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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악(歌舞樂)을 겸비한 독보적 예인, 함북 선녀춤으로 무형문화재 지정된 藝人 이성자
 
김철우 기자 기사입력  2018/10/21 [22:15]

[강원경제신문] 김철우 기자 = 지난 7월 말, 함경북도(지사 안충준)함북 선녀춤보유자로 이성자(李成子)를 인정했다. 51일 있었던 함북 무형문화재 제3호로 함북 선녀춤이 종목 지정된 이후 이날 보유자까지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함경북도에는 애원성두만강뗏목놀이에 이어 세 번째 무형문화재를 보존하게 되었다.

 

▲ 함북 선녀춤 무형문화재 이성자     © 김철우 기자

 

이북5도는 20189월 현재 총 17개의 무형문화재를 지정하여 잊히는 문화재를 보호, 관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최근에 지정되고 보유자를 인정한 것이 바로 함북 선녀춤이다. ‘함북 선녀춤의 보유자로 지정된 이성자 보유자는 전통춤 보존과 전승에 일생을 바친 춤꾼이다.

 

이성자 보유자의 스승 계보를 알아보면 우선 이 보유자는 장홍심 선생(1915-1994)의 대표제자이다. 장홍심 선생은 함흥 출신의 명무로 알려져 있다. 장 선생이 당대 최고의 춤꿈들인 김천흥(金千興), 김보남(金寶男), 이강선(李剛仙), 한영숙(韓英淑), 강선영(姜善泳), 이매방(李梅芳), 정인방(鄭寅芳), 진수방(陳壽芳), 김삼화(金三和) 등과 어깨를 겨루며 동문수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성준 선생(1874-1942)의 문하생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한성준 선생은 1937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어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흩어져 있거나 사장되어 가는 한국 고전무용을 집대성하여 계승, 발전시킨 분으로 유명하다.

그러니 한성준과 장홍심 등 당대 최고의 대가들을 통해 춤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이성자 선생은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손색이 없다.

 

▲ 함북 선녀춤     © 김철우 기자

 

100년간 이어오는 선녀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함북 선녀춤은 함경도 권번(청진, 함흥)에서 전승되던 기방계 춤으로, 장홍심 선생이 12세 때 함흥권번에 입적하여, 당시 권번 소속 춤 선생인 배씨 할머니(배숙자)’에게 학습하고, 이후 이성자 선생에게 전수, 계승되었으니 100년이 된 춤의 계보라 할 수 있다.

 

하늘에서 구름과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아름다운 폭포에서 목욕하고 놀다가 천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표현한 춤으로, 마을에 복을 주는 이야기 등이 포함된 선녀춤은 백두산을 영산으로 모시고 살아온 함경북도인들의 민속의례인 서낭제를 지내면 풍년이 들고 마을이 무사 안녕하다는 토착 신상에서 비롯되었다. 함경도민들의 의식 속에 하늘의 천신, 백두산 산신과 함께 나뭇꾼과 선녀등과 같은 동화가 가미되어 모든 신()을 대신한 선녀가 하강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산신제를 지낸 후 여흥으로 관기들에 의해 검무와 선녀춤을 추고 주민들은 퉁소 소리에 맞춰 애원성 소리를 하며 허튼춤을 추고 놀았다고 한다.

결국, 함경북도 마을 춤에서 시작된 선녀춤은 장홍심 선생에게 전수되어 1930년대 함경북도 길주, 회령, 함흥 지역에서 순회 공연하기도 했으며, 해방 후 이성자 선생에게 전수된 것이다.

 

장홍심 류의 선녀춤 특징은 선녀 부채의 흐름과 각도, 위치가 흐트러지지 않고 정확하고 정교하며 손놀림이 아름답고 우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음악은 느린 굿거리, 빠른 굿거리, 자진모리로 이어지는 장단에 맞춰 연행되는 작품이다.

