 주자소들은 저마다 반 영구적이면서도 새롭고 편리한 활자주조 방법이 없을까 앞 다투어 고심했다. 어수선한 시국 속에서 조정은 원나라에 바칠 재물로 보내야 하는 공녀를 강제로 모집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조정 대신과 고려 병사와 원나라 병사들이 닥치는 대로 마을을 짓밟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어린 사내아이들이 비명을 삼키며 거세를 당한 후 환관이 되어 원나라로 보내졌다.

 

“이 망할눔의 세상! 아주, 애들까정 모조리 씨를 말릴 참인가벼! 쿠웩! 퉤! 이놈의 나라. 빨리 망하기나 혀라! 에잇! 비루먹을!”

 

“마하반야바라밀타심경관자제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조견오온개공도일체고액……. 탁! 탁! 타.다.다.다.닥! 시주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어떤 스님이 시주를 하러왔다.

 

“시주는 개뿔! 먹고 죽으려도 겉보리 한 톨도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 보슈! 당신들 눈에는 세상이 이지경인 게 보이지두 않수? 이 보슈. 부처가 정말 있긴 한 거유? 니미럴! 당신이 오늘 내 집에 온 김에, 그 잘난 자비 좀 베풀고 가슈! 어? 나도! 처자식과 당장 굶어 죽겠시다!”

 

굶주림과 조공에 시달려 악에 바친 백성들은 점점 강퍅해져 갔다. 원나라에 환관과 공녀로 보내지기 위해 끌려가는 인원 수는 해마다 늘었다. 부모들의 원성과 통곡을 뒤로하고 마을 공터로 처녀들과 어린 사내아이들이 줄줄이 끌려나왔다.

 

“으악!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풀어주세요! 저 가기 싫어요! 아악! 무서워요! 제발 저 좀, 한번만 살려 주세요! 으흐흑……!”

 

기회를 틈 타 목숨 걸고 도망치는 처녀들도 있었다. 그런 처녀들은 아무데서나 원나라 병사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반항하다 그 자리서 사지가 부러져 병신이 되거나 정신이상이 되기도 하고 죽는 일도 흔했다. 도망가다 붙잡혀 옷이 모조리 찢기고 들판에서 겁탈을 당하기도 했다. 원나라 조공을 담당하던 관청인 결혼도감(結婚圖鑑)의 관졸들과 악에 받친 민초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분란이 일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고려민중과 원나라 병사들이 대치하다 몇 명이 칼을 맞고 숨지는 사건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지나다가 그 모습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던 한 벼슬아치가 보다 못해 다가왔다.

 

“여들 보시게! 그리 거칠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가? 그 처녀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죄라면 시국을 잘 못 탄 죄요. 임금 잘 못 만난 죄이거늘. 가엾게 여겨 너무 거칠게 다루지는 마시게.”

 

사내가 말을 마치고 가슴 아픈 듯 미간을 찡그리며 멀어졌다. 그는 바로 고려의 명문거족 출신인 정안군 허종이라는 사람이었다. 정안군 역시 원치도 않는 원나라 수춘옹주를 정실로 맞아 살고 있었다. 정안군은 평소 불심이 깊어 자주 개경 안팎의 사찰들을 다녀오곤 하였다. 그날 허종은 아내 수춘옹주와 아들 허열과 함께 백운스님이 머물고 있는 선원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백운스님은 수시로 주자소를 드나들며 날로 늘어나는 신도들로 인해 불경을 주문하느라 분주했다. 오늘도 법당에 모인 귀족들을 향해 부처님 설법을 가르치고 마지막 축원을 하고 있었다.

 

“이 나라 임금님의 성수가 만세에 이르시고 왕비의 풍요로움이 영원토록 무성하소서! 문무관료의 어짊이 더욱 깊고 높아져 천하가 태평하여지고, 바람과 비가 알맞아 나라와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부처님의 위대하심이 빛을 더해가고,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온 세상으로 전해지길 바라나이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선원사 마당에는 부처님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선방마다 가부좌를 틀고 참선에 든 신도들이 많았다. 백운스님과 차 한 잔 나누려고 산객이 찾아오면 백운스님은 한걸음에 나가 그들의 손을 잡고 안으로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어서 와. 부처님이 그대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나 보오. 참 감사할 따름이오. 소승도 오래 기다렸소. 차 끓이는 일은 소승이 할 것이니. 그대는 식사부터 먼저 하시오.”

 

“아이고, 고맙습니다. 스님.”

 

백운스님의 제자인 법린과 석찬과 달잠은 하루 종일 바빴다. 업을 씻고자 부처님 전을 찾아온 신도들을 챙기느라 바삐 오갔다. 법린은 백운스님이 특히 총애하는 제자였다. 절 마당에는 일곱 살이 된 묘덕이 꽃을 따며 놀고 있었다.

 

“헤헤헤. 헤헤헤. 랄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랴셩……. 헤헤헤.”

 

묘덕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민초들이 부르던 청산별곡을 웅얼거렸다. 백운스님의 설법이 끝나자 요사채로 옮겨간 정안군 허종과 그의 아내 수춘옹주가 백운스님을 마주보고 앉았다. 그들은 국화차를 마시며 그간의 밀린 담소를 나누었다. 정안군 아들 허열이 뜰에서 놀고 있는 친구 묘덕에게 다가왔다.

 

“묘덕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야. 잘 들어봐! 청산에 살어리랏다. 자고니러 우니는 새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믈아래 새야……. 이렇게 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런데, 묘덕아. 네 어머니는 어디 계셔?”

