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경제신문] 박현식 기자 = 어린 날 손편지의 아름다운 기억을 통해 세상에 행복을 전파하는 (사)한국편지가족 강원지회 김미애 지회장. 지난 시절의 애틋했던 기억과 손편지 쓰기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들어봤다.
내게 편지란 무엇인가? 생각하면 편지란 일상을 표현하며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자신을 위한 편지글이고.더 나아가 친구, 가족, 이웃, 지역, 나라를 위한 배움의 표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면 거창한가? 거창함에 책임이 쪼르르 따라와서 가을날 익어가는 곡식처럼 우리의 의식이 성숙해가는 서로의 마음의 징검다리이다. 추억의 창고에는 늘 꽃이 가득하다.열매는 없다 하더라도 여러 꽃이 활짝 피우게 하니 말이다.가끔 지인들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내면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온다. ‘어머나 지금도 이렇게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어 감동이에요. 정말 좋아요. 자주 좀 보내줘요.’ 라고 말이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편지를 자주 써서 보내야겠다고 하다가, 사는 게 뭐가 그리 바쁜지, 그러지 못한다. 이렇게 다정한 가을날 또는 빗소리 측은한 날에 손편지를 보내면 그들은 나와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유일한 친구들일 것이다.
편지가족이 되다 2011년 ‘편지가족 강원지회 편지쓰기’에서 직장 따라 캐나다로 간 친구에게 편지를 써 금상을 받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편지가족 회원이 되어 사무국장으로 봉사 활동을 하면서 나름 뿌듯하고 보람이 많았다. 편지를 써서 상을 받은 것은 세 번째지만, 어른이 되어 편지쓰기 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아름답게 불러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추억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고 했던가. ‘인생은 추억을 얼마나 많이 저장하며 사는 것일까.’라는 고운 마음을 욕심내는 것이 죄는 아닌 듯싶다. 여러 봉사 단체 활동을 하면서 주는 사랑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말이 봉사지 내가 함께하는 조직에서 주는 사랑으로 배워가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며, 그런 편지쓰기 봉사야말로 얼마나 의미 있고 아름다운 봉사인가를 느끼면서 시작된 7년의 세월이 어찌 지나갔는지……. 아마 전 회장님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마음을 주고받길 원한다 학창시절 누구나 시인이며 수필가이며, 소설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랴. 지나간 시절이 추억이란 바람을 타고, 타임머신을 빌려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라면 나는 먼저 어떤 시절로 돌아갈 것인가? 초, 중, 고등학교 때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방학이면 위문편지를 가장 많이 쓰게 하셨던 선생님들이 그립다. 그러다가 어느 시절 펜팔이 유행되던 때는 반 친구들 모두 펜팔을 하며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고등학교 때 방학숙제 대신 선생님께 편지 쓰기를 내주신 국어 선생님과 편지로 2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져 선생님은 미국에서,나는 한국에서, 서로의 소통을 편지로 나누다가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라는 새로운 매체가 편지를 대신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손편지를 쓰고 있다.
결혼 전에는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하고 편지를 참 많이 주고받았다. 매일 같이 만나면서 뭐 할 말이 많은지 만나면 반갑고 좋아서 하하 호호, 그리운 시간이다. 편지에 서로의 미래를 얘기하고, 고민을 얘기하고, 그 고민을 저 밤하늘의 별을 보듯이 해석해 주는 편지글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옛 친구들과 오랫동안 연결 고리가 된 것은 편지의 힘이었다. 사무실을 오가며 책상 위에 예쁘게 접은 쪽지를 놓고 지나가면 우린 간첩처럼 새로운 접선을 하듯이 쪽지를 주고받고 그 쪽지를 풀어 읽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그리고 매일 만나는데도 서로의 집으로 편지를 보내고 편지를 받는, 너무도 그리운 시절이었다. 그렇게 만난 친구들은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있으며, 연락이 끊긴 친구 손편지를 쓸 때는 가슴이 떨린다. 편지글이 끝나면 길게는 3~5일 정도면 도착하는 편지봉투에 이름을 쓰고, 우체국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행복했던 삶의 추억 가운데에 최고인 듯했으며, 편지를 받으면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나 자신의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님을 서글퍼해야 하나? 기뻐해야 하나? 늙는 게 아니라 익는 거라고 했지만, 인간이 진정 익는 거라면 우리는 인생을 다시 한 번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떤 의식과 어떤 삶의 내용으로, 어떤 빛깔로 마음에 물을 들이며 살아야 하는지를…….