 

▲ 무형문화재 이성자     © 김철우 기자

 

가무악(歌舞樂)을 겸비한 예인, 이성자

 

선녀춤 보유자로 인정된 이성자 선생은 초등학교 5, 6학년 시절부터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유로운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원하던 것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악(), (), ()를 모두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박자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어 춤을 출 수 있다는 이성자 선생은 가야금, 거문고뿐만 아니라 장구와 북 그리고 기타와 드럼까지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예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성자 보유자는 1956년부터 당대 최고의 스승을 만났는데, 한영숙 선생에게는 무용을, 김옥진 선생과 김윤덕 선생에게는 기악을, 박초월 선생에게는 창을 사사하여 다양한 분야를 배웠으며, 그 후 1967년에 장홍심 무용연구소에 입문, 무용을 사사하며 본격적인 춤꾼의 길에 들어섰다. 1976이성자 무용단을 창단하여 후학양성을 시작했으며, ()한국예술총연합회 무용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무용 단체를 이끌며 국악무용인들과 교류를 넓혔다. 스승인 장홍심 선생 타계 후 20001월에 명무 장홍심류 춤보존회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함북선녀춤, 함흥검무, 바라승무 등 장홍심의 기반이 되는 전통춤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부터는 선녀춤 지도교수로 위촉, 함경북도를 대표하여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여 우수한 실적을 나타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가무악에 대한 소질뿐만 아니라 무섭게 연습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성자 선생을 보고 대금 무형문화재인 죽향 이생강 선생은 노력의 대가는 스스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불멸의 국보이며, 후세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라고 치하했다고 하니 이성자 선생의 열정은 정평이 나 있다.

 

▲ 함북 선녀춤     © 김철우 기자

 

무용계 최초 박사학위 취득

 

이론에 대한 확립에도 관심이 커서 무용계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통일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으며, 독립기념관 행사와 아시안게임, 올림픽 문화행사 등 국가 행사에도 참여하며 헌신하기도 했으며, 1978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의 개인 발표회나 광주비엔날레 초청공연,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등에서 수십 년간 심사위원을 역임한 것만 봐도 당대의 인기 있는 무용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방송과 신문 등 각종 언론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에서도 초청 공연을 요청할 정도로 예인의 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이성자 선생은 어린 나이에 한국무용에 입문하여 장홍심 선생님을 비롯한 당대의 대가 선생님들로부터 국악 예술과 무용을 두루 섭렵하여 기본기가 충실하고, 제자들에게 무용을 전수할 때는 우리 전통춤의 근본인 정중동의 원리를 소홀히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전통무용가다.

 

2012년 경북 김천에서 열렸던 제53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공연에서 선보였던 선녀춤의 공연 구성을 보면..... 

입장과 정열 (3)

천신대 축조 (2)

백두산 천고제 (3) 대금, 해금, 양금, 가야금, 아쟁, 장고

선녀춤 (15) 대금, 해금, 양금, 가야금, 아쟁, 장고 등으로 삼현육각연주

뒤풀이 마당 (7)의 약 30분 구성된 공연이다.

 

이번에 무형문화재로 인정된 전승내용과 방법은 장홍심류 선녀춤과 장고춤, 검무, 바라승무, 수건춤 등이다. 김포시 풍무동의 장홍심류 전통춤 전수소와 함경북도 민속예술보존회 연습실에서 전수활동을 하는 이성자 보유자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소탈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제자들만으로 100년을 넘긴 무형문화재를 200년이 넘는 문화재로 이어갈 수 있도록 전수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 보유자는 전통과 창작, 신무용 외에 전통의 형식을 무시하는 혼란스러운 춤이 가끔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밝힌다.

 

무형문화재 전수에 온 힘 기울여

 

7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강하게 전수 활동을 하는 이성자 선생의 건강 비결을 무엇일까?

아파트 뒷산 산책로를 걸으며 다리건강을 신경 쓰는 정도죠.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나눠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사진 촬영의 기쁨도 빼놓을 수 없죠.’

무형문화재 인정을 받는 대가의 소박한 일상을 들으니 오로지 무형문화재 전수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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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21 [22:15]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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