 

“어? 우리 어머니? 열아, 있잖아. 백운스님이 그러시는데, 우리 어머니는……. 아주아주 먼 산에 기도하러 가셨대. 몇 밤만 더 자면 곧 오신댔어.”

 

묘덕은 백운스님께 들은 대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어린 묘덕과 허열은 동갑이었다. 정안군 허종의 아들 허열은 친구 묘덕과 만나면 늘 사이좋게 놀았다. 정안군 내외는 해마다 백운스님을 찾아와 시주를 많이 하고 돌아가곤 했다. 불심도 크고 깊은 신도에 속했다. 그러는 사이에 허열과 묘덕은 친구로 다정하게 성장해갔다. 정안군과 수춘옹주를 자주 보며 지낸 묘덕은 절에 오는 그들이 멀리 보이면 신나게 달려가 부모처럼 매달리고 품에 안기곤 했다. 시국이 극히 불안해지자 불교를 원망하는 이들도 늘었지만, 그럴수록 더 불심에 의지해 위로 받으려는 신도들도 날로 늘어났다.

 

그해 3월. 온 산과 들에 다시 봄이 찾아오고 인도의 고승 지공선사가 고려에 도착했다. 지공선사는 인도 마가다국의 왕자였다. 지공선사가 소중한 불경 몇 권을 들여와 백운스님께 선물했다. 백운은 그 불경들을 가까이하며 깨달음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러나 주변 모든 불자들이 나눠 보기에는 수량이 턱 없이 부족했다. 일일이 필사해 나누기에도 시간과 수고가 너무 많이 따랐다. 백운스님의 제자들은 호롱불 아래서 밤새 필사를 해 그것을 신도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백운스님과 제자들 또한 저자거리에 있는 주자소를 수 없이 드나들어야 했다. 비싸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목활자본을 주문해 겨우겨우 어려움을 해결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불자들이 보내온 시주금은 금방 바닥이 났다. 묘덕은 일곱 살에 백운경한스님을 찾아 온 지공선사에게 계첩을 받게 되었다. 지공선사는 고려에 머물며 부처님 말씀을 두루 전하다 이듬해에 인도로 다시 돌아갔다. 묘덕은 날로 자라 점점 어엿한 처녀가 되어갔다. 

 

그 후,충숙왕의 아들 28대 충혜왕은 원나라에 볼모로 갔다가 귀국해 다시 왕위에 즉위하였다. 충혜왕은 영특하고 슬기로운 인물이었으나 그 역시 주색잡기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결국 원나라에 국새를 빼앗기고 말았다. 자신의 못난 실책을 부끄러워하던 충혜왕은 부왕 충숙왕에게 다시 왕위를 양위한 뒤 원나라로 떠나갔다. 그럴수록 세상은 점점 더 부처님 말씀에 목말라 했다. 사찰과 명문 대갓집들마다 곳간을 열어 목활자본을 만들고 필사본을 뒤져가며 부처님 말씀에 대한 갈증을 겨우겨우 해결해나갔다. 좀 더 여유 있는 가문들은 비싼 목활자로 집안의 족보를 찍기도 했다. 목활자본 제작가격이 만만치 않아 웬만한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후, 몇 해가 더 지났다. 혹독했던 산사의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왔다. 온 세상이 푸르게 물이 오르자 들과 산에 꽃들이 피어났다. 묘덕은 공양간과 채마밭 잔심부름을 하는 시간 외에는 참선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스님들처럼 선방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세상만물들에 대한 가르침을 깨닫는 수행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백운스님은 해가 거듭될수록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묘덕을 보면 기쁘고 대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묘덕은 자신도 모르게 백운스님과 거리를 두었다. 백운스님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미운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묘한 마음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묘덕이 이유 없이 자신을 멀리하자 백운은 그녀에게 성장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묘덕이 이제 처녀가 되었고 과년해져 그런 것이려니 이해하려 노력했다. 비록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친딸처럼 온갖 정을 주며 키운 묘덕이 자신을 멀리 하니 백운스님도 내심 마음이 섭섭하고 무거웠다.

 

‘이럴 수가……. 내 마음이 대체 왜 이렇게 술렁이고 번뇌로 가득 차는 것인가. 아, 알 수 없는 일이로고. 내가 수행이 부족한 탓일 게야. 덕을 쌓고 더욱 힘써 기도하자. 나무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부처님……. 소승의 부덕함에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백운은 그럴 때마다 마음 속 허상을 털어내려 더욱 용맹정진 하였다.

 

몇 해가 더 지나고 몸과 마음이 더욱 과년해진 묘덕은 깊은 밤 자주 뒤척였다. 그녀 마음에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남자는 무엇이고 여자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밤을 새우는 날도 있었다. 누군가를 사모하는 마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그녀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꼭 끝에 가서는 백운스님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애달았다. 성장해 갈수록 그녀는 누구에게도 묻지 못할 궁금증이 더해갔다. 백운스님이 읍내 장터로 탁발을 다녀와 그녀를 불렀다. 지대방에 물끄러미 기대 앉았던 묘덕은 백운스님이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백운은, 성장기를 이후 자주 서먹한 묘덕의 마음을 풀어줄 심산이었다. 그는 묘덕에게 자신의 꼭 쥔 손을 내밀었다.

 

“허허. 묘덕아. 자, 이 손 안에 무엇이 있을 것 같으냐? 내 손을 어서 펴 보거라.”

 

 

 -> 다음 주 토요일(2/2) 밤, 5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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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25 [20:13]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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