지금 오사카에 사는 친구는 고등학교 때 절친한 친구였다. 친구는 한국에 유학을 온 신랑감을 만났다. 연애하다가 결혼을 해야 하는데, 예비 시아버지 되실 분이 일본 여인과 결혼을 원하시기에 한국 여자를 며느리로 맞는 것을 반대하셨다. 고민이 많은 친구는 풀이 죽어서 전화를 했고, 나는 그 친구의 고민을 해결하여 결혼 승낙을 받아내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시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일로 친구의 걱정을 해결해 주고 싶었다. 친구와 나는 봉천동 어느 다방에서 만나 시아버지 되실 분에게 편지를썼다. 물론 시어머니 되실 분은 일본 분이시고, 시아버지 되실 분은 한국분이시기에 편지로 마음을 사로잡기에 한국말 편지는 더욱 쉬웠다. 줄 쳐진, 고지식한 편지지 5장을 꽉 채워서 쓴 내용은 “잘 살겠습니다. 남편을 하늘처럼 더 받들겠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교육 잘하고 훌륭하게 키우겠습니다. 알뜰살뜰 살림도 잘하고, 신사임당처럼 현명한 며느리, 아내, 엄마가 되겠습니다. 시어른을 공경하며 예로써 다 할 것을 맹세 드립니다.” 지금에 기억나는 건 이것뿐이다. 친구는 ‘뻥’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크림이 들어간 쓴 커피로 누르면서,우리는 킬킬거리고 웃고 또 웃으며 그 순간을 행복해했다. 다 쓴 편지를 몇 번이나 읽고 또 고쳐 쓰고 읽으면서 이 정도면 결혼을 허락하실 거라고 친구를 안심시키면서 즐거워했다. 다방에 있는 몇 안 되는 손님들은 친구와 내가 철없고, 그러나 맑고 아름다운 순수의 시대에 잘살고 있는 어릿광대라고 생각했겠으며 우리를 많이 부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편지를 받은 예비시아버지는 결혼을 허락하셨고, 지금도 오사카에서 아들, 딸 네 명을 낳고 아주 잘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딸 둘과 오사카에 여행 가서 친구를 만나 내가 결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준 은인이라고 공치사를 얼마나 했는지. 그 친구는 ‘맞다. 미애 편지 덕분에 이렇게 잘살고 있으며, 시아버님이 미애가 쓴 편지 아니었으면 결혼 승낙도 없을 것’이라며 32년 전에 있었던 그 어느 다방 낮은 테이블에 엎드려 편지를 쓰던 흑백 사진이 된 그리운 이야기를 뒤적이며 하하 호호 웃었다. 언제까지나 사랑하는 내 친구가 행복하고 잘 살기를…….
그런 세월을 뛰어넘어도,매일은 아니어도 가끔 손편지는 쓴다. 우리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내가 좀 이상하고 유별난 학부모라고 주위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꼭 담임께 편지를 썼다. 세 명의 자식을 학교에 입학시키면 나는 꼭 이런 얘길 해준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 협조 잘하고, 친구들하고 협력을 잘하라고 말이다. 나 어릴 때 우리 친정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 선생님을 믿고 안심하는 부모의 마음을 우리 애들을 사랑으로 잘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십사 하고 말이다. 이젠 그 애들이 다 커서 큰애는 서울서 학교 다니고 작은애는 일본서 있을 때도, 막내는 전라도에서 학교에 다닐 때도 나는 어미의 한사람으로, 인간의 한사람으로 편지를 쓰고 ‘서울 본회 편지’라는 한국편지가족에서 발간하는 책에도 실어 주었다. 편지의 효력은 대단한 것이다. 선생님들은 교사 생활 30년 하면서 ‘학부모님한테 편지 받은 건 처음’이라시며 감동이라고 하시고, 어머님의 마음을 잘 받들어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시겠다고 내 손을 잡으며 답례를 해주시던 선생님이 고마웠다. 세월은 빛바랜 편지봉투처럼 묵묵하게 흘러갔다.
다시 활발한 꿈을 갖게 된 편지가족 활동 2018년도 강원지회장이 되어서 참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디스크가 찾아와서 회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상반기는 최악의 건강조건 속에서 마음이 참 불편하고 자유롭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점은 전 회장님들 회원님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인원이 아무리 많아도 활동하는 회원은 어느 단체이든 소수다. 그 역시 우리 강원지회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인원이 움직이지만, 내실이 튼튼한 단체임은 틀림없다는 거 전국에서 제일가는 강원지회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2년 전인가 어느 중학교에 편지 강좌를 열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과 계획서를 가지고 갔다. 교무실 문을 열고 우리는 한국 편지가족 자원봉사 단체인데 학생들에게 편지쓰기 강좌를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어느 남자 선생님은 우리 이야기도 들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알았다며 나중에 연락을 드리겠다면서 전 회장님과 나를 잡상인 취급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전 회장님은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시며 여유롭게 웃으시는데, 성질머리 팔팔한 나는 학교 정문을 나오며 회장님에게 그 선생님의 욕을 했다. 인성교육, 인성교육 하면서 뭘 가지고 인성교육을 하겠다는 것인가요? 죽으라 공부해서좋은 대학 가서 잘 먹고 잘살면 자기가 행복할까요? 중심, 저항, 충돌의 사회에서 잘사는 것은 행복이다. 돈이 많은 건 돈부자이지, 결국 잘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인간이 다 돈부자이면 지구는 벌써 멸망했을 것이다. 잘사는 것과 행복한 것은 구별도 못 하면서 그런 정신으로애들한테 뭘 가르친다는 것인지. 무식하게 개새끼 소새끼 하면서 욕을 했다. 그래도 전 회장님은 ‘그냥 놔둬요. 학교 갈 때마다 거절한 적이 한두 번은 아니거든요.’ 하시며 ‘그 사람 몫이죠.’ 하시며 웃으신다. 하지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언젠가는 우리 편지가족 선생님들한테 편지강좌를 열어 주세요 하고 부탁을 해오는 날이 오면 멋지게 거절해야지 하다가도 아이들 생각하고 아이들의 맘속에 꿈을 생각하니 팔팔한 성질머리도 금방 구름처럼 풀어졌다.
초등학교에 편지 교육을 나가시는 선생님들 학교에서 편지강좌 신청이 들어오면 회원 선생님들이 바빠지신다. 늘 준비 완벽하게 하시고 시간 복창 표정 언어 편지강좌 가실 준비된 선생님들은 좋아서 미소를 잃지 않으신다. 시도를 안 해서 그렇지 아이들의 편지글 솜씨는 제법이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감정에 흑백이 없겠는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기회를 주고 가슴속에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자기 내면에 쌓은 것들을 꺼내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휴대폰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자랑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남들이 알면 안 된 사연들이 공개되면 상처가 되어 돌아올까 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자랑만 하고 좋은 글만 쓰는 휴대폰 콤플렉스 말이다. 휴대폰 문자메시지의 장점도 많지만, 손편지만 하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인생에 아름다운 삽화가 될 수 있도록 열정을 보여주는 우리 편지 강사 선생님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이었으면 좋겠다. 심리상담 공부할 때 배운 글 하나를 빌려 오자면, 우리의 삶에는 1차 경험, 2차 삶의 경험이 있다고 한다. 특히 청소년기의 경험으로 살아가는데 1차 경험은 경험이 뒷받침되고, 2차 경험은 타인의 경험으로 자신의 경험을 보면서 성장하는 데 있어 손편지 쓰기는 1차, 2차 인생의 합류 함에 있어 어린이들에게 좋은 경험이라 본다 어린이들이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도 마음 한 소설, 한 소절 따스한 그런 국가의 훌륭한 인재가 되는데 기초가 되는 편지쓰기이길 바란다. 우리 한국편지가족 강원지회에서는 해마다 어린이날에 부모님 스승님 친구 이웃에게 감사의 편지쓰기 행사, 마음으로 전하는 손편지, 손 엽서라는 제목으로 부스를 운영하면서 도로명 주소를 이용하여 엽서 쓰기를 같이했다. 어느 해 행사 때는 생각보다 참 심각했다. 젊은 엄마들도 아이들도 “엄마 이 네모 칸이 뭐야?” “나두 몰라” 편지쓰기 선생님이 얼른 대답을 대신한다. “네모 칸은 우편번호 쓰는 칸이며, 위에는 보내는 사람 이름과 주소를 쓰고, 아래 칸은 받는 사람 이름이랑 주소를 쓰는 거란다.” 아이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하며 별처럼 어여쁜 손가락을 까닥이며 열심히 엽서를 쓴다. ‘엄마 우리 집 주소가 정확하게 뭐야?’라는 대화를 들으면서 학교에서 기초적은 것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직장이 있다는 이유로 편지 쓰기 수업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편지 쓰기 수업에 참여하신 우리 회원 선생님들께서는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아이들에게 있어 정말 필요한 수업이라고 하신다. 우리의 믿음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세우는 바지랑대가 되어주고 싶다. 어린이는 이 나라의 기둥이고 세계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독불장군은 일에 성공하더라도행복을 모른다. 낮아져라. 섬겨라. 우리는 그런 한국 편지가족 자원봉사 단체이다. 지난 8월 20일 21일은 천안 우정공무원 교육원서 (사)한국편지가족이 주최하는 편지쓰기 문화지도사 연수가 있었다. 이번 연수는 편지 강사교육을 수료한 분에 한하여 제주도 포함해서 전국에서 모인 임원, 회원과 함께하는 연수였고, 편지쓰기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편지글을 모아서 출판 기념회를 하고 싶다. 그리고 편지 낭독 대회를 하고 싶고, 편지 쓰기와 함께 하는 바자회도 하고 싶다.
우리 편지가족 강원지회가 전국에서 제일가는 봉사단체이길 희망하면서 이서화, 채복순, 김순선 전 회장님들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와서 회장을 맡아 잘 해보고 싶다. 공손하게 전 회장님과 회원님들께 잘 부탁한다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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